少年臺(소년대) 관련 유람록과 기행시(181006)
1.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원문]自此至永郞岾。道極懸危。正如封禪儀記所謂後人見前人履底。前人見後人頂。攀挽樹根。始能下上。日已過午。始登岾。自咸陽望。此峯最爲峻絶。到此。則更仰視天王峯也。永郞者。新羅花郞之魁。領三千徒。遨遊山水。甞登此峯。故以名焉。少年臺。在峯側。蒼壁萬尋。所謂少年。豈永郞之徒歟。余抱石角下窺。若將墜也。戒從者勿近傍側 。
○ 8월15일, 이로부터 영랑재(永郞岾)에 이르기까지는 길이 심하게 가팔라서, ‘봉선의기(封禪儀記)’에서 말한, “뒷사람은 앞사람의 발밑을 보고, 앞사람은 뒷사람의 정수리를 보게 된다.”는 것처럼, 나무뿌리를 부여잡아야만 비로소 오르내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미 한낮이 지난 뒤에서야 비로소 영랑재로 올라갔다. 함양(咸陽)에서 바라보면 이 봉우리가 가장 높아 보이는데, 여기에 와서 보니, 다시 천왕봉(天王峯)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신라(新羅) 때 화랑(花郞)의 우두머리였던 영랑이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산과 물을 찾아 노닐다가 일찍이 이 봉우리에 올랐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한 것이다.
소년대(少年臺)는 봉우리가 곁에 있어 푸른 절벽이 만 길이나 되었는데, 이른바 소년이란 혹 영랑의 무리가 아니었는가 싶다. 내가 돌의 모서리를 안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곧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종자(從者)들에게 절벽 난간에 가까이 가지 말도록 주의를 주었다.
2. 1586년 양대박 선생의 두류산기행록
○ 9월 초6일(정유). 간신히 폐허가 된 제석당(帝釋堂) 터에 이르렀다. 천왕봉을 올려다보니 보다 더 높은 것이 없고 보다 더 큰 것이 없어,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없는 하늘과 같았다. 다음으로 제석봉을 바라보니 그 형세가 하늘을 떠받들고 있는 듯 장엄하게 우뚝 솟아 있었다. 그러나 상봉에 비하면 발돋움을 하여도 미치지 못할 듯하였다. 상봉의 동쪽에는 소년대(少年臺)가 있는데 바위가 우뚝하여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형세였다. 소년대(少年臺) 조금 아래쪽에 독녀봉(獨女峰)이 있는데, 봉우리의 형세가 홀로 우뚝하여 짝이 될 만한 것이 없었다. 그 외 마음에 드는 꽃 같은 봉우리와 꽃받침 같은 골짜기는 말로써 형용할 수 없었다. 여러 산을 둘러보니 모두 발 밑 저 아래에 가물거렸다.
3. 1611년 유몽인 선생의 유두류산록
[원문]癸酉. 侵晨而行掠甕巖. 入淸夷堂. 穿森木亂石叢. 至永郎臺. 俯臨陰壑. 然昏黒. 魄遁眼眩. 攀木却倚. 愕眙而不能稽. 永郎者. 花朗之魁也. 新羅時人也. 率徒三千人. 遨遊山海. 我國名山水. 無不寓名焉. 循山脊. 指天王峯而東. 山多烈風. 樹木皆擁腫. 枝柯向山而靡. 苔髮骨樹. 鬖鬖如人被髮而立. 松皮柏葉之木. 中無腸而榦四披. 枝頭下搶干地. 山益高而樹益短. 山之下. 濃陰交翠. 而至此花梢未吐葉. 尖如鼠耳. 巖罅有積雪盈尺. 掬而啗之. 可以沃渇喉. 有草纔抽芽. 靑莖者曰靑玉. 紫莖者曰紫玉. 僧云此草味甘滑可食. 擷之盈掬而來. 余曰. 僧稱靑紫玉. 乃仙家所餌瑤草也. 乃植杖手摘之. 殆滿囊焉. 前登少年臺. 仰瞻天王峯. 高出雲漢. 無雜草木. 只蒼柏聯緣而生. 被氷霜風雨所侵暴. 枯死骨立者十居二三. 望之如頒白老人頭. 殆不可盡鑷者也. 少年云者. 或稱永郞之流也. 余意天王峯. 長老也. 此峯. 奉承之如少年. 故名之歟. 下視群山萬壑.
○ 계유일 4월 4일, 새벽에 길을 떠나 옹암(甕巖)을 지나 청이당(淸夷堂)에 들어갔다. 숲을 헤치고 돌무더기를 가로질러 영랑대(永郞臺)에 이르렀다. 그늘진 골짜기를 내려다보니 어두컴컴하였다. 머리가 멍하고 현기증이 나서 나무를 잡고 기대섰다. 놀란 마음에 눈이 휘둥그레져 굽어볼 수가 없었다. 영랑은 화랑의 우두머리로 신라시대 사람이다.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산과 바닷가를 마음껏 유람하였다. 우리나라의 명산마다 이름을 남기고 있다. 산등성이를 따라 천왕봉을 가리키며 동쪽으로 나아갔다. 세찬 바람에 나무들이 모두 구부정하였다. 나뭇가지는 산 쪽으로 휘어 있고 이끼가 나무에 덮여 있어, 더부룩한 모양이 마치 사람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서 있는 것 같았다. 껍질과 잎만 있는 소나무․잣나무는 속이 텅 빈 채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고, 가지 끝은 아래로 휘어져 땅을 찌르고 있었다. 산이 높을수록 나무는 더욱 작달막하였다. 산 아래에는 짙은 그늘이 푸른빛과 어우러져 있었다. 이곳에 오니 꽃나무 가지에 아직 잎이 나지 않고, 끝에만 쥐의 귀처럼 싹을 살짝 내밀고 있었다. 바위틈에 쌓인 눈이 한 자나 되어 한 움큼 집어먹었더니 갈증 난 목을 적실 수 있었다. 겨우 싹이 난 풀이 있었는데 푸른 줄기는 ‘청옥’(靑玉)이라 하고 붉은 줄기는 ‘자옥’(紫玉)이라 하였다. 한 승려가,“이 풀은 맛이 달고 부드러워 먹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고서 한 움큼 뜯어 가지고 왔다. 내가 말하기를,“그대가 청옥, 자옥이라고 한 것이 바로 선가(仙家)에서 먹는 요초(瑤草)일세.” 라고 하고서, 지팡이를 꽂아놓고 손수 한 아름이나 뜯었다. 앞으로 나아가 소년대(少年臺)에 올라 천왕봉을 우러러보니 구름 속에 높이 솟아 있었다. 이곳에는 잡초나 잡목이 없고 푸른 잣나무만 연이어 서 있는데, 눈보라와 비바람에 시달려 앙상한 줄기만 남은 고사목이 열 그루 중에 두세 그루는 되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노인의 머리 같아 다 솎아낼 수 없을 듯하다. 소년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을 보면, 혹 영랑의 무리를 일컬은 듯도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천왕봉은 장로(長老)이고 이 봉우리는 장로를 받들고 있는 소년처럼 생겼기 때문에 소년대라 한 것 같다. 아래로 내려다보니 수많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주름처럼 펼쳐져 있었다.
4. 1611년 유몽인의 登少年臺 기행시
登少年臺 : 소년대에 올라
柳夢寅(1559~1623)
萬古昻藏樹 : 만고토록 숨어서 자란 높다란 나무들
縣梢罥老藤 : 가지에 매달려 얽혀있는 늙은 등나무.
三春慳嫩葉 : 늦봄에야 겨우 돋아나는 연한 나뭇잎
六月逗堅氷 : 유월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견고한 얼음.
陘絶魂頻斷 : 가파른 벼랑에선 정신이 자주 아찔했고
臺危地欲騰 : 위태로운 대에선 땅이 솟구치는 듯했네.
曾颸來萬里 : 일찍이 서늘바람 만 리에서 불어왔으니
從此傲陽陵 : 이제부터 볼록한 봉우리 만만히 보리라.
♣ 柳夢寅의 詩 '登少年臺'에서 8句를 보더라도 此는 下峰을, 陽陵(볼록한 봉우리)은 中峰을 가리킨다.
5. 1849년 민재남의 산중기행(관련유람록 : 유두류록)
少年臺 : 소년대
閔在南(1802~1873)
林中失路喚前行 : 숲속에서 길을 잃어 앞서 간 일행을 부르고
行出峰頭草坐平 : 일행은 봉우리 위로 나와서 풀밭에 앉았네
奇勝每多新面目 : 기이한 명승은 곳곳에서 새로운 모습인데
須君指示認臺名 : 그대 손으로 가리키며 대이름을 알려주네
6. 1910년 배성호의 유두류록
[원문] 至法華菴. 古木參天. 叢竹護垣. 方丈下峰如對食床. 可謂上方仙境也.
○ 3월16일, 법화암에 이르렀다. 고목이 하늘로 솟아있고 대나무 숲이 담장을 두르고 있으며, 방장산 下峰(하봉)이 밥상을 대하는 것과 같으니, 上方의 仙境(선경)이라고 할만하다.
7. 1487년 남효온의 지리산일과
[원문] 十月丁卯朔. 留米一斗別一囧. 發香積. 登 少年臺. 穿綿竹度鷄足. 山行三十里. 抵貧鉢庵.
○ 10월1일, 정묘일, 쌀 한 말을 남겨두고 일경과 작별하였다. 향적암을 출발하여 소년대(少年臺)에 올랐다. 솜대〔綿竹〕를 뚫고 계족봉(雜足峰)을 지나 산길로 30리를 걸어 빈발암(貧鉢庵)에 이르렀다.
8. 소년대 관련 유람록과 기행시
순 | 문헌 | 하봉 |
비고 |
1 |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 소년대(少年臺) | |
2 | 1586년 양대박 선생의 두류산기행록 | 소년대(少年臺) | |
3 | 1611년 유몽인 선생의 유두류산록 | 소년대(少年臺) | |
4 | 1611년 유몽인의 登少年臺 기행시외 1 | 소년대(少年臺) | |
5 | 1849년 민재남의 산중기행(관련유람록 : 유두류록) | 소년대(少年臺) | |
6 | 1910년 배성호의 유두류록 | 하봉(下峰) | |
7 | 1487년 남효온의 지리산일과 | 소년대(少年臺) : 연하봉(?) |
출처 :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선인들의 지리산 기행시(최석기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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