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영랑대에서 쑥밭재를 지나 새봉 가는 길(200213~14)

도솔산인 2020. 2. 15. 00:48

 

영랑대에서 쑥밭재를 지나 새봉 가는 길(200213~14)

 

 

▣ 일  시 : 2020년 02월 13일(목)~14일(금)

▣ 코  스 : 새재마을-청이당-행랑굴-영랑대-국골 사거리-쑥밭재-옹암(진주 독바위)-새봉-새재-새재마을

▣ 인  원 : 3명(백두대간 송대장님, 자일산악 고사장)

▣ 날  씨 : 맑음(새벽 온도 0도)

 

 

 夜坐即事 : 밤에 앉아서 

 

                            穌齋 盧受愼(1515∼1590)

 

高坐容先整 : 곧추 앉아 먼저 자세부터 가다듬으니

才求放便回 : 겨우 놓쳤던 마음이 바로 돌아왔건만

不敎奔似馬 : 고삐 풀린 말처럼 내닫지 못하게 하니

只怕死如灰 : 싸늘하게 식은 재 같이 될까 두려워라

饑鼠閑行止 : 굶주린 쥐는 느릿느릿 가다가 멈추니

輕風自往來 : 가벼운 바람만 저절로 오고 가는구나

何須閉耳目 : 어찌 굳이 눈과 귀를 닫아야만 하리요

虛一盖難哉 : 텅비어 하나 된 마음 지니기 어려워라

 

☞ 盧受愼(1515∼1590) : 조선 전기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穌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봉노인(茹峰老人). 우의정 노숭(盧嵩)의 후손이다. 2018년 8월 9일 경북 상주시 화서면 봉산서원에서 소재(穌齋) 노수신(盧受愼, 1515∼1590)의 시비(詩碑)를 폰에 담아서 블로그로 옮겼다.

 

 

소재노수신선생시비

 

 

  대전 자일산악 고사장으로부터 모처럼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영랑대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데, 함께 동행하고자 하는 분은 내가 평소 존경하는 지리에 대한 열정이 국사무쌍(國士無雙)인 지리 골수 마니아 백두대간늑대님이다. 내가 고사장에게 카톡으로 보내준 '지리 동부 아란야 영랑대 설국 속으로'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動(동) 한 것 같다. 고사장은 40년 지기에 20여 년 전 내가 학생들과 지리산 종주를 할 때 여러 번 Cook을 도왔던 절친이다. 그는 오래전에 산악회를 만들어 지금도 운영하고 있고, 나는 개인 산행만 고집하였으니, 산행을 함께한 것이 오래되었다. 아무튼 병과가 전혀 다른 세 사람의 색다른 조합이다,

 

  화요일 자일산악에 들렀는데, 고사장이 지리 동부의 지명인 쑥밭재와 독바위, 새봉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오면서, 이번 산행에서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하여, 새재 마을을 기점으로 영랑대에서 새봉으로 코스를 잡았다. 대전을 출발할 때 빗방울이 뿌렸는데, 육심령을 지나면서 하늘이 열리더니 새재 마을에 올라가니 하늘이 새파랗고 쾌청하다. 조개골의 우렁찬 물소리는 봄이 이미 왔음을 느낄 수 있었고, 포근한 날씨는 세 사람의 산행을 도왔다. 폭설로 완전히 덮였던 산죽 구간은 눈이 녹아서 길이 열려 있었고, 생각보다 수월하게 청이당터에 닿았다. 행랑굴에서 물을 취수하여 1618봉(말봉)에 들렀다가 영랑대에 오르니, 파란 하늘과 상봉과 중봉, 하봉이 우리를 맞이한다. 영랑대에서 송대장님의 권유로 술을 잔에 따르고 상봉을 향해 삼배를 올렸다.

 

  밤새 송대장님께서는 바람 소리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셨고, 나와 고사장은 영랑대 파도 소리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졌다. 새벽에 달이 중천에 떠있더니 날이 밝아오면서 옅은 구름에 가렸다. 일찍 출발하려고 채비를 하였으나 날씨가 따듯하고 조망이 너무 좋아 출발을 늦췄다. 1618봉 안부에서 국골 사거리로 가는 길, 눈이 많이 녹았지만 전차군단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청이당터 앞 점필재가 쉬어간 계석에서 점심을 먹고, 진주 독바위(옹암)을 지나. 석문에 잠시 들렀다가 새봉을 넘어 너럭바위에서 잠시 배낭을 내려놓았다. 이곳의 조망 또한 일품이다. 새재로 가는 길에 눈이 있는 곳은 10일 전 진주 심마니님의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눈 덮인 산길을 걸으면, 그 흔적이 후답자의 길잡이가 된다는 것...  이양연(李亮淵,·1771∼1856)의 천설(穿雪)을 다시 상기하면서 산행기를 맺는다. 숫눈길을 뚫고/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아무렇게나 걸어서는 아니 되네/오늘 내가 밟고 간 이 발자국이/뒤에 오는 사람의 길잡이가 되리니... 끝.

 

 

 

 

天禮碭(천례탕/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

 

1472년 8월 15일 점필재가 쉬어간 청이당터 앞 계석

 

청이당터 석축

 

1610년 박여량 행랑굴/1871년 배찬 마암산막/1877년 허유 개운암(마암 석각은 1922년 함양명승고적보존회 새긴 것으로 추정함) 

 

 

 

 

 

 

 

 

 

 

 

 

 

☞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 영랑재(永郞岾), 1586년 양대박의 두류산기행록 영랑봉(永郞峰), 1611년 유몽인의 두류산록 영랑대(永郞臺), 1823년 김선신의 두류전지 영랑참(永郞站)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 하봉 옛길에서 다 올라와 1618봉(말봉?) 안부를 영랑재라고 알고 있는데 그것은 오류이다. 

 

 

 

 

 

 

 

 

 

 

 

 

 

 

 

 

 

 

 

 

 

 

 

 

 

 

 

 

 

두류능선이 시작하는 이곳을 지역 사람들은 두리봉(두류봉)이라고 한다.

 

쑥밭재

☞ 쑥밭재의 명칭은 1871년 배찬의 유듀류록에는 애현(艾峴), 1877년 박치복 남유기행과 허유의 두류록, 1937년 김학수의 유방장산기행에는 애전령(艾田嶺), 1887년 정재규의 두류록과 1956년 함양군지에는 봉전령(蓬田嶺)으로 1933년 석전(石顚) 박한영의 석전사문에는 봉전치(蓬田峙)로 나타남. 애현, 애전령, 봉전령, 봉전치는 쑥밭재를 한역한 명칭임.

 

 

▶쑥밭재, 일명 애전령(艾田嶺), 초령(草嶺)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쑥밭의 '쑥'은 원시어소 [슬/sur]의 변이음이고 '밭'은 [불/bru]의 변이음이다. 기슭을 가리키는 [슬/sur]도 대광상고(大廣上高)의 뜻을 지니고 있다. '쑥밭재'는 크고 높은 뜻의 지명이다. 초령(草嶺)의 한자 草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새(사이/사)]음을 차자(借字)할 때 많이 썼는데. [풀/불/블] 음을 차자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도 있어 일단 설명을 보류한다.

 

출처 : 슭마노르님의 블로그 [슭/sur] 유전자가 들어있는 지명 : http://blog.daum.net/pance73/10068

 

  

 

 

1611년 유몽인의 두류산록 옹암(진주독바위) 산청독바위(×)는 최근에 호사가들이 붙인 이름임.

 

 

 

 

새봉 너럭바위

 

심마니 이상인님의 발자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