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어우당길

1611년 유몽인선생의 두류암에서 옹암 길(171202~03)

도솔산인 2017. 12. 4. 00:07

 

1611년 유몽인선생의 두류암에서 옹암 길(171202~03)

 

 

일 시 : 2017년 12월 02일~03일

코 스 : 광점동 - 지산대[두류암] - 어름터 - 사립재골 - 곰샘 - 새봉 - 옹암 - 새봉 - 상내봉 - 벽송능선 - 장구목 - 광점동

▣ 인 원 : 산친5명(아브님, 솔박님, 송연목님, 자준씨) 만난사람 : 熊乭선생)+지리狗狗2

날 씨 : 맑음

 

# 1611년 어우당 유몽인 선생의 [두류산록] 지리산 유람일정  • 3/29 : 남원부 관아재간당반암운봉 황산 비전인월백장사(1)
 • 4/1 : 백장사황계영대촌흑담환희령내원정룡암(1)
 • 4/2 : 정룡암월락동황혼동와곡갈월령영원암장정동실덕리군자사(1)
 • 4/3 : 군자사의탄촌원정동용유담마적암송대두류암(1)
 • 4/4 : 두류암석문옹암청이당영랑대소년대천왕봉향적암(1)
 • 4/5 : 향적암영신암의신사(1)
 • 4/6 : 의신사홍류동신흥사만월암여공대쌍계사(1)
 • 4/7 : 쌍계사불일암화개동섬진강와룡정남원 남창(1)
 • 4/8 : 남창숙성령남원부 관아

 

 

 

어우당 유몽인 선생은 1611년 4월 3일 군자사를 출발하여 용유담을 유람하고, 마적동을 거쳐 송대에서 장구목으로 넘어가 두류암에서 1박을 한 후, 다음날[4월 4일] 천왕봉으로 올라가는데, 유몽인 선생의  '頭流菴 贈慧日 兼示修師' 詩의 '내일 아침 나는 석문으로 떠날 것이고'[明朝我向石門去]라는 시구에 새봉 근처 '石門'으로 추정되는 곳과, 송대마을에서 벽송능선 장구목으로  넘어오는 길을 확인하고자 산행 계획하게 되었다. A팀은 광점동에서 사립재골로 올라가고, B팀은 벽송사에 출발하여 장구목을 지나 벽송능선으로 올라가다가 사립재골 마을터를 횡단하여 직접 옹암으로 올라갔다. 우리 組는 곰샘에서 우연히 송대에서 올라온 熊乭선생을 만나 우리 일행에 합류를 하였다.

 

유몽인 선생은 두류암에서 사립재를 거쳐 새봉 석문을 지나 옹암, 청이당, 영랑대, 천왕봉으로 올랐다가 향적암에서 묵었는데, 그 분의 주력은 이동거리로 보아 유산기를 남긴 선인들 중 他意追從을 불허하는 것 같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두류암으로 추정되는 지산대에서 사립재까지 진행하고 곰샘에서 점심을 먹고 옹암까지 가는 것으로 하루의 세부 일정으로 잡았다. 두류암 관련 선인들의 유산기는 아래와 같다. 

 

 

1. 김영조(金永祚)(1842~1917)

 

[1867년 8월 26일~29일] 向文殊寺. 境甚幽僻. 暮抵松臺村. 村在頭流山下. 四山簇立. 林壑蔚然. 川聲滾滾. 亦一別景也. 訪朴德元. 因畱宿. 踰一嶺. 至林下石澗盤上. 各啖梨一枚. 歷大坂至頭流菴. 田家數十戶. 皆升茅構木爲居也.

 

 문수사(文殊寺)를 향하니, 장소가 매우 깊숙하고 치우쳐 있었다. 저녁에 송대촌(松臺村)에 이르니, 마을이 두류산 아래 있어, 사방에 산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숲과 골짜기가 울창하며, 시내 소리가 세차게 들리니, 또 하나의 색다른 경치였다. 박덕원(朴德元)을 찾아가서 하룻밤 묵었다. 고개 하나를 넘어 숲 아래 있는 돌 시내[어름터]에 이르러, 각자 소반 위의 배 하나씩을 먹었다. 큰 언덕을 지나 두류암(頭流菴)에 이르니, 농가 수십 호가 모두 띠풀로 지붕을 얹고, 나무를 얽어서 살고 있었다.

[생초-엄천사지-문정동-세동마을-송대리-벽송사능선-어름터-두류암-말바우산막-중봉-천왕봉]

 

 

2. 배찬裴瓚[1825(순조 25)~1898(광무 2)] 조선 후기 유학자교육자 

 

[1871年 9月 初五日] 早發. 過五峯村後六七里. 村氓設一榻於巖間. 進山果與酒一壺. 此可謂山中別味. 而足爲觧渇. 各吟一律拈五峯之峯字. 遂登程. 澗谿甚隘岡脊峻急. 幷脫衣帶. 或竹杖草履. 前呼後應而進. 村人爲之伐木開路. 扶上我侯肩輿. 越扉峴. 俯視頭流菴碧松庵. 是咸陽界也.

 

 초5일에 일찍 출발하여 오봉촌(五峯村) 뒤를 지나 6, 7리를 가니 마을 사람들이 바위에다가 탁자 하나를 놓고 산과일과 술 한 병을 차려놓았는데, 이야말로 산중의 별미로 갈증을 해소하기에 충분하였다. 각자가 오봉의 ()’ 자를 끄집어내어 시 한 수씩 읊었다. 마침내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시작하였는데, 계곡이 매우 좁고 산세가 급하고 험하니, 모두 의대(衣帶)를 벗고 혹은 죽장을 들고 짚신을 신고서 앞에서 영차하면 뒤에서 응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위해 나무를 베며 길을 열었고 수령을 부축하여 견여(肩輿)에 태웠다. 비현(扉峴)을 넘으며 굽어보니 두류암(頭流庵), 벽송암(碧松庵)인데 이는 함양(咸陽)의 경계이다.

 

* 하산길

須臾四山忽黑海風. 甚冷凜乎. 其不可乆留也. 因促行還到馬巖幕. 從者先詣. 朝飯已熟矣. 飯後. 遂直下頭流菴. 小憇. 至五峯村後麓. 村人員簞食壺漿而來. 一行皆頼此免飢. 侯命給其價而謝之.

 

조금 있으니 사방 산이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해풍이 매우 차가워서 떨려서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걸음을 재촉하여 마암의 산막으로 돌아왔다. 시종이 먼저 도착해서 조반을 이미 지어놓았다. 밥을 먹은 후에 마침내 바로 두류암으로 내려와 잠시 쉬고 오봉촌 뒤의 산촌[오봉리상류 폐독가 근처]에 이르렀는데, 마을 사람이 밥과 음료수를 지고 와서 일행은 모두 이로 인해 갈증과 배고픔을 면하였다. 수령이 값을 쳐주어 사례하게 하였다.

[화림암-오봉리-사립재-쑥밭재-청이당-마암(1박)-중봉-천왕봉(2박)-마암산막(조반)-중봉-두류암-사립재-폐독가(늦은중식)-화림암]

 

 

3. 1611년 유몽인의 [두류산록] 4월 3일(임신)

 

<중략>동쪽으로 마적암(馬跡庵)을 지났다.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넝쿨을 잡아당기며 오르니 (마적암) 옛터가 아직 남아 있었다. 산비탈을 기어오르다 보니, 열 걸음에 아홉 번은 넘어졌다. 힘들게 오르내리다 보니 얼굴이 땀에 뒤범벅이 되었고 다리는 시큰거리고 발은 부르텄다. 가령 강제로 끌려가 고된 일을 한다고 가정할 때, 원망하고 성나는 마음은 아무리 꾸짖어 금하더라도 수그러들게 하기 어렵지만, 여럿이 길을 가거나 모여 앉아 쉴 때는 떠들고 웃는 소리가 길에 가득하니, 어찌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즐거워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송대에서 벽송사능선 어름터로 오는 과정]


 드디어 두류암(頭流庵)에 들어갔다. 암자 북쪽에 대(臺)가 있어 그곳에 올라 정남쪽을 바라보니, 바위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는데 마치 옥으로 만든 발을 수십 길 매달아놓은 것 같았다. 저녁 내내 앉아 구경하더라도 피곤하지 않을 듯하였다. 마침 비가 그치고 날이 활짝 개었다. 골짜기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매우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어 선방으로 들어가 편히 쉬었다.

 

 

4. 1611년 4월 3일 유몽인이 두류암에서 남긴 시

 

頭流菴 - 柳夢寅

 

虛壁脩縑繟  淸光碎石縫 : 텅 빈 절벽은 긴 비단을 드리운 듯하고/맑은 햇빛은 부서진 바위를 꿰맨 듯하네

傳聲通翠筧  飛注作寒舂 폭포 소리는 푸른 대숲을 통해 들려오고/떨어지는 물은 차갑게 절구질을 하네

雙柏西僧老  層壇北斗封 : 두 그루 잣나무 서쪽 승방 가에서 늙었고/층층의 법단은 북두성인듯 우뚝하구나

長風生萬籟  深省寄前峰 : 긴 바람 불어와서 온갖 자연의 소리 일으키니/깊이 성찰하며 앞산 봉우리에 기대 섰네.

 

 * 1구 맨 끝자 享+單은 자전에 없어 느슨할 단, 계속될 선(다른 표현: 띠 늘어질 천)으로 보았고 春(춘)이 아니고 舂 : 찧을용이 맞음, 萬籟 : 자연 속에서 만물이 내는 온갖 소리

 

 

頭流菴 贈慧日 兼示修師 - 柳夢寅

(두류암 혜일에게 주고 아울러 수선사에게 보여주다.)

 

先賢曾訪頭流境 路由義呑村之南 : 선현들이 두류산 선경을 찾아 나섰으니/ 길은 의탄촌 남쪽을 경유하였지

我今尋眞入頭流 偶然一宿頭流菴 : 내 이제 진경을 찾아 두류산에 들어와서/ 우연히 하룻밤을 두류암에 묵었네

頭流菴在義呑上 我行適與先賢同 : 두류암은 의탄 마을 위쪽에 있으니/ 내 산행이 마침 선현들의 유람 길과 같네

先賢之跡不可追 攀躋欲上天王峯 : 선현들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없지만/ 더위잡고 오르더라도 천왕봉에 오르고자하네

學士投詩潭龍怒 雲雷作風雨獰 : 학사가 용류담에 시를 던져 용이 노하니/ 구름이 일고 천둥이 쳐서 비바람이 몰아쳤네

山靈借我快眺望 却掃雲翳俄淸明 : 산신령은 나에게 즐거운 조망을 빌려주고/ 구름을 걷어 한순간 대기를 청명하게 했네

冷風颯颯爽籟發 客懷憀慄如三秋 : 서늘한 바람이 불고 상쾌한 소리가 일어나니/ 나그네 회포는 늦가을인 듯 처량하네

山花杜宇啼幾層 令人半夜生閑愁 : 진달래꽃 두견새는 어디에서 우는가/ 한밤중에 잠 못 이루고 수심에 잠기게 하네

慧僧慇懃覓詩句 秉燭起坐强吟呻 : 혜일이 은근히 시를 지어달라고 하여/ 촛불을 켜고 일어나 앉아 억지로 읊어보네

詩不驚人○○焉 爲緣重見情相親 : 시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니...../ 인연이 되어 다시 만나 정이 서로 친하기 때문일세

明朝我向石門去 師在頭流雲水間 : 내일 아침 나는 석문으로 떠날 것이고/ 선사는 두류산 구름과 계곡 사이에 머물겠지요

師憶江南老太守 祖溪秋月倘來看 : 선사는 강남땅 늙은 태수를 생각하리라/ 조계에 가을 달 뜨면 혹 와서 보려나

 

雲翳 : 햇빛을 가린 구름의 그늘. 祖溪 : 두류암

[출처 : 지리산유람 기행시 1권]

 

 

 

 

 

 

 

'떨어지는 물은 차갑게 절구질을 하네'

 

 

광점동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출발하여 두류암터로 추정되는 지산대 아래에서 잠시 발을 멈추었다. 왼쪽 작은 계곡이 우리가 내일 벽송능선 장구목에서 내려올 곳이기에 미리 확인을 하고, 정자가 있는 곳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계곡으로 내려가 폭포를 사진에 담으며 유몽인 선생의 두류산록과 두류암시를 떠올렸다. 한시는 글로 그리는 한폭의 그림이다. 북쪽에 있는 대와 이 폭포는  유몽인의 두류산록과 두류암 시구와 일치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1611-04-03] 드디어 두류암(頭流庵)에 들어갔다. 암자 북쪽에 대()가 있어 그곳에 올라 정남쪽을 바라보니, 바위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는데 마치 옥으로 만든 발을 수십 길 매달아놓은 것 같았다. 저녁 내내 앉아 구경하더라도 피곤하지 않을 듯하였다.[두류산록 유몽인]

 

頭流菴 - 柳夢寅

 

虛壁脩縑繟  淸光碎石縫 : 텅 빈 절벽은 긴 비단을 드리운 듯하고/맑은 햇빛은 부서진 바위를 꿰맨 듯하네

傳聲通翠筧  飛注作寒舂 폭포 소리는 푸른 대숲을 통해 들려오고/떨어지는 물은 차갑게 절구질을 하네

雙柏西僧老  層壇北斗封 : 두 그루 잣나무 서쪽 승방 가에서 늙었고/층층의 법단은 북두성인듯 우뚝하구나

長風生萬籟  深省寄前峰 : 긴 바람 불어와서 온갖 자연의 소리 일으키니/깊이 성찰하며 앞산 봉우리에 기대 섰네.

 

 

* 1구 맨 끝자 享+單은 자전에 없어 느슨할 단, 계속될 선(다른 표현: 띠 늘어질 천)으로 보았고 春(춘)이 아니고 舂 : 찧을용이 맞음, 萬籟 : 자연 속에서 만물이 내는 온갖 소리

 

 

 

 

 

 

 

 

 

 

 

층층의 벼랑이 깎아지른 듯이 솟아 있고, 절벽이 만 길의 높이로 우뚝 서 있었다[변사정]

텅 빈 절벽은 긴 비단을 드리운 듯하고, 맑은 햇빛은 부서진 바위를 꿰맨 듯하네[유몽인]

 

 

# 邊士貞[1529(중종 24)1596(선조 29)] 조선 중기의 의병장

 

[1580年 4月 初七日]. 早食發行. 過龍遊潭. 至頭流庵. 層崖削出. 壁立萬仞. 百花爭發. 襲香一洞. 竟日坐玩. 不覺其暮遂入禪房. 共宿焉.

 

 초7일에 아침 일찍 밥을 먹고 출발하여 용유담(龍遊潭)을 지나 두류암(頭流庵)에 도착하였다. 층층의 벼랑이 깎아지를 듯 솟아 있고 절벽이 만 길 높이로 우뚝 서 있었다. 온갖 꽃이 다투어 피어나니 꽃향기가 계곡을 온통 뒤덮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완상하니 날이 저무는 것도 몰랐다. 마침내 선방(禪房)에 들어가 함께 잤다.

 

# 1611년 유몽인의 [두류산록] 4월 3일(임신)

 

 [1611-04-03] 드디어 두류암(頭流庵)에 들어갔다. 암자 북쪽에 대()가 있어 그곳에 올라 정남쪽을 바라보니, 바위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는데 마치 옥으로 만든 발을 수십 길 매달아놓은 것 같았다. 저녁 내내 앉아 구경하더라도 피곤하지 않을 듯하였다.

 

 

 

 

암자 북쪽에 대(臺)가 있어 그곳에 올라 정남쪽을 바라보니, 바위 사이로 폭포수가 쏟아지고 있는데 마치 옥으로 만든 발을 수십 길 매달아놓은 같다.

                                                                                                                                                                   [유몽인]

 

 

 

芝山臺 刻字

 

어제 밤늦게 喪家에 다녀오느라 독가 독거청년(박준현)에게 별도로 준비한 것이 없어, 금계마을을 지나며 고기를 사다주려고 했는데 이른 아침이라 정육점을 그냥 패스하고, 귤 몇 개와 갑오징어 약간을 내놓고 잠시 쉬어간다. 동지 섣달 혹한은 다가오는데 광에는 땔감나무 하나 없고 겨울 준비를 하지 않고 겨울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옷을 벗어버린 나목과 감나무에 다닥다닥 매달린 홍시가 요즘 지리산의 대체적인 풍경이다. 

 

 

 

 

 

 

유몽인이 사립재로 오른 길

 

 

 

 

 

 

  1610년 박여량 [두류산일록]의 상류암을 찾아서(180414~15)

 

柳夢寅의 '頭流菴 贈慧日 兼示修師'에 나오는 石門 


明朝我向石門去 師在頭流雲水間 : 내일 아침 나는 석문으로 떠날 것이고/ 선사는 두류산 구름과 계곡 사이에 머물겠지요.

 

 

 

 

 

 

 

 

 

 

 

 

 

 

 

 

 

 

 

 

 

 

 

 

 

 

 

 

 

 

 

 

 

 

 

 

 

지리狗狗

 

 

 

 

 

 

 

 

 

 

 

 

 

 

향로봉(?)

 

 

 

 

 

 

 

 

장구목에서 내려온 길

 

 


광점동으로 내려오는데 흰색 트럭 한 대가 앞에 멈추어선다. 지난 5월 초 새봉에서 만났던 송대마을 분이다. 이틀이나 보이지 않는 개를 찾아 송대마을에서 급히 달려왔다고 한다. 장구목에서 송대마을로 내려간 熊乭선생(차량의 전화번호를 보고)에게 전화를 하여 지리狗狗의 행방을 찾아 나선 것이다. 우리는 산에서 우연히 만나 1박2일 함께한 犬公들과 작별을 하고, 벽송사와 송대로 내려간 일행들과 마천 '돼지촌식육식당'에서 만나 유몽인길 산행에 대한 寸評을 한 후, 늦은 점심을 먹고 각기 사는 곳으로 돌아갔다. 사람이 산에서 만난 축생에게도 이렇게 박절하게 하지 않거늘 하물며 사람들의 일이야.


 

 

# 산행기를 정리하면서 산길을 복기해보니 장구목에서 송대로 내려간 길도, 장구목에서 지산대로 직접 내려간 길도 유몽인선생의 길이 아닌 듯하다. 송대마을에서 송대 삼거리로 올라와 장구목에서 조금 내려와 무덤 삼거리에서 어름터로 내려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천왕봉에 올라서[유몽인선생 두류산록1611-04-04]

 

! 이 세상에 사는 덧없는 인생이 가련하구나. 항아리 속에서 태어났다 죽는 초파리 떼는 다 긁어모아도 한 움큼도 채 되지 않는데, 저들은 조잘조잘 자기만을 내세우며 옳으니 그르니 기쁘니 슬프니 하며 떠벌이니, 어찌 크게 웃을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오늘 본 것으로 치면, 천지도 하나하나 다 가리키며 알 수 있으리라. 하물며 이 봉우리는 하늘 아래 하나의 작은 물건이니. 이곳에 올라 높다고 하는 것이 어찌 거듭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저 안기생(安期生) , 악전(偓佺) 의 무리가 난새의 날개와 학의 등을 타고서 구만리 상공에 떠 아래를 바라볼 때, 이 산이 미세한 새털만도 못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嗚呼. 浮世可憐哉. 醯鷄衆生. 起滅於甕裏. 攬而將之. 曾不盈一掬. 而彼竊竊焉自私焉 是也非也歡也戚也者. 豈不大可噱乎哉. 以余觀乎今日. 天地亦一指也. 況玆峰. 天之下一小物. 登玆而以爲高. 豈非重可哀也歟. 彼安期偓佺之輩. 以鸞翎鶴背爲床席. 當其薄九萬而下視. 安知此嶽不爲秋毫耶.

 

  * 절절언(竊竊焉)-소리가 작은 모습, 또는 몰래 하는 모습.

  * 천세옹(千歲翁) 안기생 : 신선 안기생은 진시황이나 한무제가 몹시 만나기를 갈구하던 신선.

  * 악전(偓佺) : 唐堯때 중국 槐山에서 약초를 캐먹고 살았다는 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