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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329] 매미 이야기 - 말조심과 글 조심

도솔산인 2014. 6. 27. 12:26

 

[고전산문 329] 매미 이야기 - 말조심과 글 조심

 

 

 말과 글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다. 말과 글이 아니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가 없다. 말과 글이 없으면 서로 간에 의사를 소통할 수가 없어 인간 사회가 이루어질 수 없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말과 글은 의식주 못지않게 중요하다.

 

 말과 글은 참으로 유용한 이기(利器)이다. 그런데 이 말과 글이 때로는 자신을 해치고 상대방을 해치는 흉기(凶器)가 되기도 한다. 창칼보다도 더 날카로운 흉기가 된다. 이 말과 글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망쳤던가? 그리고 다른 사람을 해쳤던가?

 

 굳이 먼 옛날의 사례를 들 것도 없다. 가까이로는 국민의 비통과 분노가 극에 달하였던 세월호 사고의 와중에서 몇몇 사람들이 한 마디 말의 실수로 인하여, 한 마디 변명조차 하지 못한 채 자신이 쌓아왔던 모든 것을 잃었다. 최근에는 국무총리 지명자가 예전에 한 말과 글로 인하여 국정이 마비될 정도로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하다가, 끝내는 청문회에도 가보지 못한 채 사퇴하고 말았다.

 

매미가 우는 것을 보면 배에서 소리가 나온다. 무릇 천하에 소리를 내는 생물들은 모두 입에서 소리가 나온다. 그런데 유독 매미만은 배에서 소리가 나온다. 이것은 어째서인가?

 혹 입에서 소리가 나오는데도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매미가 아주 하찮은 미물이라서 귀와 눈과 입과 코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해서인가?

서캐나 개미 등은 지극히 하찮은 벌레들인데도 역시 입이 있다. 지렁이나 굼벵이는 그저 꿈틀대는 버러지인데도 역시 입이 있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벌레들조차도 입이 있다. 그런데 매미와 같이 맑고도 기이한 소리를 내는 곤충이 입으로 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 어찌 기이하지 않은가?

 

 옛사람들은 이르기를, ‘매미는 이슬을 먹고산다.’고 하였다. 그러니 역시 입이 있는 것이다. 입이 없다면 참으로 배에서 소리가 나오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입이 있는데도 배에서 소리가 나온 다음에야 이상한 것이다.

이 어찌 하늘이 세속에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싫어해서, 매미의 입을 봉해 경계로 삼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 점에 대해서 느껴지는 바가 있다.

 

 蟬鳴而聲出於背。凡天下有聲之物。皆以口出聲。而獨蟬之出於背何也。豈出於口。而人特不知耶。其爲物也。微而不能具耳目口鼻之體耶。蚤虱虫蟻至瑣也而亦有口。蚯蚓蠐螬至蠢也而亦有口。無聲者且有口。以蟬之淸音奇聲。不能以口出之者。豈不異哉。古人謂蟬飮露。其亦有口矣。無口則固不足異。有口而聲出於背。然後爲可異也。天豈厭世俗之多口。而緘蟬口以爲戒耶。吾於此有感。

 

 

- 임성주(任聖周, 1711~1788), 「매미 이야기[蟬說]」, 『녹문집(鹿門集)』

 

 

 

 

 

 

▶심사정(沈師正)의 화훼초충도(花卉草蟲圖) 부분. 문화콘텐츠닷컴에서 인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글은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가 말을 경계하기 위하여 지은 글이다. 임성주는 충청도 청풍(淸風) 출신으로, 영조 때 과거에 급제하여 잠시 벼슬길에 나섰다가 벼슬을 내던지고 공주(公州)의 녹문(鹿門)에 은거하면서 평생 동안 학문에 몰두하여, 조선 성리학(性理學)의 6대가 중 한 사람으로 일컬어졌던 인물이다.

 

 매미는 소리를 입으로 내지 않는다. 배를 조였다 폈다 하면서 배 안에 들어있는 울음판을 울려서 소리를 낸다. 악기가 울리듯이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참으로 시원하다. 우리의 선인들은 그 시원스런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대부분 전원생활의 흥취를 읊는 시를 지었다. 그런데 임성주는 말을 경계하는 글을 지었다. 아마도 그만큼 말을 경계하는 것이 절실해서였을 것이다.

 

 예전에 나의 선생님이 나에게 ‘자네는 글로 밥 벌어먹지 말고 말로 밥 벌어먹으라.’고 하였다. 말의 실수는 그 순간이 지나가면 사라지지만, 글의 실수는 오래도록 남아있어서 되돌릴 수가 없으니, 번역을 하지 말고 강의를 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상황이 달라졌다. 말의 실수도 동영상이나 녹음 등을 통해서 한순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그 파급 효과가 오히려 글보다도 더 크게 되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양쪽 다 어려운 세상이다.

 

 말을 하기도 어렵고 글을 쓰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말과 글로 인한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말을 하지 않고 글을 쓰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에 끊임없이 말을 하고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수가 없고, 아무런 일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삼함(三緘)이라는 말이 있다. 입을 세 겹으로 꿰맸다는 뜻이다. 옛날에 공자가 주나라에 가 사당을 참배하였을 적에 쇠로 만든 사람의 입이 세 겹으로 꿰매진 것을 보았는데, 그 등 뒤에 ‘옛날에 말조심을 하던 사람이다. 경계하여 많은 말을 하지 말지어다. 말이 많으면 실패가 또한 많으니라.[古之愼言人也 戒之哉 無多言 多言 多敗]’라고 쓰여 있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말조심을 경계할 때 흔히 쓰인다.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양 극단으로 갈라져 있다. 언론계도 그렇고 국민도 그렇다. 중도가 없다. 언론은 자신들이 반대하던 인물에 대해서는 언론 윤리 따위는 깡그리 무시한 채 그렇게도 매섭게 몰아친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갑자기 언론 윤리를 들고 나와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옹호한다. 국민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성향에 따라 반대편 인물에 대해서는 무조건 비판부터 하고, 우호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전후를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옹호한다. 중도가 없는 것이다.

 

 어떤 언론인과 술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 말이 요즈음 같은 세상에서는 보수와 진보 어느 한쪽 편으로부터만 비난을 받는 글은 잘못된 글이고,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하였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다. 양 극단으로 갈라진 사회에서는 중도를 지키면서 말을 하고 글을 쓰기가 힘들다. 중도를 지키면서 한 말과 글은 어느 쪽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지 못하며, 주목을 받을 경우에는 양쪽으로부터 비난받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말과 글은 이기(利器)이면서 동시에 흉기(凶器)다. 말과 글을 흉기로 사용하여 남을 공격하기는 참으로 쉬우며, 효과도 크다. 그런 만큼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흉기로 사용할 때에는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말과 글로 먹고사는 정치인과 언론인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특히 침소봉대(針小棒大)하거나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것을 잘못 사용하였을 경우에는 그 앙화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지금은 지나치게 양 극단으로 갈라져 있어서 말을 하고 글을 쓰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많은 말과 글이 난무하여 그 사람의 말과 글만 보고는 제대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말과 글로 인한 화를 입지 않고, 말과 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저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뿐이다.

 

 

「면학시(勉學詩)」- 백호(白湖) 윤휴(尹鑴)

 

吉人語何少 : 좋은 이는 어쩜 그리 말이 적으며,

凶人語何多 : 나쁜 자는 어쩜 그리 말이 많은가.

多言亦反覆 : 말 많으면 번복 역시 심한 법이고,

簡默終無他 : 말 적으면 다른 맘이 없는 것이네.

可磨白圭玷 : 옥의 티는 갈아 없앨 수가 있지만,

言玷不可磨 : 말의 티는 갈아 없앨 수가 없다네.

有口號談天 : 하늘 이치 능히 말할 지식이 있고,

有辯誇懸河 : 강물 쏟듯 말주변이 좋다고 해도,

心源一以放 : 맘 근원이 일단 한번 풀리고 나면,

觸物生偏頗 : 행하는 일마다 모두 잘못되는 법,

悠悠百年內 : 한백년을 유유하게 사는 동안에,

榮辱當如何 : 당하게 될 그 치욕이 의당 어떠랴?

 

 

 이 시는 백호(白湖) 윤휴(尹鑴)가 자신을 경계하기 위하여 지은 「면학시(勉學詩)」라는 제목의 시이다. 윤휴는 숙종 때 우찬성에 오르기도 하였지만, 일생의 대부분을 포의(布衣)로 지내면서 정치적인 면보다는 학문적인 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주자(朱子)의 학설에 대해 이견(異見)을 제시하여, 조선조 유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윤휴는 이 시 이외에도 말이 많은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여러 편의 글과 시를 지었다. 그런데도 끝내는 자신이 지은 글로 인하여 반대파로부터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지탄을 받아, 당쟁의 와중에서 사사(賜死)되고 말았다. 윤휴와 같이 말조심을 한 사람도 말과 글로 인하여 화를 당하였다. 그만큼 말과 글은 절제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더위가 밀려오면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질 것이다. 시원스런 매미 소리를 들으면서 입을 세 겹으로 봉한 삼함의 경계를 생각해 보자. 백호의 시도 읊조려 보자. 그러면서 자신이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는지,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지나치게 극단적인 용어를 구사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자. 말을 경계하고 글을 경계하는 데 일조(一助)가 될 것이다.

 

  

정선용 글쓴이 : 정선용
  •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 주요저역서
    - 『외로운 밤 찬 서재서 당신 그리오』, 일빛, 2011
    -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해동역사』, 『잠곡유고』, 『학봉집』, 『청음집』, 『우복집』, 『삼탄집』,『동명집』 등 17종 70여 책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