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한시모음

山中 - 宋翼弼

도솔산인 2016. 2. 24. 14:50

山中(산중) 산속에서

 

                                     (宋翼弼, 1534 ~ 1599)

 

獨對千峯盡日眠(독대천봉진일면) 깊은 산중에 홀로 앉아 졸음에 해 저무는데

夕嵐和雨下簾前(석람화우하렴전) 초 저녁 으스름이 비와 어우러져 내려오네.

耳邊無語何曾洗(이변무어하증세) 부산한 잡설 들리지 않으니 무에 귀 씻으랴

靑鹿來遊飮碧泉(청록래유음벽천) 푸른 사슴 놀러와서 맑은 샘물을 마신다네.

 

 

獨對(독대) 홀로 마주하다. 千峯(천봉) 깊은(첩첩) 산중에 있음을 표현. 盡日(진일) 날이 다하다. 날이 저물다. () 졸다. 夕嵐(석람) 연무가 살짝 내려앉은 저녁의 으스름한 분위기. 和雨(화우) 비와 조화되다. 비와 어우러지다. () 내려오다. () 집의 주렴. 耳邊(이변) 귓가. 無語(무어) 들리는 말이 없다. ()은 이에. 유도부사. () 씻다. 여기서는 귀를 씻다. 許由의 고사에서 나온 말(許由에게 천하를 양위하려하자 허유가 더러운 소리를 들었다고 귀를 씻었다는 일화). 靑鹿(청록) 푸른 사슴. 즉 청순한 사슴을 말함. 來遊(래유) 와서 노닐다. 飮碧泉(음벽천) 푸른 샘물을 마시다. 벽천은 돌 샘에서 솟는 맑은 물.

 

송익필(宋翼弼, 1534 ~ 1599)은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자는 운장(雲長)이고, 호는 구봉(龜峰) ·현승(玄繩).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서출(庶出) 출신으로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못했으나, 조선중기 서인세력의 막후 조정자로 군림했으며 기축옥사(己丑獄事)를 일으킨 인물로 지목되었다. 송익필은 어려서 문장에도 출중하였고 재능이 뛰어나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서출(庶出)이라 벼슬길에는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부친 송사련(宋祀連)의 후광으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들과 어울렸으며 이산해(李山海). 최경창(崔慶昌). 백광홍(白光弘). 최립(崔立). 이순인(李純仁). 윤탁연(尹卓然). 하응림(河應臨) 등과 함께 당대의 ‘8대 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정치적으로는 서인에 속했으며, 심의겸(沈義謙). 이이(李珥). 성혼(成渾). 정철(鄭澈) 등과 교우하였고 파주의 5인방으로 불리며 정치적 의리를 함께하는 동지가 되었다. 이들의 이런 면면을 두고 이준경(李浚慶)은 장차 붕당이 만들어질 것을 우려하여 선조에게 상소문을 올렸으나 오히려 신진세력 이이(李珥) 등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송익필은 예학(禮學)에 밝았으며, 당대 사림의 대가로 손꼽혔다. 또한 정치적인 감각이 탁월하여 서인세력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하였다. 그는 자신의 학문과 재능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으며, 벼슬길에 나서지 않은 사림의 처사로 고매하게 행세하였는데 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난을 사기도 하였다. 그의 이런 명망으로 김계휘(金繼輝)의 아들 김장생(金長生)을 첫 제자로 받아들였고 김장생 또한 예학의 대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경기도 파주 감악산 자락에 은거하면서 그를 추종하는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다. 그가 양성한 제자로는 정엽(鄭曄). 서성. 정홍명(鄭弘溟). (金槃) 등이 있으며, 조정의 두터운 서인세력으로 포진하였다. 이후 그의 학맥은 김장생의 아들 김집(金集)을 거쳐 숙종(肅宗)대 노론의 영수 송시열(宋時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