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346] 자존(自尊)
[번역문]
“굶주린 자가 혀를 차며 불러서 주는 음식을 먹지 않았다.”는 것에 대하여.
이제 살펴보니, 혀를 차며 부르는 말이 불경(不敬)하기는 하지만, 욕을 하며 주거나 발로 그릇을 밀어서 주는 음식에 비하면 그래도 낫지 않겠는가? 더구나 곧바로 사과를 해서 잘못을 고치려는 군자의 마음이 있었으니, 굶주린 자가 끝내 먹지 않고 죽은 것은 참으로 현자가 지나쳤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옛날의 현자 중에는 대개 한 번 죽어서 세상의 교화를 도운 경우도 있었다. 사과를 받았으면 먹어도 된다는 것을 그 또한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혀를 차며 불러서 주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평소의 소신이었다. 이제 이미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서 한 그릇의 식은 밥이라도 먹지 않으면 목숨을 구할 수 없고, 또 검오(黔敖)처럼 곧바로 사과를 하는 자도 이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없다면, 어차피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왕 죽을 바에는 차라리 흔쾌히 목숨을 버려, 세상의 의리를 잊고 음식만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보다 더 싫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부귀를 믿고 교만을 부리는 자들로 하여금 현인을 기를 때 예의를 갖추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천지 사이의 호연지기(浩然之氣)는 과연 이런 부류들 덕분에 보존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아! 옛날의 사람들은 진실로 가난을 면할 요량으로 벼슬을 했지만, 구차하게 녹을 먹지는 않았다. 저 묘소에서 구걸을 하고, 마당에서 낟알이나 주워 먹는 자들이야 논할 것도 못되겠지만, 세상 사람들 중 녹봉깨나 지녔다고 하여 하인과 일꾼을 아이처럼 부리려고 하는 자들이라면, 그래도 혀를 차며 오게 하는 것을 너무 지나치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녹봉에 연연하여 떠나가지 않는다면, 위의 굶주린 자에 대해 부끄러운 기색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황직경(黃直卿, 황간(黃榦))이, “말세에는 참으로 의당 장저(長沮), 걸닉(桀溺)* 같은 사람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라고 하였으니, 나 또한 위의 굶주린 자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겠노라.
*장저(長沮), 걸닉(桀溺) : 춘추 시대의 은사(隱士)들이다. 공자(孔子)가 근처를 지나다가 제자를 시켜 나루를 물었을 때, 천하가 온통 다 어지러운데 누구와 더불어 변화를 시키겠느냐고 힐책하며, 그 제자에게 차라리 세상을 피하는 선비인 자신들을 따르라고 했던 고사가 『논어』「미자편(微子篇)」에 보인다. 황간의 말은 『논어집주대전』 권18 소주(小註)에 나온다.
[원문]
餓者不食嗟來之食。今按嗟來之言雖不敬。視諸嘑爾蹴爾之食。不猶愈乎。况從而謝之。有君子補過之心。則餓者之終不食以死。誠不免賢者之過矣。然古之賢者。盖有一死以扶世敎者。夫也非不知其謝之可食。其心曰吾之不食嗟來之食有素矣。今旣濱於死。非一簞食所可救。如黔敖之從而謝者。此世又不可多見。則等是死耳。無寧快意於舍命。使世之忘義餔餟者。知所惡有甚於死。挾富宣驕者。知養賢不可無禮也。是則天地間浩然之氣。果非賴此輩存得乎。噫。古之人固爲貧而仕。而未嘗苟祿焉。彼墦而丐。場而啄者。不足道。世之挾其區區之祿食。欲以兒呼人僕役人者。其爲嗟來也。不以大乎。如是而懷祿不去。則視餓者有愧色焉。故黃直卿曰。季世正當扶起沮溺人。吾於餓者亦云。
- 이인행(李仁行, 1758∼1833), 「단궁의의(檀弓疑義)」, 『신야집(新野集)』 제5권 잡저(雜著)
융통성이 없이 원칙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는다. 다리 밑에서 만나자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물이 불어나는데도 다리 밑을 떠나지 않다가 익사한 미생(尾生)이 그랬고, 전장에도 군자의 도가 있다면서 기습을 하지 않고 상대가 진영을 갖추기를 기다려 주다가 도리어 대패하고 목숨까지 잃은 송(宋)나라 양공(襄公)이 그랬다. 신의와 예의, 명분은 유가의 절대적인 가치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직된 사고로 흘러, 중용(中庸)의 도를 해치는 것은 크게 경계하였다. “군자는 무조건적으로 고집하지 않는다.[君子無可 無不可]”는 공자(孔子)의 말에서 보듯이, 오직 그 상황에서 가장 의로운 선택인가가 판단의 전제였을 뿐이었다.
큰 흉년 때 자신에게 혀를 찾다는 이유로, 그가 주는 구호 음식을 거절하고 굶어 죽은 제(齊)나라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가 일단 사과를 했으면 그냥 받아먹었어도 되는데 너무 자잘하게 예의를 따졌다고 증자(曾子)가 부정적 평가를 내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예기(禮記)』 단궁(檀弓)에 보이는 고사인데, 이 고사는 두 가지 가치를 보여준다. 하나는 아무리 중요한 원칙이라도 상황에 맞게 권도(權道), 즉 융통성을 부려야 한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현실에 타협하거나 비굴하게 굴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대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후자의 가치, 즉 자신의 자존심을 드러내는 목적으로 이 고사를 많이 인용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 신야(新野) 이인행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의 행동이 다소 지나친 듯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음으로 인해,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리보전이나, 작은 이익을 위해 몸을 굽히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말세일수록 이런 사람들의 행동을 격려해 줄 필요가 있다고까지 역설한다. 공교롭게도 신야가 세상을 떠난 해에 태어난 후산(后山) 허유(許愈, 1833∼1904)도 「불식차래론(不食嗟來論)」이라는 글에서 같은 소재를 다루었다. 후산은 신야와는 달리 권도(權道)가 필요하다는 것에 더 비중을 두었다. 비슷한 시기를 살아간 두 학자의 다른 시각은 격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지식인들이 취했던 대응 양상을 반영하는 것 같아 재미있다.
좋은 말로 유연해지지 않으면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다섯 말 녹봉 때문에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면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귀거래(歸去來)한 도연명(陶淵明)의 호기로움을 마냥 남 말 하듯 요구할 수 없는 시대다. 그 사람이 어떤 사정 때문에 그런 판단을 했는지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면, 자신은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절대 그러지 않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면, 더더욱 경솔하게 손가락질할 일은 아니다. 그렇기는 해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마저 없다면 너무 비참한 인생이 아닐까? 매일 묘지 주변을 배회하며 제사 음식을 배불리 얻어먹고 들어와서는, 처자에게 고관대작들과 노닐다 왔노라고 허세를 떨어대던 『맹자(孟子)』 이루장(離婁章)의 제(齊)나라 사람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쓴이 : 권경열(權敬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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