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고전향기

[한시감상 100] 세한(歲寒)의 푸르른 소나무

도솔산인 2014. 12. 15. 18:16

 

[한시감상 100] 세한(歲寒)의 푸르른 소나무

 

 

세한(歲寒)의 푸르른 소나무

 

 

                                                  奇大升(1527~1572)

 

松竹蒼蒼色映關 : 송죽의 푸르른 빛이 사립문에 비치니

向來幽興獨盤桓 : 지난날 깊은 흥취에 홀로 배회하노라

浮生蹤跡誰如意 : 덧없는 인생이야 뉘라 뜻에 맞을쏜가

留取芳盟到歲寒 : 꽃다운 맹세 간직하여 세한에 이르리

 

奇大升(1527~1572)「제영(題詠)」『고봉집(高峯集)』

  

 

 

 우리는 봄에 새싹의 파릇함을 본다. 그러나 풀과 나무들은 여름의 무성함과 가을의 단풍을 거쳐 대부분은 낙엽이 되어 사라져 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절기의 순환 속에서 이러한 모습은 자연스럽기만 하다.

 

공자(孔子)가 “날이 추워진 뒤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논어』)라고 하였는데, 이후 군자들은 소나무를 사랑하였다. 추운 겨울이 되어 모든 나무가 잎이 지고 시들 때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변치 않는 지조에 비유하여 높이 평가한 것이다.

 

새싹이 돋아나는 봄에는 저마다 희망의 미래와 성장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비단 풀과 나무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인간도 자연의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는 존재이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동일한 생장의 과정을 거친다. 어린 시절 우리는 저마다 원대한 꿈을 설계하고 노력에 따라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현실에 떠밀려 생활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 ‘세한(歲寒)’은 단순히 노년만을 의미하지는 않고 흔히들 시련의 시기를 뜻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시련과 곤경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모습이 바로 세한의 소나무인 것이다.

 

시인은 송죽의 푸르른 모습을 보며 홀로 지난날의 자신을 돌아보며 상념에 잠긴 듯하다. 부침이 반복되는 인생사에서 애초 마음먹었던 일을 다 이룬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인도 여의치 않은 일이 많았나 보다. 그러나 어떤 시련 속에서도 그 마음만은 변치 않으리라 다짐하고 있다. 이제 세한의 계절이 되었다. 나에게 남은 푸르름은 얼마나 되는지, 또 나는 주변 사람에게 변치 않는 푸르른 모습으로 대하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하겠다.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