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고전향기

[고전산문 310] 모함과 해명

도솔산인 2014. 2. 19. 21:57

 

[고전산문 310] 모함과 해명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오해를 살 때가 있다.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이 자기 잣대로 짐작하여 뒤에서 흉을 보고 다니기도 한다. 일일이 해명하자니 한이 없고, 참고 넘기자니 속이 터질 노릇이지만, 이래도 저래도 결국 본인만 손해다.

 

옛날이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오죽하면 공자(孔子)도 “임금을 섬길 때 신하로서의 예를 다하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아첨한다고 한다.”라고 하며 답답해했을까.

객(客)이 내게 말하였다.

“그대가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 것을 두고 사람들이 모두 말이 많으니, 그대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내가 말하였다.

“뭐라고 하는지 들어볼 수 있겠는가?”

객이 말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뜻을 고상히 하여 응시하지 않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명성을 높이려고 응하지 않았다고 하는 등, 높이고 낮추고, 억누르고 띄워주는 것이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이니, 그대는 위태롭게 되었네.”

내가 근심하며 말했다.

“가벼운 것도 많으면 수레의 굴대를 부러뜨리고, 깃털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는 법이네. 남들에게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해명할 수도 없는 것이니, 내가 비난의 표적이 되겠구나. 그렇지만 그대를 위해 이전에 들었던 것을 말해 보겠네.

‘대개 선과 악은 자신에게서 드러나고, 비방과 칭찬은 남에게서 드러나는 법이다. 자기에게서 드러나는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지만, 남에게서 드러나는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경우라면 마땅히 스스로 힘써야 하겠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경우라면 그들에게 맡길 따름이니, 내가 또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이 말에서 비난과 칭찬은 근심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객이 말했다.

“훌륭하도다. 그대가 아니라면, 내가 누구에게 의지하겠는가. 대개 하늘이 돌면 땅이 반대로 움직이고 양이 열리면 음이 닫히는 등, 굽히고 폄[屈伸], 사라지고 생겨남[消息]과 오르고 내림[升降], 가고 옴[往來]이 모두 그렇게 되기를 기약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으며, 인사의 길흉(吉凶)과 시비(是非)도 서로 처음과 끝처럼 연결되어 있네. 그러므로 길함이 있으면 반드시 흉함이 있고, 옳음[是]이 있으면 그름[非]이 있으며, 칭찬이 있으면 반드시 비난이 있는 것이네. 그래서 ‘명분은 실제의 손님이고, 이로움은 해로움의 주인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통해 말해보자면 칭찬한다고 반드시 기뻐할 것도 없고, 비난한다고 반드시 근심할 것도 없이, 천명에 순응할 따름이라는 것을 알겠네.

경전(經傳)에 이르지 않았던가? ‘내면을 살펴서 하자가 없으니,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라고. 내 장차 그대와 더불어 산과 바다에 정신을 깃들이고 천지의 조화를 살피면서, 포희(庖犧)를 좇아 따르리라.*”

내가 말했다.

“좋네.”

 

* 포희(庖犧)를 … 따르리라 : 유유자적하며 은자의 생활을 즐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포희는 중국 상고 시대의 전설상의 황제인 복희씨(伏犧氏)를 말한다. 진(晉)나라 도잠(陶潛)의 글에 “오뉴월 여름철에 북창 아래에 누워 있다가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오면 스스로 복희씨 시대의 사람이라고 여기곤 했다.[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라는 구절이 있다. 『陶淵明集 卷7 與子儼等疏』

 

客有謂余者曰。子之不赴春圍。人皆咻之。子且奈何。余曰。請聞其說。客曰。或云抗志以不赴。或云要價以不應。高之下之抑之揚之。不可勝紀。子其危哉。余憂之曰。羣輕折軸。積羽沈舟。人不可家至而戶說。吾其毁之囮哉。雖然。請爲子誦其夙聞。蓋善惡形於己。毁譽著於人。形於己。吾得以自盡。著於人。吾無奈何。吾得以自盡。吾當自勉。吾無奈何。任彼而已。吾又如何。吾於是知毁譽之不足憂矣。客曰。善哉。微子。吾誰與歸。夫天廻而地遊。陽開而陰翕。屈伸消息。升降往來。皆有所不期然而然者。而人事之吉凶是非。亦相與終始焉。故有吉必有凶。有是必有非。有譽必有毁者。故曰。名者。實之賓。利者。害之主也。由此而言。譽不必喜。毁不必憂。吾知順乎命而已。傳不云乎。內省不疚。何憂何懼。吾將與子。棲神山海。觀化天地。往追庖犧以從。余曰諾。

 

-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삼해(三解)」, 『고봉집 속집(高峯集 續集)』 권2, 잡저(雜著)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이 집안에 일이 많아 과거(科擧)에 응시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자, 해명하기 위해 쓴 글이다. 3가지 해명, 즉 행적에 대해 해명한 적해(跡解), 생각에 대해 해명한 의해(意解), 사리에 비추어 해명한 이해(理解)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글은 의해에 해당한다.

 

요지는 대개 선행과 악행은 스스로 통제해 볼 수 있지만, 비방과 칭찬은 남에게 달린 것이라 어찌할 수 없으니, 스스로 떳떳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수기론(修己論)으로, 비방에 대한 옛사람들의 전형적인 대처법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소된다는 식으로 느긋한 대처법도 있다. 중국 한(漢)나라 때의 문신인 직불의(直不疑)와 제오륜(第五倫)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직불의는 조정의 동료들로부터 형수와 간통을 했다는 모함을 받았고, 제오륜은 장인을 상습적으로 구타한다는 모함을 받았다.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탓에 소문이 수그러들지 않다가 나중에 “내게는 형수가 없다.”, “내가 결혼했을 때는 장인이 돌아가신 뒤였다.”고 하자 비로소 오해가 해소되었다.

 

각박하게 따지지 않는 도량에 대한 미담으로 자주 인용하는 고사이지만, 주자(朱子)나 가정(稼亭) 이곡(李穀)은 이들이 초기에 해명하지 않고 비난을 묵묵히 감수한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들 스스로는 해명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는 몰라도, 요즘같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식의 대처는 자칫하면 자신을 깊은 수렁에 빠뜨릴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가 늘 모함을 당하는 사람의 대처 방식에만 주목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남을 모함하지 않도록 고민하는 것이 정상일 텐데 말이다.

 

모함이 일어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시기심이나 사욕 때문이고, 하나는 의심 때문이다. 시기심이나 사욕으로 인한 경우는 스스로가 소인배의 도량을 벗어나지 못하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의심으로 인한 경우는 조금 더 객관적이 되고자 하는 노력만 기울인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도끼를 잃어버린 사람이 이웃집 아이를 의심하여 살펴보았을 때는 모든 동작이나 태도가 영락없이 도끼를 훔친 자의 행색이었는데, 나중에 도끼를 다른 곳에서 찾고 나서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더라는 『열자(列子)』의 교훈이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의심은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사람이 한 번 품은 의심을 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억울한 비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면 남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지가 더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다. 꼭 남을 해치고서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그 경우라면 어떻겠는가?’라는 생각을 수시로 떠올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바로 『대학(大學)』에서 말한 혈구지도(絜矩之道)이다.

 

 

권경열 글쓴이 : 권경열
  •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사업본부장
  • 주요역서
      - 『국역 오음유고』, 민족문화추진회, 2007
      - 『국역 국조상례보편』공역,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 『국역 매천집 3』, 한국고전번역원, 2010
      - 『국역 가례향의』, 국립중앙도서관, 2011
      - 『임장세고』, 한국국학진흥원, 2013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