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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감상 085]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도솔산인 2014. 5. 1. 14:47

 

[한시감상 085]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여든다섯 번째 이야기 2014년 5월 1일 (목)

 

 

 

도망아(悼亡兒) :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윤동수(尹東洙, 1674~1739)

 

                                                                        可憐天氣復陽廻 : 가련하여라 하늘은 다시 생기를 회복했건만

                                                                        一去何如汝不來 : 한 번 가더니 어찌하여 너는 오지 않는 게냐

 

                                                                        異質爭稱終遠到 : 자질이 뛰어나 큰일 하리라 칭찬들 했는데

                                                                        芳年誰意奄斯摧 : 꽃다운 나이에 갑자기 떠날 줄 뉘 알았으랴

 

                                                                        應知逝者無歡慽 : 죽은 자는 기쁨도 슬픔도 없다는 걸 알겠지만

                                                                        不耐生人獨疚哀 : 산 사람 홀로 사무치는 슬픔 견딜 수 없구나

 

                                                                        泉裏相隨嗟豈遠 : 아, 저승에서 서로 만날 날이 어찌 멀겠느냐

                                                                        自從喪爾日衰頹 : 너를 보내고부터 날마다 쇠잔해만 가는 것을

 

                                                              「도망아(悼亡兒)」『경암집(敬庵集)』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다. 사람들의 대화에도 가급적 끼지 않는다. 업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들여다보게 되는 컴퓨터, 인터넷에 얼핏 보이는 소식과 사연도 애써 외면해본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견디기 힘들고, 입에 올리는 것조차도 힘이 들어 억지로 외면한다. 그러나 외면하고 또 외면해보아도 머리에서 그리고 마음에선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간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을 때도 떠올랐다. 오늘 아침 머리를 감으며 잠시 눈을 감았을 때에도 떠올랐다. 떠나지 않는다. 눈을 감기조차 두렵다. 출퇴근길 버스의 라디오에서는 연신 관련 소식을 전하고 있다. 더 이상 귀를 막으며 피할 곳도 없다. 자꾸만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조차도 너무 힘이 든다. 하지만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어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해가며 감히 몇 자 적는다.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운 그 배 이름. 한참 마음을 가다듬어 보지만 차마 글로도 쓸 수가 없다. 나조차도 이렇게 힘든데, 자식을 차가운 바다에 보내고 그 바다를 바라보며 부둣가에 앉아있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 말인 듯싶다. 뉘라서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으며, 무슨 말로 그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다만 요절한 아들을 생각하며 슬픈 마음을 표현했던 옛 시인의 노래를 통해 그 마음의 조각을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한 번 가면 한 번 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했건만, 나의 아이는 한번 가더니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죽은 사람이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은 부모는 슬픔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죽은 것이 어찌 아이뿐이겠는가. 부모의 마음도 함께 죽어 생기를 잃고서 이미 저승에 가 있는 것을.

 

 실낱같은 희망도 모두 앗아가며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제는 원인 분석과 누구의 책임인가를 열심히 따지고들 있다.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반성하고 되새겨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 어떤 것도 부모의 마음에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런다고 한번 떠난 우리의 아이들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을 테니까. 어떤 이들은 믿지 못할 이 나라에서 그 부모들이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느냐 말을 하지만, 내 아이의 마지막 영혼이 머물렀던 그 바다를 두고 어찌 멀리 떠날 수 있겠는가. 아이를 데려간 야속한 바다이지만 그래도 하염없이 그 바다를 바라보는 일 밖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봄날을 맞아 제주에 피었을 꽃들을 생각하니 더욱 눈물이 난다.

 

글쓴이 : 이정원(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