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고전향기

[고전의 향기 226] 옛날의 수행자와 오늘의 수행자

도솔산인 2012. 7. 12. 14:54

 

옛날의 수행자와 오늘의 수행자

 

 

종교에는 대개 말세론이 있다. 수백 년 전에도 천여 년 전에도 자신이 사는 세상은 늘 말세라니, 세상은 발전해 간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상식으로는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을 말세로 인식함으로써 자신과 현실을 반성하고, 옛날을 추상(推上)하여 높은 자리에 앉힘으로써 흠결 없는 삶의 전범을 세울 수 있는 것이 말세론의 장점이다. 근래에 와서 종교인들의 현실 참여가 부쩍 늘어났다. 세상이 혼란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현실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오늘날 세상은 참 복잡해졌다. 웬만한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도 세상사 시비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이쪽에서 보면 이렇고 저쪽에서 보면 저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비와 갈등 속에서 사람들의 영혼은 쉴 곳이 없는데, 수행을 업으로 삼는다는 종교인들까지 싸움판에 끼어들어서야 되겠는가. 사람들이 종교인에게 바라는 것은, 세상사 덧없는 시비를 가리는 일이 아니라 영혼의 안식을 찾은 사람의 적정(寂靜)하고 평안한 모습이다. 세상은 늘 말세라, 옛날에도 출세간(出世間)에 안주하지 못하고 세상사를 기웃거리는 종교인이 많았다.

 

옛날의 불법(佛法)을 배우는 이들은 부처님의 말이 아니면 말하지 않았고 부처님의 행실이 아니면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보배로 여긴 것은 오직 불경의 신령한 글뿐이었다. 오늘날의 불법을 배우는 이들이 서로 전해가며 외는 것은 사대부의 글귀이며 간청해 받아서 갖고 다니는 것은 시대부의 시이다. 심지어 그 표지를 울긋불긋하게 칠하고 그 시축(詩軸)을 좋은 금으로 꾸미며 아무리 많아서 부족한 줄 모르고 더없는 보배로 여기니, 아, 어쩌면 이리도 옛날과 지금의 불법을 배우는 이들이 보배로 삼는 것이 다른가!

내 비록 불초하지만 옛날의 배움에 뜻을 두어 불경의 신령한 글을 보배로 여긴다. 그러나 그 글이 매우 많고 대장경의 바다는 끝없이 넓어 후세의 동지(同志)들이 뿌리를 찾지 못하고 잎을 따는 수고를 면치 못한다. 그러므로 불서(佛書)의 글들 중에서 요긴하고 절실한 것들을 수백 말씀을 모아서 종이에 쓰니, 글은 간약(簡約)하고 뜻은 두루 갖춰졌다 할 만하다. 만약 이 말씀들을 엄한 스승으로 삼아서 깊이 연구해 오묘한 이치를 얻는다면 구절마다 산 석가가 있을 것이니, 힘써야 할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문자를 여읜 한 구절과 격외(格外)의 뛰어난 보배는 쓰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장차 뛰어난 근기(根機)를 가진 사람을 기다리노라.

 

[古之學佛者, 非佛之言, 不言, 非佛之行, 不行也. 故所寶者惟貝葉靈文而已. 今之學佛者, 傳而誦則士大夫之句, 乞而持則士大夫之詩; 至於紅綠色其紙, 美金粧其軸, 多多不足, 以爲至寶. 吁! 何古今學佛者之不同寶也. 余雖不肖, 有志於古之學, 以貝葉靈文爲寶也. 然其文尙繁, 藏海汪洋, 後之同志者, 頗不免摘葉之勞. 故文中撮其要且切者數百語, 書于一紙, 可謂文簡而義周也. 如以此語以爲嚴師, 而硏窮得妙, 則句句活釋迦存焉, 勉乎哉! 雖然離文字一句・格外奇寶, 非不用也, 且將以待別機也.]

 

도를 닦는 사람은 마치 한 덩이 칼 가는 숫돌과 같아 이 사람도 와서 갈고 저 사람도 와서 가니, 자꾸만 칼을 가는 동안 다른 사람의 칼을 잘 들지만 자신의 돌은 점차 닳아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와서 자기 숫돌에 칼을 갈지 않는다고 투덜대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修道之人, 如一塊磨刀之石, 張三也來磨, 李四也來磨; 磨來磨去, 別人刀快, 自家石漸消. 然有人更嫌他人不來我石上磨; 實爲可惜.] 휴정(休靜 1520~1604),《선가귀감(禪家龜鑑)》

 

 

 

 

  

▶ 서산대사진영(西山大師眞影)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중기의 고승인 청허(淸虛) 휴정(休靜)이 자신의 저술인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쓴 서문으로 가정(嘉靖) 갑자년(1564, 명종19) 여름에 쓴 글이다. 휴정은 서산대사(西山大師)로 일반인들에게 더 알려져 있다. 그는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서 큰 공훈을 세웠거니와 선(禪)ㆍ교(敎)에 두루 조예가 깊은, 조선시대를 대표할 만한 고승이기도 하다.

 

휴정은 35세의 젊은 나이로 당시 불교의 최고 지도자 격인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에 올랐다가 2년만인 1556년에 “내가 출가한 본뜻이 어찌 여기에 있겠는가.” 하고는 사임하고 금강산에 들어갔다. 《선가귀감》은 금강산 백화암(白華庵)에서 쓴 것인데, 제자 유정(惟政)이 발문에서 밝혔듯이 50여 종의 경(經)ㆍ론(論)에서 중요한 내용을 발췌하고 간단한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1579년에 초간(初刊)된 이래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그리고 제자인 사명당 유정이 임진왜란이 끝난 뒤 탐적사(探賊使)로 일본에 가서 임제종 승려들에게 이 책을 강의한 뒤로 도합 여덟 차례나 간행되어 일본 임제종의 부흥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 두 나라 불교계의 스테디셀러였던 셈이다.

 

조선시대에 승려들은 이름난 사대부들의 시문(詩文)을 받아 모은 시권(詩卷)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랑거리로 여겼다. 이러한 풍습은 중국 당(唐)나라 때부터 이미 보인다. 예컨대 대문호인 한유(韓愈)가 문창(文暢)이란 승려를 보내면서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와 시를 지어준 것이 그 일례이다. 조선시대에도 승려들의 신분이 낮아진 터라, 행각하는 승려들이 명사들의 시문을 받는 것을 큰 영광으로 여겼고, 또한 사대부들의 서찰을 전해주는 우체부 역할까지도 하였다.

 

“문자를 여읜 한 구절과 격외(格外)의 뛰어난 보배”란 교외별전(敎外別傳), 격외선지(格外禪旨)를 뜻한다. 언어와 문자가 나온 자리인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깨닫게 해야 함으로, 언어와 문자를 의지하되 언어와 문자를 벗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선가귀감》에 수록된 많은 얘기들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니, 여기에도 집착하지 말고 곧바로 달을 보아야 함을 일러준 말이다.

 

도를 닦는 사람을 숫돌에 비유한 글은 《치문경훈(緇門警訓)》의 <자수심선사소참(慈受深禪師小參)>에서 인용한 것이다. 맹자(孟子)는 “사람들의 병통은 자기 밭은 버려두고 남의 밭에 김을 매는 것이다.[人病舍其田而芸人之田]” 라고 하였거니와 사람들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제쳐두고 부질없는 세상사에 관심을 두는 병통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수행자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소위 지식인들에게 통렬한 경책(警策)이 될 것이다.

 

《선가귀감》에는 이 밖에도 말세의 승려들을 통렬히 꾸짖은 곳이 많다. “마음이 세상의 명리(名利)에 물든 자들은 권력에 아부하면서 풍진 속을 쫓아 다녀 도리어 속인들에게 비웃음을 산다.”는 대목은 오늘날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종교인들의 모습을 참으로 잘 꼬집었지 않은가. 그렇지만 종교인도 오욕칠정(五慾七情)을 가진 인간이다. 탐욕으로 세상을 더럽히고 아수라의 싸움판을 만드는 종교인이 아니라면, 세속에서 오욕락을 맘껏 누리는 사람들이 저자거리의 수행자들을 쉽게 질타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세상은 실리(實利)가 가장 큰 진리요 명분이 되었지만, 지식인도 진리와 명분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종교인과 다르지 않다. 남의 글만 외고 다니지는 않은지, 남의 밭에 가서 김을 매고 있지는 않은지, 자기 숫돌만 닳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을 바로잡는다고 아우성치는 지식인들은 반성해 볼 일이다.

 

 

 


 

이상하 글쓴이 : 이상하
  •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무처장
  • 주요저서
      - 한주 이진상의 주리론 연구, 경인문화사
      - 유학적 사유와 한국문화, 다운샘(2007) 등
  • 주요역서
      - 읍취헌유고, 월사집, 용재집,아계유고, 석주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