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동부 아홉모랭길과 두류능선 우중산행
▣ 일 시 : 2022년 09월 02일(금)
▣ 코 스 : 광점동-어름터-일곱모랭이 능선-방장문-구롱-청이당-국골사거리-두류능선-추성-광점동
▣ 인 원 : 3명
▣ 날 씨 : 비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서대초(書帶草)는 그늘사초, 청옥(靑玉)은 취나물의 한 종류, 자옥(紫玉)은 비비추(紫玉簪, 자옥잠)라고 생각했는데, 식생을 알지 못하니 깜깜한 산길을 걷는 기분이다. 김종직은 유두류록에서 "서대초(書帶草)와 유사(類似)한 풀이 있어 부드러우면서 질기고 미끄러워 깔고 앉았다 누웠다 할만하며 곳곳이 다 그러했다. [有草類書帶 柔韌而滑 可藉以坐臥 在在皆然]"라고 하였다. 점필재가 '서대초'라고 한 것이 아니고 '서대초와 유사한 풀'이라고 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대초와 유사한 풀'은 동부능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늘사초를 가리키는 듯하다. 고전번역원에서 서대초는 128건, 맥문동은 705건이 검색된다. 서대초는 주로 시문(詩文)에서 보이고 맥문동(麥門冬)은 약재 이름으로 쓰였다.
▶ 시문(詩文)에 나오는 서대초(書帶草)
木筆花(목필화)
李奎報(1168 ~ 1241)
天工狀何物(천공상하물) 하늘이 무슨 물건 그려 내려고
先遣筆花開(선견필화개) 먼저 목필화부터 내려보내
好與書帶草(호여서대초) 서대초書帶草와 함께
詩家庭畔栽(시가정반재) 시가의 뜨락에 심도록 했나
園林(원림)
徐居正(1420~1488)
園林初霽雨(원림초제우) 동산 숲에 비가 막 개자
杖屨討淸幽(장구토청유) 지팡이 짚고 맑은 경치 찾노라
草愛抽書帶(초애추서대) 풀은 서대초 빼어남이 사랑스럽고
花看映佛頭(화간영불두) 꽃은 불두화가 환히 비치네
都能詩遣日(도능시견일) 시로는 세월을 보낼 수가 있고
亦復酒忘雨(역부주망우) 술로는 근심을 잊을 수 있네
此興情奚適(차흥정해적) 이 흥취를 품고 어디로 가야 하나
歸歟老釣舟(귀여노조주) 돌아가 저 낚싯배에서 늙어야지
詠書帶草(영서대초)
徐居正(1420~1488)
笑汝書帶草(소여서대초) 서대초 네가 우습기만 하니
何曾一字知(하증일자지) 언제 일찍이 한 글자라도 알았더냐
似我竊虛名(사하절허명) 헛된 명성을 훔친 나와 같아서
相對頗相宜(상대파상의) 서로 마주하니 자못 서로 어울리는구나
▶ 약재 이름으로 쓰인 맥문동(麥門冬)
기언(記言) 제14권 중편 전원거(田園居) 십청원기(十靑園記)-許穆(1595~1682)
맥문동(麥門冬) 《본초강목》에 “마음과 정신을 편안하게 해 주고 속을 달래고 구토를 멈추게 한다.” 하였다. 겨울에도 푸르다. [麥門冬 本草曰 安心神 調中止嘔 冬靑]
求麥門冬於車典醫[차전의에게 맥문동을 요구하다]
徐居正(1420~1488)
老病纏綿抱渴何(노병전면포갈하) 노병이 얽힌 데다 소갈증까지 또 어찌하나
日長時復愛煎茶(일장시부애전다) 긴긴 날에 수시로 차 끓이기만 좋아한다네
殷勤爲借門冬飮(은근위차문동음) 날 위하여 맥문동탕을 마시도록 보내 주오
暖胃開腸學老坡(난위개장학노파) 노파 배워 심장 틔우고 위장 다습게 하려네
출처 : 고전번역원
위 자료를 다시 읽어보니 정리가 되는 것 같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서대초와 유사한 풀'은 그늘사초이다. 서대초는 선비들이 뜰에 심어 놓고 감상을 하고 애호하는 화초로 시문에 자주 등장한다. 그늘진 곳에 살아도 겨울에 잎이 푸르고 시들지 않으니 선조들의 사랑을 받은 듯하다.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맥문동이 있는 정원에 눈이 내리는 풍경은 옛 선비들의 기상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세한(歲寒) 연후에도 시들지 않는 서대초가 어떤 연유인지 식물도감에 나오지 않는다. 초본과 목본의 식생을 전공한 학자들도 '서대초를 맥문동이라고 추정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라고 하고 한 발을 물러서는 느낌이다. 맥문동이라는 약재 이름만 남고, 서대초라는 이름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지금도 그늘사초는 1000m 고지대에서 자생하고, 맥문동은 공원이나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注 서대초(書帶草) : 후한(後漢) 때의 경학자(經學者)인 정현(鄭玄, 127~200)이 일찍이 불기산(不其山)에 들어가서 학자들을 가르칠 때 그곳에 염교[薤해]를 닮은 풀이 자라서 잎이 길고 매우 질겨서 그 문하(門下)들이 이것으로 서책을 묶었던 데서 이렇게 이름했다 한다.
老坡(노파) : 호가 동파(東坡)인 소식(蘇軾)을 말한 것으로, 소식의 수기문미원장모열도동원송맥문동음자(睡起聞米元章冒熱到東園送麥門冬飮子) 시에 “베갯머리의 맑은 바람은 가치가 만전이라, 아무도 북창의 낮잠을 사려는 사람이 없구려. 심장 틔우고 위장 다습게 하는 게 문동탕인데, 이것은 바로 동파가 손수 달인 거라오.〔一枕淸風直萬錢 無人肯買北窓眠 開心暖胃門冬飮 知是東坡手自煎〕”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맥문동(麥門冬) :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초. 아시아를 원산지로 삼고, 그늘진 곳에서 주로 서식한다. 길이는 약 30cm에서 50cm 정도이다. 잎끝은 밑으로 숙이고 있으며 겨울에도 잎이 지지 않는다. 꽃은 5~6월에 연한 보라색을 띠고 무리 지어 피어난다. 열매는 푸른색이 감도는 흑색으로 익는다. 때에 따라 땅속줄기가 흰색 덩어리로 변하는데, 이것을 봄과 가을에 캐서 껍질을 벗겨 햇볕에 잘 말려 한방의 약재로 쓰기도 한다. 어린잎과 줄기를 식용한다. 출처 : 지식백과
▶ 맥문동(麥門冬)의 이름 유래
이시진(李時珍, 1518~1593)은 명나라 가정제 때, 《본초강목》이라는 저서를 남긴 대의약학자이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있는 맥문동(麥門冬)의 이름 유래다. 잎이 겨울에도 시들지 않으므로 동(冬), 수염뿌리에다가 보리알 같은 것이 달려 맥문(麥虋, 麥門)이라 했다고 한다.
《본초강목》에서 이시진(李時珍)이 이르기를 “‘보리 까끄라기를 虋(문)이라 하는데, 이 풀의 뿌리가 보리(알)를 닮은 데다 까끄라기를 지니고, 부추 같은 그 잎이 겨울을 업신여겨 시들지 않으므로, 맥문동(麥虋冬) 또는 부추 인동과 관련한 여러 이름이 있다. 속인들이 만든 門冬(문동)은 글자에서 편리를 취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時珍曰 麥鬚曰虋 此草根似麥而有鬚 其葉如韭 凌冬不凋 故謂之麥虋冬 及有諸韭忍冬諸名 俗作門冬 便於字也.]"
虋(문)의 음훈은 ‘차조(찰조) 문’이다. 조를 말한다. 이와 이시진의 설에 따라, 덩이뿌리가 보리알과 차조알 같고 겨울에도 잎이 시들지 않아 맥문동(麥虋冬)이라 한 것이 맥문동(麥門冬)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編)
▶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초본류
순 | 원문에 나오는 초본류 | 초본류 | 비고 |
1 | 용수초(龍須草) | 용수초 | |
2 | 서대초(書帶草) | 맥문동 | |
3 | 국(菊), 백국(白菊), 황국(黃菊) | 국화 | |
4 | 마(麻) | 마 | |
5 | 당귀(當歸) | 당귀 | |
6 | 석포(石蒲) | 돌창포 | |
7 | 궐(蕨) | 고사리 | |
8 | 독활(獨活) | 독활 | |
9 | 청옥(靑玉), 자옥(紫玉) | 취나물 |
유람록의 본문에 나타나는 초본류는 총 9종류로 세부내용은 위 표와 같다. ‘龍須草(용수초)’는 골풀로, 백합목 골풀과의 다년생초본이다. ‘書帶草(서대초)’는 백합목 백합과의 맥문동을 가리키는 듯하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書帶(서대)’가 맥문동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는 하지만 자료의 해석만을 신뢰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菊(국)’, ‘白菊(백국)’, ‘黃菊(황국)’은 초롱꽃목 국화과의 국화를 나타내고, ‘麻(마)’는 현재에도 널리 이용되는 백합목 마과의 마다.
‘當歸(당귀)’와 ‘石蒲(석포)’는 한자 그대로 산형과의 당귀와 백합목 백합과의 돌창포를 나타내며, ‘蕨(궐)’은 고사리목 고사리과의 고사리를 나타낸다. ‘獨活(독활)’은 땅두릅 혹은 멧두릅이라 불리는 산형화목의 두릅나무과의 풀이다. 국화과의 취나물로 추측되는 ‘靑玉(청옥)’과 ‘紫玉(자옥)’이 있는데, 이는 줄기의 색깔에 따라 청옥과 자옥으로 나눠진다고 하나 명확하지는 않다. 국화의 경우는 주로 사찰의 마당이나 마을 정자 주변에서 자라고 있어 인위적으로 심어 가꾼 것으로 보인다. 마 역시 마을을 지나다 보았다고 서술되어 있어 위와 동일한 이유로 사료된다.
출처 : 월간산 [특별기고] 지리산 유람록을 통해 본 선인들의 산행
▶ 선인들의 유람록에 보이는 청이당에 대한 명칭
청이당→천녀당→천례탕은 천례당(天禮堂, 하늘에 제사지내는 집)과 같은 의미인 듯하다. 禮(례)는 귀신(示)+豆(제기)+曲(제기에 담은 음식)으로 二(上=)는 하늘(天)을 뜻하고 小는 해와 달과 별로 천신(天神)을 상징한다. 豊는 제기에 제사음식을 풍성하게 차려 놓은 굽높은그릇례이다. 청이당은 하늘에 제물을 바치고 전쟁의 승리,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를 의미한다. 제(祭) 또한 고기(月=肉)을 신(示)에게 바치는(又 오른손우) 제례 의식을 표현한 한자이다. 강호 동양학자 조용헌 선생은 청이당의 어원은 천례당(天禮堂)으로 화랑들이 하늘에 제를 지낸 곳으로 추정한다. 천례탕(天禮碭)을 '천례당'으로 읽으면 억지이겠지만 碭(탕, 당)은 唐(당)의 이체자이다.
순 | 선인들의 유람록 | 명칭 | 비고 |
1 |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 청이당(淸伊堂) | 청이당 앞 계석(占堂前溪石) |
2 | 1611년 유몽인의 유두류산록 | 청이당(淸夷堂) | |
3 | 1871년 배찬 선생의 유두류록 | 천녀당(天女堂) | 계곡 옆의 바위 위(澗邊石上) |
4 |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 | 천례탕(天禮碭) |
▶ 옛 문헌에 보이는 쑥밭재에 대한 명칭
쑥밭재의 명칭은 1871년 배찬의 유듀류록에는 애현(艾峴), 1877년 박치복 남유기행과 허유의 두류록, 1937년 김학수의 유방장산기행에는 애전령(艾田嶺), 1887년 정재규의 두류록과 1956년 함양군지에는 봉전령(蓬田嶺)으로 1933년 석전(石顚) 박한영의 석전사문에는 봉전치(蓬田峙)로 나타난다. 애현, 애전령, 봉전령, 봉전치는 쑥밭재를 한역한 명칭이나 쑥과는 연관이 없는 듯하다. 쑥은 1,0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자라지 않는다. 숙박재에서 쑥밭재가 되었다는 논리도 맞지 않는다. 1917년 총독부에서 제작한 조선의 지형도에 추성리에서 새재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는 진주독바위(옹암)와 새봉 사이로 표기되어 있다. 거리가 먼 쑥밭재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
순 | 선인들의 유람록과 문헌 | 명칭 | 비고 |
1 | 1871년 배찬의 유듀류록 | 애현(艾峴) | |
2 | 1877년 허유의 두류록 | 애전령(艾田嶺) | |
3 | 1877년 박치복의 남유기행 | 애전령(艾田嶺) | |
4 | 1887 정재규의 두류록 | 봉전령(蓬田嶺) | |
5 | 1933년 박한영의 석전사문 | 봉전치(蓬田峙) | |
6 | 1937년 김학수의 유방장산기행 | 애전령(艾田嶺) | |
7 | 1956년 함양군지 | 봉전령(蓬田嶺) |
쑥밭재의 '쑥'은 원시어소 [슬/sur]의 변이음이고 '밭'은 [불/bru]의 변이음이다. 기슭을 가리키는 [슬/sur]도 대광상고(大廣上高)의 뜻을 지니고 있다. '쑥밭재'는 크고 높은 뜻의 지명이다. 초령(草嶺)의 한자 草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새(사이/사)]음을 차자(借字)할 때 많이 썼는데. [풀/불/블] 음을 차자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어 일단 설명을 보류한다.
출처 : 슭마노르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pance73/1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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