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두리의 폐사를 지나 석문 가는 길을 찾아서(191222)

도솔산인 2019. 12. 22. 21:13

 

杜里의 廢寺를 지나 석문 가는 길을 찾아서(191222)

 

▣ 일  시 : 2019년 12월 22일(일)

▣ 코  스 : 광점동-지산대-어름터-부도탑-두리의 폐사-벽송사능선-어름터-광점동

▣ 인  원 : 9명(두발로팀 6명, 백두대간님, 미산님)

▣ 날  씨 : 포근함

 

頭流菴 - 柳夢寅

虛壁脩縑繟  淸光碎石縫 : 텅 빈 절벽은 긴 비단을 드리운 듯하고/맑은 햇빛은 부서진 바위를 꿰맨 듯하네

傳聲通翠筧  飛注作寒舂 폭포 소리는 푸른 대숲을 통해 들려오고/떨어지는 물은 차갑게 절구질을 하네

雙柏西僧老  層壇北斗封 : 두 그루 잣나무 서쪽 승방 가에서 늙었고/층층의 법단은 북두성인듯 우뚝하구나

長風生萬籟  深省寄前峰 : 긴 바람 불어와서 온갖 자연의 소리 일으키니/깊이 성찰하며 앞산 봉우리에 기대 섰네.

 

 * 1구 맨 끝자 享+單은 자전에 없어 느슨할 단, 계속될 선(다른 표현: 띠 늘어질 천)으로 보았고 春(춘)이 아니고 舂 : 찧을용이 맞음, 萬籟 : 자연 에서 만물 내는 온갖

 

頭流菴 贈慧日 兼示修師 - 柳夢寅

(두류암 혜일에게 주고 아울러 수선사에게 보여주다.)

 

先賢曾訪頭流境 路由義呑村之南 : 선현들이 두류산 선경을 찾아 나섰으니/ 길은 의탄촌 남쪽을 경유하였지

我今尋眞入頭流 偶然一宿頭流菴 : 내 이제 진경을 찾아 두류산에 들어와서/ 우연히 하룻밤을 두류암에 묵었네

頭流菴在義呑上 我行適與先賢同 : 두류암은 의탄 마을 위쪽에 있으니/ 내 산행이 마침 선현들의 유람 길과 같네

先賢之跡不可追 攀躋欲上天王峯 : 선현들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없지만/ 더위잡고 오르더라도 천왕봉에 오르고자하네

學士投詩潭龍怒 雲雷作風雨獰 : 학사가 용류담에 시를 던져 용이 노하니/ 구름이 일고 천둥이 쳐서 비바람이 몰아쳤네

山靈借我快眺望 却掃雲翳俄淸明 : 산신령은 나에게 즐거운 조망을 빌려주고/ 구름을 걷어 한순간 대기를 청명하게 했네

冷風颯颯爽籟發 客懷憀慄如三秋 : 서늘한 바람이 불고 상쾌한 소리가 일어나니/ 나그네 회포는 늦가을인 듯 처량하네

山花杜宇啼幾層 令人半夜生閑愁 : 진달래꽃 두견새는 어디에서 우는가/ 한밤중에 잠 못 이루고 수심에 잠기게 하네

慧僧慇懃覓詩句 秉燭起坐强吟呻 : 혜일이 은근히 시를 지어달라고 하여/ 촛불을 켜고 일어나 앉아 억지로 읊어보네

詩不驚人○○焉 爲緣重見情相親 : 시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니...../ 인연이 되어 다시 만나 정이 서로 친하기 때문일세

明朝我向石門去 師在頭流雲水間 : 내일 아침 나는 석문으로 떠날 것이고/ 선사는 두류산 구름과 계곡 사이에 머물겠지요

師憶江南老太守 祖溪秋月倘來看 : 선사는 강남땅 늙은 태수를 생각하리라/ 조계에 가을 달 뜨면 혹 와서 보려나

 

雲翳 : 햇빛을 가린 구름의 그늘. 祖溪 : 두류암

[출처 : 지리산유람 기행시 1권 최석기 외]

 

선인들의 유람록에 등장하는 두류암, 빙티, 자진동, 두리의 폐사, 석문(통천문, 금강문) 옹암은 1611년 유몽인의 두류산록을 복원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이번 산행은 지리 산행 600회를 앞둔 두발로 홍운 선생팀과 상류암에 이어 두류암까지 하게 되었으니, 나의 유람록 답사에 관심을 주신 홍운님께 감사드린다. 아무튼 '살은 섞어도 산은 섞지 않는다.'라는 산행의 질언(質言)을 어기고, 두류암 추정지를 답사하고자 하는 홍운 선생과 사립재골 두리의 폐사(1922년 권도용의 방장산부)를 답사하려는 도솔의 산욕(山慾)에 눈이 맞아 외도 산행을 하게 되었다.

 

 

1611년 3월 28일 유몽인 일행은 남원 관아를 출발하여 재간당(남원 산동면 목동리), 운봉 황산 비전을 거쳐 백장사에 1박을 하고, 4월 1일 산내를 거쳐 정룡암에서 1박을 한 후, 4월 2일 월락동과 황혼동을 지나 와곡(와운)에서 갈원령(영원령)을 넘어 영원사를 지나 군자사에서 1박을 한다, 4월 3일 군자사를 출발하여 의탄, 용류담, 마적암, 송대를 지나 두류암에서 하룻밤 묵는다. 4월 4일 두류암을 출발하여 석문옹암을 지나 청이당을 거쳐 천왕봉에 오르는데, 오늘의 일정은 두류암 추정지(지산대 아래)를 답사하고 쑥밭재 아래 부도탑과,두리의 폐사지를 확인하는 산행이다. 1611년 유몽인이 혜일에게 준 시(頭流菴 贈慧日 兼示修師)의 석문과 1922년 권도용(權道溶) 방장산부(方丈山賦)에 나오는 금강문이 이명동소(異名同所)라면, 사립재골에 있는 두리의 폐사지는 반드시 답사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답사를 통해 두류암-어름터-두리의 폐사-석문-옹암(진주독바위)의 유몽인 길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고, 새로 시작하려는 유몽인 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실은 백 번을 삶아야 하얗게 된다.'라는 선현의 말씀에 따라 나는 어우당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1년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우공이산(愚)의 각오로 답사를 이어갈 것이다.  매 번 하는 이야기지만 나는 佛者도 아니고 佛敎의 佛字도 모르며 폐사지에 대한 식견도 없는 청맹과니이다. 상류암에 이어 두류암에 대한 나의 생각은 선인들의 유람록과 기행시를 읽고 답사한 개인적인 견해이며,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한 것이니, 눈 밝은 후답자들이 바로 잡아주기를 기대한다. 두류암에 대한 나의 의견은 정리한 자료를 링크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지리산에 유람록 답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저에게 큰 힘이 된다는 말씀을 드리며, 함께하신 두발로 팀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제 일행 중 오전에 한 분이 경로를 이탈하고, 오후에 또 한 분이 길을 잃었는데, 아무래도 위치 추적기를 달아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ㅠㅠ 준현이가 아침에 한 약속대로 칡 차를 한 솥 끓여 놓았는데, 두발로 팀을 챙기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일주일 동안 반찬이 없이 밥만 먹었다는 준현이에게 새우탕과 수제비 끓여 먹이고 내려왔습니다. 독가에서 창원에 사는 백현님을 만났는데, 반찬과 부식을 사다 준 것을 보고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끝.

 

* 두류암에 대한 나의 생각 : http://blog.daum.net/lyg4533/16488099 

* 추성리 소재 芝山䑓(지산대) 석각(180624) http://blog.daum.net/lyg4533/16488000

 

 

폭포 소리는 푸른 대숲을 통해 들려오고/떨어지는 물은 차갑게 절구질을 하네(유몽인)

 

텅 빈 절벽은 긴 비단을 드리운 듯하고/맑은 햇빛은 부서진 바위를 꿰맨 듯하네(유몽인)

 

암자 북쪽에 대()가 있어 그곳에 올라 정남쪽을 바라보니, 바위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는데 마치 옥으로 만든 발을 수십 길 매달아놓은 것 같았다.(유몽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