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이당에서 상류암을 지나 새봉 가는 길(200222~23)
▣ 일 시 : 2020년 02월 22일(토)~23일(일)
▣ 코 스 : 새재마을-상류암 터-청이당(두류암 갈림길)-옹암(진주 독바위)-상류암터-초령(새봉)-상류암 터-새재마을
▣ 인 원 : 6명(산영님, 칠성님, 도원님, 날개님 부부
▣ 날 씨 : 맑음(새벽 온도 영하 5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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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4일(*) 아침부터 비가 종일 내리던 날, 진주독바위(옹암)와 새봉 사이 독바위골(현 지도에서 독바위양지 지명은 오류)로 올라가 옹암(진주독바위)에서 노숙을 한 후, 15일 독바위 앞 골짜기를 내려오면서 상류암터를 찾게 되는데, 이후 캠샤프트 해프닝과 지리 99 꼭대님의 온갖 조롱과 비난에도 나는 박여량 길 답사 산행을 멈추지 않았다. 2019년 9월 20일 경북 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부 同學 김동현 선생에게 박여량 두류산일록의 초령 부분 영인본 사진을 받고 초령이 새봉이라는 확신과 판단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 2019년 10월 4일~6일 2박 3일간(*) 박여량 길의 전구간을 답사하면서, 상류암 터에서 1박을 한 후 출발하였으나 안갯속에서 길을 잃고 상류암 터에서 초령으로 가는 길을 잇지 못하였다. 2019년 12월 28일 부산 토요산속 산행대장 칠성님 팀이 상류암터를 답사하면서 청이당-상류암-새봉골(지도에 독바위양지) 구간의 옛길 트랙을 카톡으로 보내왔는데, 솔레이님이 추정한 트랙과 一丁 閔선생님이 말씀하신 등고선 산길과도 일치하였다. 2020년 1월 26일 칠성님 팀은 다시 상류암 터를 거쳐 지름길로 청이당으로 가는 산행을 한 후, 카톡과 전화를 통해 답사 정보를 공유하였고, 드디어 2월 22일~23일 양일 간 상류암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박여량 길 미완의 구간을 답사하기로 약속하였다.
* 1610년 박여량 두류산일록의 上流庵址를 찾아서I(180413~15) : http://blog.daum.net/lyg4533/16487928
* 1610년 감수재 박여량 선생의 두류산일록을 좇아서(191003~06) : http://blog.daum.net/lyg4533/16488200
1. 상류암에서 청이당 터(두류암 갈림길)까지
금요일 저녁 단성면 길리에 있는 지리산 참숯굴에서 1박을 한 후, 산천재에 잠시 들렀다가 덕산 강변 주차장에서 창원의 도원님을 만나 새재로 향했다. 새재에서 목포의 날개님 부부와, 진주의 산영님과 부산의 칠성님과 합류하여 상류암 터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한 후, 이른 점심을 먹고 청이당 터(두류암 갈림길)를 향했다. 상류암 샘터에서 계곡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희미한 사거리가 나오고, 계곡의 너덜 지대에 이르면 돌을 채우고 깔아 길을 낸 흔적이 뚜렸하다. 이곳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사면 길은 고도 차이가 없어 산죽 길이지만 부드럽고 유순하다. 능선 바로 아래 숯가마터가 있으며 고개에 올라가 오른쪽 사면으로 고도 차이가 없이 산길은 청이당 옛길로 이어진다. 이 고개는 지난해 10월 6일 안갯속에서 길을 잃고 멈추었던 지점이기도 하다. 청이당 옛길에서 계곡으로 내려서서 길 없는 길로 오름길을 잡았다. 그 이유는 박여량 선생 일행이 청이당터 아래 두류암 갈림길에서 길을 놓쳐서 계곡으로 내려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곡으로 내려선 후 오름 길에는 개회나무 상황버섯이 간간이 눈에 뜨이지만 내 눈과 귀에는 황량한 겨울 나무 숲과 우~웅 웅~웅 울부짖는 바람 소리뿐이다. 산영님 설명에 의하면 이 부근이 상황버섯의 생육 조건이 맞는 곳이라고 한다. 점필재가 쉬어간 계석에는 앞서간 덕불고님이 바람 때문에 텐트를 치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따듯한 커피를 얻어서 나누어 마시고 쑥밭재를 넘어 사면 길로 어름터에서 올라오는 능선을 넘어 독바위로 향했다. 독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지리 동부능선의 풍광은 언제나 경이롭다. 보람찬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상류암 터의 밤은 포근하기만 하다.
2. 상류암 터에서 새봉 가는 길
밤 사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난밤 광풍은 여명이 밝아오면서 잦아들었고, 온도계를 보니 영하 5도이다.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산영님과 칠성님은 산죽 밭에 길을 내는 노역을 나가셨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실패를 하였던 상류암터에서 초령으로 가는 길은 전망대 바위에서 오른쪽으로 트래버스를 하여 소나무가 있는 지능선에 붙으면 사면으로 산죽길이 이어지는데 너덜지대를 가로질러 산죽밭을 통과(천연송 시그널)하면 독바위골이 바로 나온다. 이 코스는 상류암터에서 최단 코스로 거리가 가장 짧으며 옛길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산영님과 칠성님이 선두에서 길을 내고 나는 뒷짐을 지고 맨 후미에서 뒤를 따랐다. 새봉으로 올라가는 골짜기에서 집터(캠사프트가 이곳에도 있음)를 만나고. 우측으로 계곡을 가로지르는 너덜에는 돌을 깔아 인공으로 조성한 흔적이 남아있다. 너덜지대를 올라 능선에 붙으니 축을 쌓아 만든 길의 흔적이 보인다. 이 지점에서 능선으로 오르니, 능선 가까이 샘터(?)가 있고 새봉이 바로 지척에 있다. 새봉 너럭바위에서 한동안 동부능선을 조망하니 서흘산(써리봉)에서 멀리 좌로는 황금능선에서 달뜨기 능선까지 우로는 중봉과 영랑대에서 두류능선을 너머 반야봉까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새봉과 독바위 안부에서 우측 사면을 치고 내려가니 지능선 상단에 숯가마 터와 샘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조금 내려와 아침에 올라간 길을 만나서 상류암터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고 새재로 내려왔다. 산영 曺교수님의 안내로 대원사 앞 옛길 심원대의 김황 성명 석각을 살펴본 후, 덕산으로 내려오니 오후 5시가 넘었다. 덕천강변 황칠청국장에서 저녁을 먹으며 산행에 대한 강평을 하고 각기 출발한 곳으로 돌아갔다.
3. 미완의 상류암 박여량 루트
1610년 감수재 박여량 선생의 두류산일록을 접하게 된 것은 '지리의 구중심처 영랑재(150919~20)' 산행을 하면서 조개골 상류에서 슬기난님과 우연히 만나 행랑굴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행랑굴을 이해하는데 꼬박 22개월이 걸렸고[지리동부 행랑굴과 마암의 묵서 개운암 이야기(170703) 상류암을 찾는데 2년 7개월이 걸렸으나[1610년 박여량 두류산일록의 上流庵址를 찾아서I(180413~15)], 두류암 갈림길에서 상류암과 상류암에서 초령을 잇지 못하였다. 지난 가을에서 초겨울까지 여러 차례 다시 시도를 하였지만 시행착오와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번 답사 산행을 통해 느낀 점은 유람록 답사에 관심 있는 분들과 반드시 산행 정보를 공유해야 하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참여와 의견이 반영되어야만 완성도 있는 유람록 복원이 가능하다고 본다. 아마도 오래지 않아 유람록 답사 산행은 테마 산행의 새로운 한 장르로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몇 번 더 답사를 하며 트랙을 수정 보완해야겠지만, 지리산에 들 때마다 산천재에 들렀는데 남명 선생께서 감동을 하셨는지, 선생의 13대 후손인 산천재 앞 덕천 강물에 비친 산그림자(山影) 님과 박여량 루트를 답사하였다. 끝으로 박여량 길 복원을 하는데 함께하신 분들과 칠성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 산영(山影)님의 산길에 대한 見解를 요약하면...
1. 산길이 완만하여 가축(牛犢) 이동이 가능하여야 하고 짧은 거리여야 함.
2. 산촌에서 산죽은 주 수입원이기 때문에 산죽 밭은 반드시 접근하는 길이 있음.
3. 너덜 길은 지게를 지고 다니기 위해 인공으로 돌을 깔아서 조성한 흔적이 있음.
4. 청이당과 행랑굴(마암) 상류암까지 함양 생활권(하봉 옛길이 함양과 산청의 군계 능선)
청이당과 상류암터에서 나오는 백토로 만든 도기편은 생초 도기소(陶器所)에서 생산된 것임.
5. 현 지도의 독바위양지는 오류로 독바위에서 남쪽 사면 경작지와 집터가 있는 곳이 독바위양지라고 함.
[산영님은 삼장면 평촌 출신으로 실제로 이 마을에 살았던 삼장초등학교(당시 유평분교) 동창이 있다고 함]
6. 산길은 능선길, 등고선상으로 상허리길 중허리길, 아래 허리길(계곡길)이 있고. 이치와 순리를 벗어나지 않음.
※ 지명의 오류 : 소년대부터 영랑재, 행랑굴, 청이당, 상류암, 두류암, 독바위양지, 옹암(진주독바위)은 산청독바위로 창지개명함.
산천재
상류암 터를 오르면서 상류암 직전 산영님의 안내로 처음 쉬었던 쉼터이다. 그동안 풀리지 않던 박여량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암자 서쪽에 있는 대'이다. 커다란 암반 위에 인공으로 조성된 듯한 바위들이 남아있다. 바위만 보고 앞에 조망은 사진에 담지 못하였으니 어쩔거나 다시 갈 수밖에...
암자 서쪽에는 臺(대)가 있는데 주위의 경치가 제법 볼만했다.(菴西有臺頗可觀)
○ 1610년 9월 7일(무신)[1610년 10월 23일 土]
맑음. 세수를 하려는데 이 암자의 승려가 물을 데워 세수물을 준비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사양하고 물통으로 가서 맑은 물을 움켜 낯을 닦았다. 암자 서쪽에는 臺(대)가 있는데 주위의 경치가 제법 볼만했다. 그 곁에 회나무 서너 그루가 있었는데 이제 겨우 한 움큼 정도의 굵기였고 길이는 서너 장쯤 되었다. 밑둥이 곧기 때문에 해를 입지 않고 잘 자라고 있으니 뒷날 유용한 재목이 되리라는 것을 알겠다.[將盥僧請湯水而沃盥。余辭之。乃就水槽水。掬淸注而頮之。菴西有臺頗可觀。臺上有檜三四株。其大僅一掬。其長已三四丈矣。旣以無曲之根。又得養之而無害。其爲他日有用之材可知矣。]
너덜에 돌을 깔아 길을 조성한 흔적
개회나무 상황버섯
천례탕
쑥밭재
☞ 쑥밭재의 명칭은 1871년 배찬의 유듀류록에는 애현(艾峴), 1877년 박치복 남유기행과 허유의 두류록, 1937년 김학수의 유방장산기행에는 애전령(艾田嶺), 1887년 정재규의 두류록과 1956년 함양군지에는 봉전령(蓬田嶺)으로 1933년 석전(石顚) 박한영 스님의 석전사문에는 봉전치(蓬田峙)로 나타남. 애현, 애전령, 봉전령, 봉전치는 쑥밭재를 한역한 명칭임.
甕巖(옹암:진주독바위)
산막터(이곳에도 캠샤프트가 있음)
너덜에 돌을 깔아 길을 낸 흔적
새봉 너럭바위
숯굴 인근에 있는 석굴 앞에는 샘이 있음.
상류암 터
尋源臺(심원대)
☞ 대원사 옛길 심원대 성명 석각 독립운동가 김황(金榥) : http://blog.daum.net/lyg4533/16488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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