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 353]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번역문]
가장 좋은 것은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이 적은 것이다. 그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는 것이다. 그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이다. 그다음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아예 없는 것이다.
무릇 사람의 걱정은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아예 없는 것보다 심한 것이 없다.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아예 없으면 하지 못하는 짓이 없다. 하지 못하는 짓이 없으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시초는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데에서 시작된다.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말과 행동이 가끔은 부끄러운 행실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미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또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알았다면 또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 부끄러운 행실이 있는데도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알지 못하면, 부끄러운 행실이 있는 데에서 끝나게 된다.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알면서도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지 않는다면, 역시 부끄러운 행실인 줄을 알아서 부끄러운 행실을 고칠 수가 없게 된다.
이 때문에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귀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이 귀한 것이며,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행실을 제거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하는 것을 따져보아서 이렇게 해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거의 제대로 된 사람이다.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고 없애어서 부끄러운 행실이 적게 하는 데에 이르고, 부끄러운 행실을 적게 하고 적게 하여서 부끄러운 행실이 없는 데로 나간다면, 이런 사람은 군자이다.
[원문]
泰上無恥。其次寡恥。其次祛恥。其次知恥。其次有恥。最下者亦無恥而已矣。夫人之患。莫甚乎無恥。無恥無所不爲。無所不爲。無以爲人矣。爲人之始有恥。曰有恥則其言與行。時有不入於恥者矣。旣有恥矣。又要知恥。旣知恥矣。又要祛恥。有而不知。終於有矣。知而不祛。亦無以知爲矣。是以有之匪貴。知之爲貴。知之匪艱。祛之爲艱。今求其爲人而至此則幾矣。祛之祛之。以及於寡。寡之寡之。以進於無。斯君子人矣。
- 김상정(金相定, 1722~1788), 「치재설(恥齋說)」, 『석당유고(石堂遺稿)』
▶「삼강행실도」, 문화재청 사이트에서 인용
사계 김장생의 후손으로 영조 때 대사간을 지낸 석당 김상정이 지은 「치재설」의 앞부분이다. 이 글은 맹자가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사람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恥之於人 大矣]”라고 한 말과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부끄러운 일이 없을 것이다.[無恥之恥 無恥矣]”라고 한 말을 부연해서 설명한 것이다.
김상정은 이 글에서 부끄러움에 대해,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조차 아예 없는 무치(無恥),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는 유치(有恥), 부끄러운 행실이 부끄러운 것인 줄을 아는 지치(知恥), 부끄러운 행실을 없애나가는 거치(祛恥), 부끄러운 행실이 적은 과치(寡恥),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는 무치(無恥)의 여섯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가장 낮은 단계와 가장 높은 단계의 무치는 보통 사람들과는 거의 무관한 것이다. 그 나머지 유치와 지치, 거치, 과치의 단계는 보통 사람들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며, 누구나 애를 쓰면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김상정은 또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시초를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있는 데에서 시작한다고 하였다. 부끄러운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서 자신의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자신의 행실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서 부끄러운 행실을 점차 줄여나가고, 부끄러운 행실을 점차 줄여나가서 부끄러운 행실이 하나도 없게 한다면 군자가 된다고 하였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는 도리는 별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운 행실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어느 누가 부끄러운 행실이 없을 수 있겠는가. 예전의 선비들 가운데에는 한평생 내내 자신의 행실을 단속하면서 마음공부에 매진한 분들도 있었다. 그런 분들조차도 항상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고 자신의 행실을 부끄러워하면서 자신의 행실을 고치려고 하였다. 그런데 더구나 오늘날처럼 복잡한 세상 속에서 아등바등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겠는가. 누구를 막론하고 혼자 있을 적에 자신의 행실을 되돌아보면, 자신이 행한 부끄러운 행실이 떠올라 얼굴이 붉어질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다. 나 자신의 평소 행실을 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점이 많다. 크게 행한 부끄러운 행실을 거론할 것도 없이, 우선 이런 글을 쓰는 것만 해도 참으로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에 떳떳지 못한 행실을 한 경우가 숱하게 많다. 그런 처지이면서도 글을 쓸 때에는 매번 나 자신의 행실은 돌아보지 않은 채 남들의 잘못된 행실에 대해서는 매섭게 따지면서 비난한다. 그리고 걸핏하면 성인들의 말을 끌어대고, 선현들의 시를 인용하면서 그들을 본받으라고 한다. 돌아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있다. 내가 비록 이렇듯 부끄러운 짓을 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동안에는 나 자신의 행실을 되돌아보고 후회하면서 잠시나마 나의 마음을 다잡는다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다잡은 마음을 비록 꾸준하게 견지해 나가지는 못하더라도 얼마간은 이를 실천하고자 애쓴다. 잠시나마 나 자신의 행실을 되돌아보면서 마음을 다잡아 행실을 고쳐나가다 보면, 나 자신의 부끄러운 행실을 조금이나마 줄여서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學者學爲人 : 학문이란 사람 되길 배우는 건데,
人道行爲大 : 사람에게 젤 중한 건 실천이라네.
能言不能行 : 말만 능히 잘하면서 실천 못하면,
昔人比優俳 : 옛사람은 이를 일러 광대라 했지.
存誠愼其獨 : 성실한 맘 가지고서 신독을 하되,
齋戒思敬時 : 재계하는 듯이 마음 경건히 하며,
人一己百之 : 남들보다 백배를 더 애를 쓴다면,
是之謂知恥 : 그게 바로 부끄러움 아는 것이네.
이 시는 숙종 때의 대학자로 우찬성을 지냈던 백호(白湖) 윤휴(尹鑴)가 지은 「백록동학규(白鹿洞學規)」라는 시 가운데 독행(獨行)에 대해서 읊은 것이다. 이 시 가운데 나오는 ‘신독(愼獨)’이란 말은 『중용』에 “군자는 자기 혼자 있을 때를 삼가야 한다.[君子愼其獨也]”라고 한 데서 나온 말로, 혼자 있어 남들이 보지 않고 듣지도 못하는 곳에서도 도리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아 자신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대개 남들이 보는 데에서는 남들의 눈을 의식하여 행실을 조심하지만,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부끄러운 행실을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남들이 보는 곳에서만 부끄러운 행실을 하지 않는 것조차도 힘든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게만 해서는 안 된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 남들이 듣지 못하는 곳에서도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한다면 우리 모두 군자까지는 못 될지라도 남들로부터 비난은 받지 않는 사람다운 사람은 될 수가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혼자 방 안에 있는 그대의 모습을 살펴볼 때, 으슥한 방구석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할지어다.[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라고 하였다.
글쓴이 : 정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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