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도솔암(兜率庵)

도솔산인 2022. 8. 14. 19:15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도솔암(兜率庵)

 

 

▣ 일 시 : 2022년 08월 12일(금)

▣ 코 스 : 양정마을-영원사계곡-도솔암(원점회귀)

▣ 인 원 : 산친들과

▣ 날 씨 : 흐리고 맑음

 

 

  지난해 12월과 금년 2월 초 마천면 창원리 청매암을 찾은 일이 있다. 청매암 정견(正見) 스님은 30여 년 전 도솔암을 중창하신 분이다. 스님께서 마천 3대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금대(金臺), 도솔대(兜率臺), 무주대(無住臺)이다.' 지금은 정견 스님의 사질(師侄)인 적능(寂能) 스님이 도솔암을 지키고 있다. 지난 2월 초 눈 내리는 도솔암에서의 하룻밤은 잊을 수가 없다수행 중인 스님께서 물을 길어다가 목욕물까지 데워놓으시고, 저녁과 아침 공양 대접을 받았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다음날 아침 눈이 그치지 않았고 서둘러 도솔암에서 내려왔다. 

 

  도솔암 옛길은 양정 마을에서 영원사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이 길은 양정마을에서 영원사로 가는 길이다. 현 도로보다 거리가 가깝고 길 또한 부드럽게 구축된 길이다. 영원사 직전 도솔암 주차장에 스님 차가 없다. 출타 중이신 것을 알았으나, 나선 길이라 도솔암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땀을 뻘뻘 흘리시며 올라오시는 스님을 뵈었다. 다음은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도솔암에 대한 기록이다. 1686415일과 16일 정시한의 동선은 무주암(宿)무량굴두타암(宿)암자터도솔암(宿)이다. 영원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16일 이동거리가 20리이다. 정시한이 하룻밤 묵어간 두타암은 어디일까.

 

 

 1610년 박여량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도솔암(兜率庵)

 

 九月四日 <중략비로소 옛 제석당(帝釋堂)에 도착하였다올라서 좌우의 바위와 골짜기를 조망하고산과 내의 형세를 가리키며 둘러보았다온 산에 보이는 것이라곤 푸른 회나무가 아니면 붉게 물든 나무였으며붉게 물든 나무가 아니면 저절로 말라죽은 나무였다푸르고 붉고 희고 검은 색깔이 뒤섞여 서로 비추어서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았다서쪽으로 1백여 리쯤 되는 곳을 바라보니 새로 지은 두 절이 있는데무주암(無住庵) 서쪽에 있는 절을 ‘영원암(靈源庵)이라 하고직령(直嶺) 서쪽에 있는 절을 ‘도솔암(兜率庵)이라 하였다도솔암은 승려들이 수행하는 집으로 인오(印悟)가 지어 살고 있는 곳이다. 인오는 우리 유가의 글을 세속의 문장으로 여겨, 단지 불경(佛經)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여러 승려를 위하여 암자 앞에 붉은 깃발을 세워두었고, 발자취가 동구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고 한다.

 

 九月四日 <중략始達古帝釋堂舊基 登眺左右巖壑 指點山川形勢 滿山所見 非蒼檜則紅樹也 非紅樹則自枯木也 靑紫白黑 參錯相暎 如錦繡然 西望百里餘 有新刱蘭若二 無住之西曰靈源 直嶺之西曰兜率 率乃僧舍印悟所築而自居者也 悟以吾儒書爲世俗文 只以識佛經 爲諸僧立赤幟 足跡不出洞門云

 

 옛 제석당터는 소나무 군락이 있는 바위 전망대이다직령(直嶺)은 곧을직 재령으로 글자 그대로 곧은재이다印悟 : 자 묵계(默契). 호 청매(靑梅). 휴정(休靜)의 제자이다. 1592(선조25) 임진왜란 때 3년 동안 의승장(義僧將)으로 왜적과 싸워 공을 세웠다왜적이 물러가자 부안(扶安요차봉(了嵯峯)의 마천대(摩天臺기슭에 월명암(月明庵)을 짓고 살다가지리산(智異山연곡사(鷰谷寺)로 옮겨 거기에서 말년을 보냈다저서에 청매집(靑梅集)》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인오 [印悟]

 

 

 1686년 정시한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도솔암(兜率庵)

 

 4 16[흐린 뒤 맑음] (두타암에서) 아침 식사 뒤에 석겸 스님과 경숙이를 도솔암(兜率庵)으로 먼저 보냈다잠시뒤 사철·삼응 스님이 각각 묘적암과 무주암에서 내려왔고두 수좌 스님과 함께 요열 스님도 왔다두 수좌 스님과 동행하였고요열 스님은 인사하고 떠났다우리는 고개 둘을 넘어 사철 스님이 봐둔 암자터에 올라갔다터는 바위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는 기괴한 입석이 많다잠시 머물다가 나무 그늘로 해서 밑으로 내려와 도솔암(兜率庵) 도착했는데의철 스님이 먼저 와 있었다온돌이 너무 뜨거웠다저녁 식사 뒤 삼응 상좌와 상현(尙玄스님이 해인사에서 왔는데 엿(餌糖)을 대접했다모두 함께 묵었다오늘은 20여리를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