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동부 중봉&영랑재 2박3일(151225~27)
▣ 일 시 : 2015년 12월 25일 ~ 27일
▣ 코 스 : 새재 - 중봉 - 상봉 - 중봉 - 영랑재 - 새재
▣ 날 씨 : 최저 온도 영하 6도(맑음, 구름, 맑음)
▣ 인 원 : 2명(이범구님)
# 1. 산행 준비
산행을 위해 주부식을 챙기고 계근을 하니 식량만 4.25kg 酒肴를 더하니 5kg이다.
먹기 위해 산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먹지 않고는 산행을 할 수 없으니 난 생존 식량만을 준비한다.
自古로 솥을 걸고 밥을 해먹는 농경 민족의 후예이니 우리 민족은 외세의 침략에 취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행의 패턴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해서 산에 들며 산같은 등짐을 지고 고난의 행군을 하는 것이다
출발 중량 18.40kg 가벼워야 괴롭지 않고, 괴롭지 않아야 즐길 수 있고, 즐길 수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주식 : 쌀(840g) 김치, 고추절임, 조개젓, 새우젓, 고추장
부식 : 간고등어 3마리, 새끼조기 5마리, 건조생선 1마리, 불린미역 2인분, 세척생오징어 2인분, 황태 2인분, 무우, 파, 마늘, 멸치가루 등
간식 : 건조과일, 견과류, 커피, + 소곡주 500ml, 이과도주 250ml
주부식 무게 : 4.25kg
# 2. 산행 출발
12월 25일 결혼기념일 선물로 연소재 차기 당주 흑염소를 아이들과 제주도 여행을 보내고
새벽 5시 30분 출발 자유로운 영혼은 妻城子獄을 벗어나 2박 3일 지리동부의 안식처로 떠난다.
어제 집사람과 함께 히말라야 영화도 보고 외식도 했고 제주도에 다녀오라는 인사도 했으니
최선책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당당한 산행을 계속하고자 차선의 노력을 셀카에도 증거로 남겼다.
덕산에서 산천재를 휘~익 지나쳐서 덕천강의 근원인 - 태백성 같은 검광을 뿜는 날이 선 삼봉이 있는 - 지리동부로 발길을 향했다.
그곳에 가지 않고는, 그곳에서 머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류암은 鋤屹山(鋤耒峰)에서 직선의 시야에 있을 것이다.
숫눈길을 걸으면 지나온 곳은 길이 되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은 너울이 일렁이는 새하얀 바다와 같다.
깜깜한 세상 밖으로 홀로 방황하고 살아온 나날들 왜 이런 고행을 자초해야하는지 나 자신도 모른다.
한 걸음 예측할 수도 생략할 수도 없는 눈길은 집중할 수 있어서 온갖 상념을 잠재운다.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함정 속으로 체중을 걸고 내던져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오늘은 써리봉 능선의 떳떳하고 착한 길을 따르며 목적지에 도착하니 눈이 많지 않았다.
# 2. 천개의 바람이 부는 중봉
마고 할미가 野蘇의 生日을 猜忌라도 하는듯
천 개의 바람이 몰아치는 중봉의 홑겹 젤트에는 광풍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초저녁에 잠시 보름달이 뜨더니 이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숲의 정령들이 방언으로 노래하는 混沌 혼돈의 어둠이 드리웠다.
온갖 나무들의 영가 소리가 사방에서 환청으로 들려왔다.
젤트안에 香을 피우고 술을 한 잔 따르고 曰
'오늘밤 저는 태풍이 부는 방장의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부디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며 謹以淸酌하오니 欽享하소서.'
눈이 따갑고 뻑뻑해짐을 느꼈는데 향불 놀이는 좁은 공간에서 할 일이 아니더라.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낙타야
모래 박힌 눈으로
동트는 지평선을 보아라
비 그친 새벽 산에서
나는 아직도 그리운 사람이 있고
산은 또 저만치서 등성이를 웅크린 채
창 꽂힌 짐승처럼 더운 김을 뿜는다
[시인 황지우님의 시에서]
선잠을 잔 나에게도 중봉의 새벽은 왔고 중봉은 창꽂힌 짐승처럼 하얀 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운무는 사위를 흽싸여 사방의 시계가 온통 희미하여 멀리 있는 사물은 전혀 분간할 수 없었다.
野蘇의 생일날 朝鮮의 神靈에게 告祀를 지냈으니 野蘇가 노한 것일까?
찬란한 일출을 기대한 것이 오히려 우매하고 어리석을 따름이다.
중봉은 내 마음을 아는듯 모르는듯 상식을 올릴 시간이 되자
안개속에서 어젯밤 어둠에 벗었던 소복을 다소곳 입고 다시 흐느꼈다.
대둔산 석천암 天山스님의'但莫憎愛 洞然明白.'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통연(툭터져서) 명백하리라.]
* 洞然 : 모든 분별이 끊어져 텅 비어 있는 상태. 모든 분별이 소멸되어 확 트인 상태. 분별과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휑한 상태
三祖僧璨大師(삼조승찬대사)의 信心銘
至道無難 唯嫌揀擇(지도무난 유혐간택) : 지극한 도는 어려움이 없으며 오직 간택함을 싫어할 뿐이니,
但莫憎愛 洞然明白(단막증애 통연명백) :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통연(툭터져서) 명백하리라.
毫釐有差 天地懸隔(호리유차 천지현격) : 털끝 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만큼 벌어지나니,
欲得現前 莫存順逆(욕득현전 막존순역) :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違順相爭 是爲心病(위순상쟁 시위심병) :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투게 됨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되나니,
不識玄旨 徒勞念靜(불식현지 도로염정) :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면 한갓 수고로이 생각만 고요하게 하고자할 뿐이다.
石泉庵 주지 天山스님에게 갓독으로 온 三祖僧璨大師의 信心銘 첫 부분이다.
알마 전 암자에 들렀는데 내 마음을 들여다 보는지
계속 이어서 원효대사의 '和諍論 皆是皆非'를 이야기하더라.
皆是皆非 開口則錯
'모든 것이 다 옳고 모든 것이 다 그르더라도 입을 열면 어긋난다.' 뜻이다.
나는 釋氏之敎의 참뜻을 알지 못하니 스님이 이야기하는대로 듣기만 하였다.
세 시간 넘게 내 발길을 잡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기억나는 것은
'사람은 시비를 가리려고 하지만 자연은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일을 하지 않고 밥을 먹으니 모든 사람에게 합장한다.'고 했다.
나는 法文 값으로 시주 대신 '浩然齋 夜吟' 한 首를 읊어주고 내려왔다.
天山스님이 시킨대로 산에 들어 香을 피우는 것을 시험해 보았으나
인간사 모든 憎愛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점심을 먹지 않을 요량으로 아침을 배가 터지게 먹었더니 상봉으로 가는 발길은 한 없이 무거웠다.
정상석도 친견하고 산친이 남기고 간 '생탁 한 병과 간식'이 천왕슈퍼에 있다고 하니 감동스러운 일이다.
어제밤의 눈이 매캐한 분향과 헌작이 헛되지 않았는지
산친의 우정은 검은 비닐에 담겨 있었는데 생막걸리는 얼어서 터질듯하였다.
천왕봉에서 서울에서 온 <운길산>님을 만나 중봉까지 동행하였다.
금년 지리에 8번 오셔서 세 번을 만났으니 '세상은 넓고 지리는 참 좁다.'고 하였다.
중봉에 다시 돌아왔을 때 하늘이 잠시 열렸다.
산에 오래 머무는 자에게 하늘이 감동한 것인지 모른다.
일순간 빛이 들어오고 중봉은 소복의 단정한 자태를 뽑냈다.
<운길산>님이 중봉에서 '중봉이 어디냐?'고 물어와서
'중봉에서 중봉을 볼 수 없어서 안타깝다.' 고 대답했다.
함양과 산청의 갈림길에서 각각 대원사와 영랑대로 향했다.
# 3. 을미년 겨울 동짓달 旣望 永郞岾에서 노닐다.
하봉 헬기장에서 지인을 만났는데 영랑대를 양보하고 중봉으로 올라갔다.
소년대에 오르니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산을 즐길 줄 아는지...
전망대마다 조망하는 것이 하산 시간을 잊은듯 산에서 노닐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영랑대에서 잠시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거창 소년 <萬吉>님의 직장 선배였다.
얼마 있다가 <무학산>님 일행이 오셨으나 자리가 비좁아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