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유령(蠏踰嶺)&선암(船巖) 관련 선인들의 유람록(190903)
해유령과 선암에 대한 기록은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이 유일하다. 유람길은 안내한 승려 법종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해유령을 지나면서 보니 곁에 선암이 있었는데 법종이 말하기를, "상고 시대에 바닷물이 산릉을 넘쳐흐를 때, 이 바위에 배를 매어 두었는데, 방해가 여기를 지났으므로 이렇게 이름 한 것입니다." 하였다.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때의 생물들은 모두 하늘을 부여잡고 살았단 말인가?"라고 하였다.』법종의 말은 누군가 지어낸 말로 생각된다. 운해가 있을 때 영랑대에서 천왕봉 쪽을 바라보면 마치 바다에서 육지와 섬 사이로 바닷물이 넘쳐흐르듯 하봉 헬기장으로 운해가 넘쳐 하봉헬기장으로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천왕봉과 반야봉을 잇는 주능은 육지가 되고 영랑대는 영랑도로 섬이 된다. 차라리 운해가 넘쳐흐르는 고개 海踰嶺이라고 했으면 어떨는지... 2006년 선암을 처음 보았을 때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으로 보였으나, 어느 날부터 점차 부처의 형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볼품없는 작은 바위덩이지만 유두류록을 읽고 선암이라고 직감하였다. 유두류록에는 '상고시대 바닷물이 넘쳐흐를 때 배를 매어두어 선암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칠선휴게소 허상옥 사장에게 '추성리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사람들이 선암을 지날 때 술을 따르고 절을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허 사장은 지리산에서 영랑대와 하봉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선암은 이름과 달리 내게 사면불의 부처 형상으로 보이니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지난해 지리산국립공원 역사문화조사단 점필재길 화첩 산행(190720~22)을 하면서 한국 화가 이호신 화백님과 함께했던 분들께 물어보니 역시 부처의 형상이라는 내 의견에 수긍하더라.
海松尤多。土人。每秋採之。以充貢額。今歲。無一樹帶殼。苟取盈。則吾民奈何。守令適見之。是則幸也。有草類書帶。柔韌而滑。可藉以坐臥。在在皆然。淸伊以下。多五味子林密。而到此無之。只見獨活,當歸而已。
해송이 더욱 많으므로 여기 사람들이 가을에 잣을 채취하여 공액에 충당하는데, 금년에는 열매를 단 것이 한 나무도 없으므로 만약 정한대로 다 취한다면 우리 백성들은 어찌하겠습니까. 수령께서 마침 보았으니 이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서대초와 같은 풀이 있어 부드럽고 질기면서도 매끄러워 이것을 깔고 누울만하였는데 곳곳이 다 그러하였다. 청이당 이하로는 오미자 숲이 많았는데 여기에 와서 보니 그것은(오미자)는 없고 다만, 독활, 당귀만이 있을 뿐이었다.
[殼 : 껍질 각, 내리칠 각 1. 껍질 2. (맴, 매미의)허물 3. (거북의)등껍데기 4. 씨 5. 바탕 6. 성실(誠實)한 모양 7. 내려치다 / 滑 : 미끄러울 활,익살스러울 골]
船巖I(선암)
船巖II(선암)
船巖III(선암)
歷蠏踰嶺。傍有船巖。宗云。上古海水懷襄時。船繫于玆巖。而螃蠏過之故名。余笑曰。信汝之言。其時生類。盡攀天而活耶。[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듀류록]
해유령을 지나면서보니 곁에 선암이 있었는데 법종이 말하기를, " 상고 시대에 바닷물이 산릉을 넘쳐흐를 때, 이 바위에 배를 매어 두었는데, 방해가 여기를 지났으므로 이렇게 이름 한 것입니다." 하였다.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때의 생물들은 모두 하늘을 부여잡고 살았단 말인가?" 하였다.
[蠏踰嶺:해유령(게 해,넘을 유,고개 령) / 懷襄:회양(품을 회,도울 양, 싸고 흐르다) / 螃蠏: 방해(방게 방,게 해)] 懷 : 4. 싸다, 둘러싸다.
출처 :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최석기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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