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伊堂(청이당) 관련 선인들의 유람록(181006)
청이당에 대한 유람록의 기록은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과 1611년 유몽인 선생의 두류산록에 청이당(淸伊堂)과 청이당(淸夷堂)으로, 1871년 배찬 선생의 유두류록에는 천녀당(天女堂)으로 각각 기록하고 있으나 같은 곳을 지칭한 것으로 추정된다. 1472년 김종직 선생이 쉬어간 계석은 청이당터 석축 앞 약 20m 지점에 위치해 있고, 1711년 배찬 선생은 이곳에서 '계곡 옆의 바위 위(澗邊石上)에 빙 둘러 앉아서 밥을 먹었다' 라고 한 장소는 같은 곳으로 추정된다. 현재 지리 마니아들이 알고 있는 청이당터(숙밭재 아래 평평한 터)와 유람록의 청이당터는 거리(약100m)가 있다.
1) 1472년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원문] 抵淸伊堂。以板爲屋。四人各占堂前溪石上。小憩。
○ 1472년 8월 15일, 청이당(淸伊堂)에 이르러 보니 지붕이 판자로 만들어졌다. 우리 네 사람은 각각 청이당 앞의 시내 바위를(위에서) 차지하고 앉아서 잠깐 쉬었다.
☞ 占堂 : 청이당
2) 1611년 유몽인 선생의 두류산록
[원문] 癸酉. 侵晨而行掠甕巖. 入淸夷堂. 穿森木亂石叢. 至永郎臺.
○ 1611년 4월 4일, 계유일. 새벽에 길을 떠나 옹암(甕巖)을 지나 청이당(淸夷堂)에 들어갔다. 숲을 헤치고 돌무더기를 가로질러 영랑대(永郞臺)에 이르렀다.
3) 1871년 배찬 선생의 유두류록
[원문] 小憇于嶺上. 過艾峴. 到天女堂平田. 從者進午飯. 遂環坐於澗邊石上. 各執匏器. 折木爲匙. 足爲免飢. 各吟一律拈平田之田字.
○ 1871년 9월 5일, 산마루 위에서 잠시 쉬었다가 애현(艾峴)을 지나 천녀당평전(天女堂平田)에 이르렀다. 시종(侍從)들이 점심을 내와서 마침내 모두 계곡 옆의 바위 위에 빙 둘러 앉아서 각자 바가지 그릇을 잡고 나무를 꺾어 젓가락을 만들어 밥을 먹으니 배고픔을 면할 만하였다. 각자 평전의 ‘전(田)’ 자를 끄집어내어 시 한 수씩을 읊었다.
4)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
[원문] 漸漸前進置艾峴. 路於左便而取右. 路踰麓. 則天禮碭也.
○ 1924년 8월 18일(송대 출발) 점점 앞으로 쑥밭재[艾峴애현]로 나아가는데 길은 왼쪽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향했으며 산기슭을 넘자 천례탕(天禮碭 *하늘에 제사지내는 돌)이었다. [출처 지리99, 국역 이재구 선생]
* 참고자료 :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선인들의 지리산 기행시(최석기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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