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고전향기

[한시감상038]은거하러 떠나는 친구를 보내며

도솔산인 2012. 7. 12. 20:33

 

 

은거하러 떠나는 친구를 보내며

 

 

 

자네는 왜 그리 속세를 싫어하여

가족 다 데리고 파주로 은거하려 하는가?

술 익고 차 향기로운 꽃 피는 달밤이면

친구여, 옛 이웃인 나를 기억하려나.

 

問君何事厭囂塵

盡室坡山訪隱淪

酒熟茶香花月夕

忘年記否舊東隣

 

囂 : 떠들썩할훤,

 

- 신위 (申緯 1769~1845)

〈송별서치가 예보 이거파산(送別徐穉嘉 禮輔 移居坡山)〉

《경수당전고(警修堂全藁)》

 

 

친구는 속세가 싫어졌다며 가족들을 데리고 이사를 간다고 한다.

꽃이 만발한 봄날에 함께 달 아래서 술을 마시고 차를 마시던 친구.

이젠 그에 관한 모든 것들을 추억이라는 공간에 넣어두어야 한다.

 

흔히 이별을 앞둔 사람은 슬픔과 눈물을 언급하지만,

이 시에서는 그저 담담하게 옛 추억을 더듬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운문이든 산문이든

앞에서 한껏 미화하고 찬양한 뒤에

뒤에서 그것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해버리면

독자가 느끼는 상실감은 더욱더 배가 되는 법이다.

 

3구에서 언급한 추억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울수록

이별 후의 심정이 더욱 애절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더구나 시인은 지금 70세가 넘은 노년임에랴.

 

지족당(知足堂) 권만두(權萬斗,1674~1753)의 <한거잡영(閒居漫詠)>이라는 시에

 

늙어갈수록 점차 책 읽는 재미를 알겠고 老去漸知讀書好

궁해질수록 친구 맺기 어려움을 실감하네 竆來偏覺結交難

 

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의 인심이 옛날이라고 너그럽고 요즘이라고 더 각박한 것은 아니다.

사람이 늙고 궁해지면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레 멀어지게 마련이고,

결국 진정한 친구 몇몇만이 내 곁에 남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랜 세월이 흐른 훗날에도

나를 위해 남아줄 수 있는 친구가 있고,

그를 위해 남아줄 수 있는 내가 있다면,

아아!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을 산 것인가?

 

 

 

권경열 글쓴이 : 권경열
  • 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연구소장
  • 주요역서
      - 국역 갈암집(공역), 민족문화추진회. 1999
      - 국역 오음유고, 민족문화추진회, 2007
      - 국역 국조상례보편(공역),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 국역 매천집 3, 한국고전번역원, 2010
      - 국역 가례향의, 국립중앙도서관,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