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의 전쟁 황석산성을 찾아서
▣ 일 시 : 2022년 02월 23일(수)~25일(금)
▣ 코 스 : 봉전-남문-동문-황석산-남문-봉전-거연정-군자정-동호정-하준수 생가-용추폭포-노응규 생가-하기락 학덕비
▣ 인 원 : 3명
▣ 날 씨 : 맑음(영하 3도)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함양 안의면의 인걸과 지령(입력 2022.02.28 00:00)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라고 하였던가! 정권은 있다가 사라지는 일시적인 것이지만 산천은 큰 변화 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정권에 너무 목숨 걸지 말고 산천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주변의 산세를 자세히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안의면에서 농협 조합장을 하는 전인배(62)씨의 안내로 그 유명한 화림동 계곡의 정자들과 황석산성, 기백산의 용추폭포, 부전계곡에서 선비들이 탁족하던 와룡암, 괘관산 일대, 빨치산 대장이었던 남도부(하준수)의 생가가 있는 병곡면 도천리도 둘러보았다.
안의는 지령(地靈)이 뭉쳐 있는 명당이어서 선비들이 살만한 동네였다. 백두대간이 지나가다가 우뚝 솟은 남덕유산. 함양은 이 북쪽의 남덕유산이 배산이 되고 남쪽의 지리산이 안산이 되는 형국이다. 풍수가에서 들리는 이야기로는 뒷산보다 앞산이 더 높아 외지에서 거물이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함양의 상림을 조성한 최치원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조선조 제일의 문장가인 연암 박지원도 안의에 와서 현감을 지냈고, 현감 시절에 여기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돌렸다.
남덕유산에서 맥이 둘로 갈라져 안의로 내려온다. 한 가닥은 거망산, 황석산을 거쳐서 안의향교 자리로 떨어졌다. 다른 한 가닥은 육십령과 괘관산, 대밭산을 거쳐 안의면사무소와 광풍루로 떨어졌다. 남덕유산의 왼팔과 오른팔 끝자락이 안의에 와서 그 기운이 뭉친 셈이다. 황석산과 괘관산은 1000미터가 넘는 험한 바위산이다. 그 험한 바위산의 부글부글 끓는 기운이 안의에 와서는 어느 정도 성질을 풀었다. 하지만 안의의 앞산이 되는 골무산(鶻舞山)도 간단치 않다. 맹금류인 솔개가 춤을 춘다는 의미다. 안의 사람 가운데 솔개 같은 기상을 타고난 사람이 많다.
정유재란 때 최고의 요새 지형인 황석산성에 올라가서 7만5000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이 약 7000명. 왜군 모리 데루모토(히로시마 성주)의 주력부대가 와해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힌 의병 상당수가 안의 사람이라는 게 ‘백성의 전쟁’을 쓴 향토사학자 박선호(74)의 주장이다. 안의 사람 박선호는 이걸 밝히는 데 20년 세월을 바쳤다. 근자에는 안의에서 하기락(河岐洛·1912~1997)과 이진언(李聄彦·1906~1964)이 나왔다. 하기락은 한국 아나키스트 운동의 대부였고, 이진언은 고향 후배인 하기락을 후원하고 안의 인재들을 배출한 안의중학교를 설립하였다. 인생 살면서 명산의 지령을 살펴보는 게 큰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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