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한시모음

귀뚜라미 울음소리 파란 콩알 하나 - 정학연(丁學淵)

도솔산인 2013. 9. 11. 12:55

 

秋燈(추등) 其二 <가을 등불>

 

 

                                                      丁學淵((1783~1859)

 

 

月鉤西沒掩茅亭(월구서몰엄모정) : 갈고리처럼 걸린 달 서편으로 지고 모정은 닫혔는데

四壁蛩聲一豆靑(사벽공성일두청) : 네 벽엔 귀뚜라미 울음소리 파란 콩알 하나

 

賴有蜻蜓雙眼在(뢰유청전쌍안재) : 잠자리처럼 빛나는 두 눈 있음에 의지하나니

不須辛苦捉流螢(불수신고착류형) : 애써 나는 반딧불 잡을 필요 없다네.

 

 

 

 

 

天然具(천연구) <천연의 살림살이>

 

 

                                                     丁學淵((1783~1859)

 

 

蘿衣蕙帶稱如何(나의혜대칭여하) : 담쟁이넝쿨로 옷 해 입고 난초로 띠를 매면 어울릴까?

因樹爲居在澗阿(인수위거재간아) : 개울가의 나무 밑에 가지 엮어 살고 싶다.

 

砌覆芭蕉搖扇易(체복파초요선이) : 섬돌 덮은 파초 잎은 부치기 쉬운 부채이고

徑添苔蘚鋪氍多(경첨태선포구다) : 길을 덮은 이끼는 넓게 깐 보료겠네.

 

把竿衝雨當扶老(파간충우당부로) : 낚싯대 잡고 비를 뚫고 가면 그게 바로 지팡이요

據石臨泉是養和(거석임천시양화) : 바위에 걸터앉아 계곡물 내려다보면 방석이 따로 없다.

 

挼碎鳳仙沾荻筆(뇌쇄봉선첨적필) : 봉선화를 비벼 짜고 갈대 붓에 즙을 적셔

拾將梧葉寫隱歌(습장오엽사은가) : 오동잎을 주어다가 은사(隱士)의 노래 지어내리.

 

 

*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아들인 정학연은 빼어난 시인이자 의사였다. 그는 어느 날 의식주 모든 것을 자연에 있는 그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옷과 띠는 넝쿨이나 난초를 걸치고, 집은 따로 짓지 않는다. 부채고 담요고 지팡이고 장터에서 사오지 않는다. 시도 먹물이나 종이를 쓰지 않고 봉선화 즙에 갈대 붓으로 오동잎에 쓴다. 그렇게 살면 어떨까? 태초의 원시적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 삶 자체가 자연친화적이었던 시절에 그것마저도 인위적이라 여겨 원시의 삶을 동경하였다. 지금 우리는 천연구(天然具)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안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