지리산 촛대봉과 삼신봉 힐링 산행
▣ 일 시 : 2022년 08월 13일(토)~14일(일)
▣ 코 스 : 거림-세석연못-삼신봉-촛대봉-세석연못-거림
▣ 인 원 : 산친들과
▣ 날 씨 : 흐림(국지성 소나기)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지명을 고증하려면 첫째, 발이 되어야 하고, 둘째, 글이 되어야 하고, 셋째, 산에서 숙식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가장 자신이 있는 것은 숙식이다.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비화식이 주류이다. 배낭의 중량도 무거우면 구세대이다. 대개는 검은 옷을 입고 바리바리 짊어지고 와서 까마귀에게 반포지효(反哺之孝)를 한다. 생존 식량과 최소 장비로 산행할 수 없을까. 그것이 과제이다. 내가 아는 분은 미리 밥을 해서 말린다. 산에서 물에 불려서 먹는다고 한다. 동계에 6박 7일을 가스 한 통으로 견딘다. 산에서 굳이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산행은 속세를 벗어나서 불편함과 부족함을 즐기는 놀이이다.
어떤 일이든 나이가 들면 아름다운 마무리가 필요하다. 난 본래 인문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마추어일 뿐이다. 유람록 읽고 답사를 하고 취미로 기록을 한다. 범위를 좁게 하고 깊이를 깊게 하고 싶지만 늘 실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모르는 것이 많으니 자신이 생산한 이야기를 매번 다시 정리한다. 확실하지 않은데 안다고 할 수 없다. 자신이 써놓은 글을 되짚어 확인할 필요가 있다. 궁금한 것이 많지만 포기하지 않고 알 때까지 참고 견딘다. 최근 산림청에 '大'자 석각에 대해 문의했지만, 환경부나 국립공원 관리공단에 문의하라는 답(答)을 받았다. 이럴 땐 휴식이 필요하다.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다음은 삼송 임응택 선생의 「와유강산(臥遊江山)」에 나오는 세석평에 대한 기록이다. 세석평의 백척 절벽(百尺絶壁) 석면상(石面上)에 서불과차(徐市過此)한 제명(題銘)이 있다고 한다. 끝.
▶ 삼송 임응택(林應澤) 선생의 「와유강산(臥遊江山)」에 나오는 세석평
두루두루 求景하고 細石坪을 들어가니 上中下 너른平波 周回가 五六十里요. 千年赤石 各盛勢 屛風같이 둘렸으니 坮上에 別世界라 出入門을 살펴보니 地形이 平坦하고 土品이 肥厚하야 沃野가 廣闊하니 百穀이 豐登할지로다. 下坮를 다본후에 第中坮를 올라가니 山水가 文明하여 一点塵埃 없어지고 雲林处士 修身处요. 道德君子 養成处라. 소상물을 살펴보니 人蔘之草 不老草가 菜田같이 茂盛하고 鳳凰鹿龍 祥禽瑞獸 家産같이 許多하다. 中坮를 다본후에 第上坮를 살펴보니 肅洒한 煙霞중에 仙境이 宛然하다.
百尺絶壁 石面上에 徐市過此 한제명 六國統合 秦始皇帝 方士徐市의 말을듣고 不死藥을 구하라고 童男童女 五百人을 海中三山 보낸後에 徐市도 此神仙되고 童男童女 藥캐다가 仙童玉女 되었으니 秦始王도 오셨으면 神仙되기 쉬울것을 神仙의 緣分없이 世上狀態 못오시고 徐市消息 屯絶(頓絶)하여 沙邱平坮 저문날에 驪山菁塚 滄茫하다. 上坮을 玩賞하니 天下名勝地 之中에 이같은 別世界는 䢟覽하기 어렵도다. 細石坪을 求景하고 石門을 찾아나서 䢟覽处를 돌아드니 白雲萬疊 뿐이로다.「와유강산(臥遊江山)」
注 驪山三絶句(其三)-소식(蘇軾, 송나라 때의 시인 )해중 삼산을 풍자한 시
海中方士覓三山 : 바다 가운데서 방사들이 삼신산을 찾으니
萬古明知去不還 : 만고에 돌아오지 못함을 익히 안다네
咫尺秦陵是商鑑 : 지척에 진시황의 능과 상(은)나라의 귀감이 있음을
朝元何必苦躋攀 : 아침에 어찌 힘들게 오를 필요가 있겠는가.
注 임응택(林應澤, 1879~1951)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삼송(三松)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마천면 의탄리 의중마을에 살았던 인물이다. 선생은 한말 정삼품 통정대부 좌승지겸 경연청 참찬관과 오위도총관 부사간[敎旨 (광서 9년(고종 20년, 1883년) 2월)]을 지낸 임종달(林鍾達, 1843~1886) 공의 三男이다. 장남 영택(英澤, 1866~1925) 공이 장송(長松), 둘째 성택(性澤, 1868~1922)공이 이송(二松), 셋째 임응택 공이 삼송(三松) 선생이다. 삼송(三松) 공은 종구품(從九品) 선릉 참봉(宣陵參奉) 벼슬을 하였다.
와유강산(臥遊江山)은 지리산 10승지(勝地)와 9기(奇), 18경(景)을 읊은 3(4).4조의 4음보 가사 형식이다. 전하는 것은 원본이 아닌 필사본으로 마천 읍내 당흥 부락 김수태(1929~) 어르신(금년 93세)이 17세 때(해방 전후)에 펜으로 필사한 것이다. 와유강산은 함양 서복연구회 문호성 회장님이 발굴하여 마천 향토지(1994년)에 처음 소개하였다. 와유강산(臥遊江山)은 젊었을 때 지리산을 유람한 내용을 기록하여 노년이 되어 ‘와유강산(臥遊江山)을 읽으며 지리산을 유람하겠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 적석동 소지(磧石洞 小池)
☞ 磧石洞 小池와 청학연(靑鶴淵)·학연(鶴淵)에 대한 선인들의 기록: https://blog.daum.net/lyg4533/16488826
▼ 촛대봉 석각
☞ 촛대봉의 고려낙운거사이청련서 석각(180805) : https://blog.daum.net/lyg4533/16488248
☞ 촛대봉 의인나주정씨묘의 석각과 세석의 이인 정걸방 : https://blog.daum.net/lyg4533/16488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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