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고전향기

[고전의 향기 243] 식견을 기르는 책읽기, 식견을 기르는 글쓰기

도솔산인 2012. 11. 7. 13:58

[고전의 향기 243] 식견을 기르는 책읽기, 식견을 기르는 글쓰기

 

중간고사 기간이 지났다. 여느 때처럼 책상 위에는 학생들 논술 답안지가 쌓여 있다.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가리는 기준은 명백하다. 식견이 있는 글은 A, 식견이 없는 글은 C이다. 학자들의 논문도 그렇다. 식견이 있는 논문은 A, 식견이 없는 논문은 C이다. 식견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글쓰기는 표정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생각을 쥐어짜 내면서 괴롭게 글 쓰느라 불행한 사람과 마음을 연주하면서 즐겁게 글 쓰느라 행복한 사람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식견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여기 행복한 사람이 하나 있다. 그는 한유(韓愈)에서 원매(袁枚)까지 중국 문장가 26인의 글쓰기 철학을 살펴보고자 이들의 고문을 감상하고 평론하는 행복한 작업을 펼쳤다. 1885년 조선 문인 김창희(金昌熙)가 완성한 『회흔영(會欣穎)』, 과연 이 책의 진가는 어디에 있을까?

소식(蘇軾)이 대나무를 그리는 것에 대해 논하기를 ‘완성된 대나무를 마음속에 먼저 구상해서 붓을 놀려 곧바로 완성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놓치면 사라지고 만다.’고 하였다.1) 이는 도(道)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묘하게 알아낸 것이 있으면 반드시 빨리 적어 놓아야 한다. 이것이 『회흔영(會欣穎)』이 지어진 까닭이다. 문장은 깨달음[悟]을 주로 하여 말이 통달하면 이치가 나타난다. 더러 오래 씹어 터득하기도 하고 더러 대번에 달려가 만나기도 한다. 홀로 아는 신묘함의 경지가 필묵(筆墨)의 바깥에 있으니 『이아(爾雅)』의 벌레 이름에 주석이나 달고 『이소경(離騷經)』의 향기로운 시구를 주워 모으기나 하는 자들과 어찌 이런 이야기를 함께 하겠는가.

내가 병이 들어 기억을 잘 못해서 석릉(石菱) 김상서(金尙書 김창희(金昌熙))를 찾아갔더니, 김상서는 ‘책을 읽고 잊어버리는 것을 근심할 게 아니라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뿐입니다. 샘물은 더럽고 오래된 것을 씻어내야 활수(活水)가 오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석릉자(石菱子)는 서적을 생명처럼 여겨 총각 시절 만 권을 독파하니 축적된 지식이 이미 풍부하다. 신령하고 슬기롭고 통투(通透)하고 쇄락(灑落)하여 껍데기와 찌꺼기는 모조리 빼서 없애 버리고, 문을 닫고 마음을 가라앉혀 서각(書閣)에서 고인(古人)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는 매번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기쁘게 기록하여 글상자에 보관한 것이 수만 개나 된다. 이를 덜어 내어 두 권으로 추린 다음에 내게 글을 구하였다.

내가 한두 가지 꾀를 내어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아직 깨달음이 오지 않은 것 같소. 깨달음의 지극한 경지에 가면 말이 없는 법이오. 어느 날 그대를 따라 계원(溪園)2)에 가서 망건을 벗고 금(琴)을 타며 도연명(陶淵明)의 ‘구름 보니 물가에 서니[望雲臨水]’의 시구3)를 읊조려 빈 마음에 진상(眞想)이 일고 적막한 중에 지음(至音)을 두드리면 토끼와 그물을 모두 잊고 물고기와 통발을 모두 잊을게요. 이때가 되면 『회흔영(會欣穎)』이 있는 줄이야 누가 알겠소. 하물며 내가 거기에 붙이는 군더더기 말이겠소. 그렇기는 하나 일단 그대와 껄껄 웃으며 적는다오.”

 

[子瞻論畫竹曰先得成竹於胷中。振筆直遂。少縱則逝矣。其於道也亦然。有竗契者。必疾書。此會欣穎之所以作也。文章以悟爲主。達乎辭則理見焉。或久味而得之。或率然而遇之。獨知之竗。在筆蹊墨徑之外。彼註爾雅之蟲魚。拾屈騷之香草者。焉足以與語此。余病不能强記。訪諸金石菱尙書。尙書曰讀書不患忘。患不忘耳。猶井泉焉。疏穢濯故活水乃來。石菱子以書籍爲性命。束髮讀破萬卷。蓄積旣富。靈慧透灑。盡取皮毛糟粕而刊落之。閉戶潛心。揖古人於丌閣而酬酢之。每遇會意。欣然筆之。盎葉蓋屢滿矣。陶汰得二卷。索余言。余發一二策而笑曰子之悟猶未也。悟之至者無言。異日從子溪園之上。脫巾撫桐。誦淵明望雲臨水之詩。發眞想於虛襟。叩至音於寂寞。兎魚與蹄筌兩忘。當是時也。孰知有會欣穎耶。況余言之贅乎。雖然姑與子大笑而書之。]

1) 소식(蘇軾)이 …… 하였다 : 소식의 문집에 있는 본래의 구절은 다음과 같다. “畫竹必先得成竹於胷中, 執筆熟視, 乃見其所欲畵者, 急起從之, 振筆直遂, 以追其所見, 如兎起鶻落, 少縱則逝矣.” (소식,『동파전집(東坡全集)』권36 「문여가화운당곡언죽기(文與可畵篔簹谷偃竹記)」)

2) 계원(溪園) : 김창희는 『회흔영』의 출간을 앞두고 독자들에게 작자의 인생 역정을 알려 주기 위해 1888년 「계원퇴사자전」을 지었다. 그는 이 글에서 자신의 인생을 호(號)의 변천에 따라 과거의 석릉(石菱), 현재의 둔재(鈍齋), 그리고 미래의 계원퇴사(溪園退士)로 구분하였고, 계원퇴사가 되어 자유롭게 자연에서 은거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였다. (김창희, 『석릉집(石菱集)』 권4 「계원퇴사자전(溪園退士自傳)」) 따라서 한장석이 말한 ‘계원’은 곧 김창희가 스스로 밝힌 바 자신이 미래에 얻고자 하는 이상적인 삶의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3) ‘구름 보니 물가에 서니[望雲臨水]’의 시구 : 도연명의 시에 ‘구름 보니 높이 나는 새에게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물가에 서니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望雲慙高鳥, 臨水愧游魚]’는 시구가 있다. (『도연명집(陶淵明集)』 권3 「시작진군참군경곡아(始作鎭軍叅軍經曲阿)」)

- 한장석(韓章錫, 1832~1894), 「발회흔영(跋會欣穎)」 『미산집(眉山集)』 권9

 

 

 

▶ 강희언(姜熙彦)의 사인삼경(士人三景) 중 사인시음(士人詩吟)

(『韓國의 美(20)-인물화편』중앙일보사에서 인용)

 

우리나라 한문학의 정수와 만나려면 어떤 책을 펼쳐야 할까? 일단 조선시대 성종대, 중종대, 숙종대 세 차례 출간된 『동문선(東文選)』이 기본 도서이다. 조선시대 관각(館閣)의 문장에 관심이 있다면 정조대에 출간된 『문원보불(文苑黼黻)』을 보면 된다. 뚜렷한 고문(古文) 정신으로 만들어진 선집을 원할 경우 김택영(金澤榮)의 문인 왕성순(王性淳)이 지은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抄)』를 보면 된다. 대한제국기 애국과 자강의 시대의식을 느끼고 싶다면 장지연(張志淵)의 『대동문수(大東文粹)』나 박은식(朴殷植)의 『고등한문독본(高等漢文讀本)』이 좋은 도서이다. 한․중․일(韓中日) 삼국의 한문학 작품을 함께 감상하고 싶다면 1918년 원영의(元泳義)가 편찬한 『근고문선(近古文選)』이라는 이색적인 책자도 있다.

 

그런데 이들 책자는 좋은 글을 선별하기만 했을 뿐 그 글이 왜 좋은지 감상과 평론의 포인트가 친절하게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일 텐데 아마 고급 독자들에게 그런 친절함은 불필요한 사족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창희가 『회흔영』에서 제기하는 일반 독자들의 상황은 범상하지 않았다. 19세기 조선 사회에는 방방곡곡 숙사(塾師)가 양산되고 있었는데 이들은 그저 다독다작(多讀多作)의 혹독한 훈련만 일삼으며 어린 영혼의 문학적 성장을 가로막았다. “책읽기는 식견을 구하려고 하는 건데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읽고만 있으니 아니 읽은 것만 못하고, 글쓰기는 식견을 드러내려 하는 건데 무엇을 드러내려고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쓰고만 있으니 아니 쓴 것만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결과는 책읽기를 더할수록 어리석음이 증가하고 글쓰기를 더할수록 진실성이 상실된다는 비관적인 진단이었다.

 

하지만 고문을 추구한 문장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김창희는 위희(魏禧, 1624~1680)의 글을 읽고 말한다. 한유(韓愈)는 고문(古文)을 창시한 사람인데, 그는 고문을 짓는 핵심적인 방법을 진부한 말을 제거하는 데서 구하였다. 진부한 말이란 무엇인가. 말은 식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남들과 부화뇌동하는 속된 식견[俗識]을 먼저 없애지 않는다면 고문이 나오지 못한다. 사실 글을 짓는 방도는 식견을 단련함[練識]에 있다. 이 명제는 송명(宋明) 이래 누구도 말한 사람이 없고 오직 청초(淸初) 삼대 문장가의 하나인 위희만이 말했는데 이야말로 한유의 고문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다.

 

또 김창희는 방포(方苞, 1668~1749)의 글을 읽고 말한다. 청대 동성파(桐城派) 문학을 창시한 방포는 초년에 깊이 고문(古文)을 추구했지만 만사동(萬斯同)의 조언을 받아 경학에 잠심하였다. 후일 청대 문장을 정리한 서비연(徐斐然)은 방포의 문학적 성취를 위해 이를 애석하게 여겼고 사실 문학과 이학이 분리된 현실에서 송유(宋儒)의 성리로 당송팔가(唐宋八家)의 문장을 짓는 것은 무모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학과 문학은 절대로 서로 같지 않으니 겸할 수 없다는 것은 세속적인 상식일 뿐이며 오히려 절대로 서로 같지 않은 이학과 문학의 양합(兩合)을 통하여 창조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다. 이는 일반적인 주자학적 고문론의 재도론적(載道論的) 감각과는 구별되는 것이며 차라리 이학과 문학의 상이한 두 식견의 융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회흔영』에는 이 밖에도 글쓰기 철학에 관한 유익한 단상들이 많다. 김창희는 평소 ‘답고즉속(踏古則俗), 반속즉고(反俗則古)’, 또는 ‘문무고금(文無古今), 지유아속(只有雅俗)’ 등의 확고한 문학적 식견을 지니고 있었고, ‘속(俗)’에 대한 치열한 대결의식 속에서 아무런 식견 없이 옛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낡은 관습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그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아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도 식견을 기르는 책읽기와 글쓰기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노관범

글쓴이 : 노관범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
  • 한국고전번역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