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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 의중마을 임종달(林鍾達, 1843~1886) 공의 교지

도솔산인 2021. 6. 3. 08:21

마천 의중마을  임종달(林鍾達, 1843~1886) 공의 교지

 

임종달(林鍾達, 1843~1886) :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도오(道吾) 호는 신정(愼亭) 한말 마천 의중마을에 살았던 인물, 공의 장남이 영택(英澤, 1866~1925), 둘째가 성택(性澤, 1868~1922), 셋째 아들이 와유강산(臥遊江山)을 지은 삼송(三松) 임응택(林應澤, 1879~1951) 선생이다. 삼송 공은 종구품(從九品) 선릉 참봉(宣陵參奉) 벼슬을 지냈다. 아래 교지는 임종달 공의 고손자인 임재운(林載雲, 1952~ ) 화백에게 받은 자료이다. 

 

 

임종달(林鍾達, 1843~1886) 공의 교지(자료 : 임종달 공의 고손자 임재운 화백님)

 

敎旨

林鍾達通政大夫爲左承旨(兼)經(?)筵參贊五衛都摠官副司諫者

光緖九年(1883년)二月

內府大臣金嘉榮宣

 

통정대부 임종달을 좌승지겸 경연청 참찬관과 오위도총관 부사간으로 삼음.

광서 9년(고종 20년, 1883년) 2월

내부대신 김가영이 임금의 명을 알림.

 

☞ 光緖(광서) 청나라의 제11대 황제(재위 1874∼1908) 광서제 연호 九年(1883년, 고종 20년) 二月

 

 

의미상으로는 '참찬(參贊)'이면 보통 '경연참찬(經筵參贊)'인데, 연(筵)자는 맞는데 경(經)이 애매하다. 승정원 승지에게 의례히 딸려가는 겸직을 예겸이라고 하는데, 좌우승지의 예겸직은 보통 경연 참찬관이다. 그런데 경자를 이렇게 써 놓은 경우는 잘 없어 보인다. 그래도 의미상으로 경연(經筵)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좌승지 다음에 겸(兼)자가 보통 와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교지(敎旨)는 왕이 직접 임명할 때 쓰는 용어이다. 이 문서의 공식적인 명칭은 관고(官誥)이다. 교지 끝에 내부대신 김가영 선(宣) 이라고 적은 것도 이 교지가 4품 이상 관원을 임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지'라는 말을 붙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부대신 김가영이 왕명을 빌어 발급한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발급자의 성명을 붙이고 끝에 '선(宣)'을 붙이는데, 선(宣)자는 붙이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5품 이하는 관첩(官帖)이라고 한다.

 

☞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오류가 있으면 바로잡아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