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상류암에서 새봉까지 박여량 루트를 잇다(200307~08)

도솔산인 2020. 3. 9. 01:49

상류암에서 새봉까지 박여량 루트를 잇다(200307~08)

 

 

▣ 일 시 : 2020년 03월 07일(토)~08일(일)

▣ 코 스 : 1일차 새재마을-상류암-초령[새봉](원점회귀)

             2일차 상류암-상류암&청이당 갈림길-동부능선-점필재 루트 상 허리길-옹암(진주독바위)-상류암-새재마을

▣ 인 원 : 7명(一丁 선생님, 굴암산님, 산영님, 도필락님, 송연목님, 김자준씨) 

▣ 날 씨 : 첫날 눈, 다음날 맑음(새벽 온도 영하 1도)

 

 

금요일(6일) 저녁 늦게 출발하여 단성면 길리 지리산 참숯굴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산천재에 문안을 드린 후, 지난 2월 22일~23일 마을터에서 능선의 안부까지 미답 구간을 연결하여 상류암에서 초령 가는 길을 완성하였다. 눈이 귀했던 지난 겨울을 보상이라도 하듯, 조개골 계곡을 들어서자마자 춘설이 내리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상류암터를 출발하여 마을터까지 등고선을 따라 트래버스를 하여 순조롭게 진행했다. 지난번 산행에서 놓쳤던 부분을 보완하고 마을터에서 올라갔던 오른쪽 너덜이 아닌 왼쪽 능선으로 초입을 잡았다. 능선으로 조금 오르면 길 흔적이 나타나는데, 지능선의 우뚝 솟은 암봉을 만난다. 이 바위봉에서 산죽과 너덜지대의 사이를 오르면 독바위와 새봉의 사이 안부가 나온다. 올라갈 때는 암봉을 직등하였고, 내려오면서 길을 바로잡았다. 안부에서 내려오면 길 흔적이 뚜렷하다. 산죽 왼쪽 사면(너덜과 산죽 사이)을 따라 아래로 조금 내려오면 사면으로 돌을 깔아 길을 포장한 흔적이 있고 그길을 따르면 바로 마을터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계곡을 건너 거의 같은 고도로 트래버스를 하여 몇 굽이 지능선의 안부를 돌아 진행하면 상류암터 전망대로 이어진다. (3월 14일 재답사 마을터로 내려가지 않고 직접 새봉 안부로 가는 길을 찾았음)

 

다음날은 상류암에서 앞 능선을 넘어 청이당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동부능선으로 올라갔는데, 점필재 루트인 상 허리길을 찾기 위함이다. 지난번 산행에서 쑥밭재부터 일부 구간을 답사하였고, 이어서 어름터에서 청이당으로 올라오는 능선 길까지 상 허리길을 찾아 진행하였다. 산영님이 산길을 찾는 방법을 요약하면 첫째, 사람이 짐을 지고 이동하기가 가장 편안한 길, 둘째, 거리상 최단 코스, 셋째, 사람과 가축의 이동이 가능한 동선을 잇는 방법이다. 김종직 선생은 사립재골 동부(洞府)에서 새봉과 독바위를 우회하여 쑥밭재로 올라가 청이당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은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새봉과 독바위에 대한 언급이 없고 지난번 산행에서 일부 상 허리길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구롱(九壟)이 쑥밭재 인근이거나 쑥밭재일 수도 있다고 가정하고 지난 산행에서 상 허리길을 이어왔다. 이 길은 어름터에서 청이당과 독바위로 오른 길과 연결된다. 이번에는 어름터에서 독바위로 오르는 길과 연결되는 곳까지 상 허리 길을 찾아 확인을 하였다. 너덜길에 이따금 나타나는 돌 포장(돌을 촘촘히 깔아 길을 조성한 흔적)이 이곳이 상 허리길이었음을 증명한다. 어름터에서 독바위로 오르는 능선에서 아래로 내려가 인근 집터를 확인한 후 독바위로 올라왔다.

 

상류암으로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고 대원사 앞 바위의 이당 박응종(1893~1919) 마애 성명 석각과 심원대 중재 김황(1896~1976) 성명 석각 등을 확인한 후, 1977년 허유의 두류록에 나오는 浮雲亭(부운정) 터에 이르니 정자 터 뒤에는 어둠 속에서 대나무만 쓸쓸하게 남아 있다. 후산 허유가 들렀던 평촌 주막의 위치를 가늠하고 덕산으로 내려와 저녁을 먹었다. 산행 후 산길에 대한 이야기는 풍성하기만 하다. 면상촌(평촌)이 고향인 산영 조박사님과 지리산의 전설 일정 민선생님의 옛길에 대한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나는 지난 4년 6개월 동안 나에게 던진 수많은 질문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 산행은 박여량 길의 완성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어떤 일을 성급하게 완성하려고 하지 않고, 성과의 분량보다는 내용의 질을 높이는데 충실할 것이다. 그리고 항상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아울러 내 생각에 오류가 있다면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수정해 나갈 것이다. 오는 길에 남사 마을 니사재에 들러 월헌 박우근 선생께서 내주신 이당 박응종 선생의 문집 목활자본 이당고를 가지고 대전으로 올라왔다.  박여량 길을 완성하는데 함께하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끝.  

 

 

회봉(晦峯) 하겸진(1870~1946) 선생은 대원사 앞 옛길 바위의 석각에 있는 이당 박응종과 중재 김황의 스승이다. 회봉 선생의 부운정 7언율시가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회봉집은 1948년 아들 영윤(泳允)과 문하생들이 경상남도 진양군의 덕곡서당(德谷書堂)에서 간행하였다. 회봉 하겸진 선생은 제자인 이당 박응종의 유고집 이당고의 서문을 지었다. 회봉유고 云 내가 산천재에서 몇 달 머물 때 이공유, 한희녕, 조중근이 연이어 와서 함께 남명 선생의 '학기류편'을 교정하고서 함께 대원사 계곡을 유람하여 부운정에 이르러 잠시 쉬었다.(余留山天齋數月李孔維韓希寗曺仲謹繼至共訂南冥先生學記因與爲大源之遊至浮雲亭少憩)

 

 

浮雲亭(부운정) 晦峯 하겸진(河謙鎭, 1870~1946)

 

方丈靑山特地深 : 푸르른 방장산 별천지가 깊기도 하구나

雲亭蕭洒日微陰 : 상쾌한 부운정 해가 엷은 구름에 가렸네.

牛羊小巷同熊鹿 : 소양은 작은 골짜기에서 곰 사슴과 함께 살고

䆉稏陂田出樹林 : 비탈진 밭에 심은 벼는 나무 숲 속에 보이네.

勝處如將生羽翰 : 명승에선 장차 날개가 생겨 날아갈 듯하니

壯遊胡乃役形心 : 장대한 유람 어찌 형체와 마음 수고롭게 하리.

崔仙一去無遺跡 : 최고운 신선 한번 떠난 뒤로 남은 자취 없고

只有浮雲自古今 : 단지 예로부터 지금까지 뜬 구름만이 있구나

 

출처: 회봉유고 권 1.1.

 

 

1877년 허유의 두류록(1877년 8월 8일)

 

○ 8날씨가 매우 맑았다. 아침밥을 먹고 출발하였다. 조형칠이 미비된 산행 도구를 챙겨 우리와 함께 갔다. 북천(北川)을 건너 십리를 가서 송객정(送客亭)에서 쉬었다. 옛날 노선생[남명(南冥) 조식(曺植)]이 덕계(德溪 : 오건(吳健))를 전송할 적에 굳이 멀리 여기가지 나와서 전송했다. 정자의 이름이 이 때문에 붙여졌다. 지금은 노수정이다. 노수정 위쪽에 낙마파(落馬坡)면상촌(面傷村)이 있었다. 전하는 말에 "오덕계가 남명 선생과 작별하고 물러나 여러 동문들과 술을 실컷 마시고 작별한 뒤 술에 취해 말에서 떨어져 얼굴에 상처가 났다. 그해서 그런 지명이 생겼다"라고 한다.

 

십리를 가서 평촌(坪村)의 주막에 들어가 한 순배 술을 마셨다. 장항령(獐項嶺)을 지나 浮雲亭(부운정)에 올랐다. 여기에서 대원암(大源菴)까지 거리는 멀지 않았다. 길은 숲 속 나무 곡대기 위로 가파르게 나 있고 , 물은 바위 사이로 요란하게 흘러내렸다.  길을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저 멀리 운무 위로 올라가 신선에게 읍을 하는 기분이 들게 하였다. 돌다리에 이르자 문득 옛날 내가 이성 양(李聖養)과 함께 이곳을 유람하며 매우 즐거웠던 생각이 떠올랐다. 오늘은 그와 함께 오지 못했으니 어찌 그리 서운한지. 석대에 잠시 쉬면서 생각나는 대로 다음과 같이 시를 읊조렸다.

 

출처 : 지리산 유람록 4(최석기 외)

 

* 이정모(李正模) 1846(헌종 12)1875(고종 12) 1217. 조선 후기 문인. 자는 성양(聖養)이고 호는 자동(紫東)이다. 본관은 고성(固城)

 

 

산천재
상류암 터 가는 길
암자 서쪽에 있는대의 조망
상류암 터
마을터 위 낮은 능선으로 오르면 암봉이 나오고, 암봉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새봉과 독바위 사이 안부가 나온다.
마을터 흔적 이곳에서 10시 방향으로 진행하여 능선으로 오른다.
암자의 서쪽에 있는 대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상류암 서쪽 대의 조망
돌포장 길
점필재 루트에서 만난 거목
돌포장 길은 이곳이 상 허리길임을 증명한다.
점필재 루트 상허리길
집터
옹암(진주독바위)
심원대 석각

 

대원사 옛길 심원대의 독립운동가 김황(金榥) 성명 석각 : http://blog.daum.net/lyg4533/1648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