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가야국 천년의 비밀정원 관음습지와 사명대사길

도솔산인 2022. 2. 9. 20:04

가야국 천년의 비밀정원 관음습지와 사명대사길

 

 

▣ 일 시 : 2020년 02월 08일(화)~09(수)

▣ 장 소 : 가야산 천년의 비밀정원 관음습지

▣ 코 스 : 관음암-관음습지-홍제암-거덕사지-관음습지-관음암

▣ 인 원 : 4명

▣ 날 씨 : 맑음, 영하 5도

 

 

 지난해 11월 16일에 이어 두 번째 산행이다. 가야산 해발 800m~900m 고원에 국내 최대 면적의 고산습지가 있다. 철저히 출입이 통제되어 거의 외부에 알려져 있지 않다.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군데군데 모니터링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야생동물과 식생의 보고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존이라는 미명(美名) 하에 적송 소나무 군락과 잡목이 울창하여 육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답사에서 해인사 홍제암에서 거덕사지→관음습지까지 가야시대 옛길을 확인하였다. 홍제암에서 거덕사를 지나 관음 습지→수도지맥의 살푸지재(947m)를 넘어 북으로→개금마을→목통령(985m)을 넘으면 김천으로 가고, 살푸지재를 넘어 동으로 달리밭골 허리길을 타고 불기령(997m)을 넘으면 성주로 가는 길이 연결된다. 홍제암에서 살푸지재로 가는 마차길은 치인리 산1-1번지와 21-1번지의 경계이다. 

 

 최치원이 지은 석순응전(釋順應傳)에 의하면 거덕사(擧德寺)는 "대가야국(大伽倻國)의 월광태자(月光太子)가 처음으로 불연(佛緣)을 맺은 곳"으로 가야시대의 사찰이다. 거덕사지는 개금동에서 해인사 들어가는 마차길의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마차길은 인위적 토목 공사를 하여 구축된 도로이다. 관음습지 주변은 가야국의 말목장(馬場)과 기마병의 주둔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김천의 직지사는 사명대사길 일부를 복원하여 홍보하고 있다. 이따금 '개금 약초마을' 시그널이 눈에 띄었다. 지역 주민들이 가야의 옛길과 사명대사 길을 복원하려는 노력이 관음습지 때문에 멈춘 듯하다. 사명대사길은 김천 직지사에서 합천 해인사 홍제암까지 사명대사가 말년에 오간 길이다. 관음습지는 2014년 12월 31일~2033년 12월 31일까지 출입금지 통제구역이다.

 

 

 

관음습지

 

 

 

▼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 탑 및 석장비

 

 해인사 홍제암에 있는 사명대사의 탑 및 비(碑)이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서 큰 공을 세운 승려로, 이곳 홍제암은 사명대사가 수도하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암자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에서 따온 것이다. 홍제암의 북동쪽 약 20m 지점의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사명대사 탑은 조선 후기를 대표할 수 있는 거대한 종 모양의 탑으로, 당당한 형태와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기단은 하나의 돌로 2단을 이루었는데, 아랫단은 사각형이고 윗단은 둥근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그 위에 종 모양의 몸돌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탑의 꼭대기에는 연꽃 봉오리 모양의 보주(寶珠)를 올려놓았다.

 

 사명대사 석장비는 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으로, 광해군 4년(1612)에 세웠으며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이 비문을 지었다. 일제시대(1943년) 때, 비문의 내용이 민족혼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하여 일본인 합천 경찰서장이 네조각으로 깨뜨린 것을 1958년에 다시 접합하여 세웠다. 이 석장비는 현존하는 사명대사비 가운데 가장 먼저 건립되었으며, 문장이 매우 빼어날 뿐 아니라 비문에 대사의 행적이 비교적 소상하게 적혀 있어 역사적인 가치도 높다. 사명대사의 탑과 석장비는 본래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던 것으로, 이러한 형식은 신라시대 이래의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인 의의가 있다.<출처 : 위키백과>

 

 

해인사 홍제암
자통홍제존자석장비명
사명대사 승탑

 

 

▼ 합천 가야산 거덕사지  : 합천... 가야산 거덕사지 석탑 부재 (daum.net)

 

 근대의 대표적 학승으로 꼽히는 지관 스님께서 편찬한 <해인사지>에 “거덕사(擧德寺)란 절은 해인사에서 서쪽으로 홍제암을 지나 개금불로 가는 도중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라고 나온다. 또 최치원이 지은 석순응전(釋順應傳)에 의하면 “해인사 서쪽 양계(兩溪)가 교호(交滸)하는 지점에 난야(蘭若)가 있으니 이가 곧 거덕사(擧德寺)이다. 과거 대가야국(大伽倻國) 월광태자(月光太子)가 처음으로 불연(佛緣)을 맺은 곳”이라고 했다.


 이 거덕사지에 무너져있던 한 괴탑(壞塔)은 1926년에 해인사 명부전(冥府殿) 정중(庭中), 현재는 대비로전(大毘盧殿) 앞에 옮겨 놓았다고 한다.(현재 해인사 대비로전 앞 삼층석탑 1~2층의 옥계석과 그 사이 기둥의 색깔은 거덕사지에 있는 괴탑의 색깔과 같다고 확인된다.) 해인사를 창건하던 때가 서기 802년인데, 이때 이미 절은 폐사(廢寺)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출처 : 합천신문>

 

 

 

 

▼ 가야산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길

 

1917년 일제가 제작한 조선의 오만분지일 지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