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와불산 향로봉과 미타봉 소림선방 이야기

도솔산인 2022. 5. 16. 08:43

와불산 향로봉미타봉 소림선방 이야기

 

 

▣ 일 시 : 2022년 05월 14일(토)~15일(일)

▣ 코 스 : 송대-선녀굴-미타봉샘-미타봉-향로봉-사립재골 습지-집터-방장문-청이당-어름터-광점동 

▣ 인 원 : 4명

▣ 날 씨 : 맑음

 

 

  최근 카카오 지도를 보니 와불산과 미타봉이 이제야 제자리를 잡았다. 지명의 오류는 바로잡히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지리산길 지도를 보고 미타봉을 상내봉이라고 부른다. 인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주민들의 구전을 제멋대로 해석하여 검증도 없이 지리산길 지도에 표기한 결과이다. 그 사람들은 미타봉을 상내봉이라고 하고, 노장대를 함양독바위, 진주독바위(옹암)를 산청독바위라고 한다. 기러기 발을 아교로 붙이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격이다. 오류라는 것을 알면서도 함구무언(緘口無言)하고, 일수불퇴(一手不退) 수정하지 않는다.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도 실력이다. 남들을 절대로 인정하지 못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한 마디로 초등학교 일진회 수준이다.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향로봉과 미타봉에 대한 기록이 있다. "나 혼자 지팡이를 짚고 삼반석(三盤石)에 올랐다. 향로봉(香爐峯)미타봉(彌陀峯)이 발아래 있었다."라는 문구이다. 유두류록에 있어서 유일한 오류로 보인다. 안내한 승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은 듯싶다. 결과적으로 점필재의 기록은 혼란을 준다. 안개비 내리는 어느날 오뚝이 바위가 내 눈에 향로의 형상으로 보였다. 향로봉의 이름도 바위 모양에서 취한 듯하다. 송대에서 바라보면 미타봉은 부처님의 얼굴이고, 향로봉은 부처님의 단전(배꼽)이다. 1193.3봉은 와불의 발에 해당한다. 본래 동쪽에 향로봉이 있고 서쪽이 미타봉이다. 김종직은 함양 군수 재임 중 여러 차례 마천과 용유담을 다녀갔다. 생각을 전환하여 "향로봉과 미타봉이 부처님 발아래 있다."라고 이해하면 어떠할지... "용유담에서 바라본 향로봉과 미타봉은 와불의 발 아래에 있다."라는 칠성 님의 의견이다.

 

 

 

용유담에서 바라본 와불산
미타봉에서 바라본 향로봉과 오뚝이 바위

 

  의논대에서 정면(직선 거리 600m)으로 보이는 미타봉(彌陀峰, 1164.9m) 송대 마을 쪽에 석굴이 있다. 석실 내부에는 바닥을 평탄(平坦)하게 하기 위해 축대를 쌓았다. 그리고 상 허리길이 고열암에서 미타봉으로 연결이 되는데, 삼열암의 승려들이 이 길로 왕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선녀굴에서 미타봉까지도 길이 있다. 강계형(姜桂馨, 1875-1936)의 〈양화대산수록(陽和臺山水錄)〉에 향로봉(香爐峰)에 대한 명확한 기록이 있다. 또한 동시대에 의탄 의중마을에 살았던 탄수(灘叟) 이종식(李鐘植, 1871~1945)의 〈탄수 이종식 선생 비결명문논집〉에는 상로봉(霜老峰)으로 기록하고 있다. 향로봉(香爐峰)을 경상도 방언으로 상내봉이라고 한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상내봉은 경상도 사투리에서 향로봉의 구개음화 현상이다. 와불 형상을 한 불두(佛頭)에서 발끝까지 전체가 와불산이다. 와불산의 주봉인 1213.9m봉이 향로봉(상로봉, 상내봉), 불두의 형상인 1164.9m 봉이 미타봉이다. 소림굴은 미타봉의 부처님 입속에 있다.

 

 

1. 1472년 김종직(金宗直)의 〈유두류록〉과 기행시 의논대(議論臺

 

○ 1472년 8월 14일 서쪽 능선을 따라 조금 가서 고열암(古涅庵)에 다다르니, 날이 이미 저물었다. 의론대(議論臺)가 서쪽 봉우리에 있었다. 유호인 등이 뒤에 처져 있어 나 혼자 지팡이를 짚고 삼반석(三盤石)에 올랐다. 향로봉(香爐峯), 미타봉(彌陀峯)이 발 아래 있었다. 

 

 

의논대(議論臺)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兩箇胡僧衲半肩 : 참선승 두 사람이 장삼을 어깨에 반쯤 걸치고

巖間指點小林禪 : 바위 사이 한 곳을 소림선방이라고 가리키네.

斜陽獨立三盤石 : 석양에 삼반석(의논대) 위에서 홀로 서 있으니

滿袖天風我欲仙 : 소매 가득 천풍이 불어와 나도 신선이 되려 하네.

 

胡僧(호승)  선(禅)의 어록 등에서 달마대사(達磨大師)를 가리켜 참선승으로 국역함. ② 호국(胡国)의 중 ③ 서역이나 인도에서 온 중. 소림선방 : 중국 쑹산의 소림사에 있는 한 동굴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9년간 면벽참선수행을 했다는 소림굴을 말함. 三盤石 : 넓은 반석, 의논대를 가리킴. 天風 : 하늘 바람, 가을바람.

 

 

2. 강계형(姜桂馨, 1875-1936)의 〈양화대산수록(陽和臺山水錄)

 

산의 여세가 잘게 나눠지고 흩어져 천 봉우리 만 골짜기가 되었고, 힘을 쏟아 큰 줄기가 되어 멀리 아득히 치달리고 뛰어 올라 그 기교를 다하였다. 사립재에 이르렀다가 향로봉(*지금의 상내봉 3거리 옆 봉우리인 듯)이 되었고 정수를 뽑아 우뚝 솟았으니, 이는 군 남쪽 엄천 남녘의 조산(祖山)이 된다.(이재구 선생 譯)

 

 

3. 이종식(李鐘植, 1871~1945)의 〈비결명문 논집〉 

 

金鷄避亂豫標點 : 금계가 피난처라고 미리 표점하니 

一姓一步遠傳昊 : 한 성씨 한 걸음씩 널리 전해졌네.

同胞戰亂自足殺 : 동포들은 전란에서 스스로 죽일 수 있다고

灘叟未來秘訣布 : 탄수 공이 앞으로의 일을 비결로 퍼트렸네.

晨明早日霜老峯 : 동이 트면 해가 일찍 뜨는 상로봉

陽色眺會避難處 : 양기가 빠르게 모여드는 피난처네.

洞民功德追尊碑 : 동민들은 추존비를 세워 공덕을 기리고

灘叟創始金鷄洞 : 탄수 공은 이곳에 금계동을 창시하였네.

 

  김종직의 '의논대' 시 2구에 나오는 '소림선방'에 대한 필자의 생각이다. 그동안 의논대 시를 읽으며 막연하게 '바위 사이 한 곳'을 부처님 얼굴의 바위 사이라고 생각했다. 유두류기행시 의논대를 처음 읽은 것이 2006년이고, 첫 답사를 하고 재해석을 한 것이 2008년이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2020년 3월 28일 석굴을 찾았다. 미타봉에 일부 남아 있는 담장 석축은 수행하는 공간에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 역할을 한 것으로 이해한다. 미타봉은 아미타불(Amitabha, 阿彌陀佛)의 형상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미타봉의 석실은 아미타불이 되기 위한 참선승(胡僧)들의 수행 공간으로, 김종직의 유두류기행시 '의논대'에서 '소림선방'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림굴'은 중국 숭산(崇山)의 소림사(小林寺)에 있는 한 동굴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9년간 면벽참선 수행을 했다는 소림굴(小林窟)을 말한다.

 

☞ 아미타불(Amitabha, 阿彌陀佛) : 서방정토에 머물면서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부처다. 다섯 구원불 가운데 하나로 '무한한 수명'이라는 뜻을 가졌다. 아미타불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모두 정토에 태어나 복을 누리며 산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아미타불 신앙으로 650년경부터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한국에는 선덕여왕 때 자장이 〈아미타경소〉를 계기로 정토신앙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불교신앙의 일반적인 형태로 정착되었다. 동의어 무량광불(無量光佛), 무량수불(無量壽佛) 출처 : 다음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