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고전향기

[고전명구187]저주와 축원 사이

도솔산인 2012. 6. 21. 14:07

 

저주와 축원 사이

 

- 백 여든 일곱 번째 이야기 -

 

부자에게 아들이 많기를 축원하고, 귀한 사람에게 권세가 막강하기를 축원하고, 명망 있는 사람에게 벼슬이 높기를 축원하고, 복 많은 사람에게 장수하기를 축원하는 것은 모두 저주하는 것이요, 축원하는 것이 아니다.

 

祝富人以多男,祝貴人以盛權,祝名人以尊爵,祝福人以遐壽,皆詛也,非祈也。

 

 

- 성대중 (成大中 1732~1809)

<성언(醒言)>

《청성잡기(靑城雜記)》제3권

 

《서경(書經)》에서는 오복(五福)이라고 하여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들고 있습니다. 장수하고, 물질적으로 넉넉하며,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하며, 도덕 지키기를 좋아하며,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을 사람이 가장 가치 있고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다섯 항목으로 꼽은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누군가는 치아가 좋은 것, 자손이 많은 것, 부부가 해로하는 것, 손님을 대접할 만한 재산이 있는 것, 명당에 묻히는 것을 오복으로 꼽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는 건강한 몸을 가지는 복, 서로 아끼면서 지내는 배우자를 가지는 복, 자식에게 손을 안 벌려도 될 만큼의 재산을 가지는 복, 생활의 리듬과 삶의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적당한 일거리를 갖는 복, 나를 알아주는 참된 친구를 가지는 복을 현대판 신 오복이라고 부른다는군요.

 

 어떤 것을 오복에 넣느냐 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개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과 소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누구나 이런 복들을 원하고 그것을 골고루 갖추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복들을 골고루, 많이 받으시도록 축원을 합니다. 그런데 성대중 선생은 복을 골고루 갖추라고 축원하는 것은 축원이 아니라 저주라고 하시니, 상식을 뒤집는 말이라 몹시 당황스럽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부유하면서 아들이 많으면 자식을 다 혼인시키기 전에 재산이 이미 줄어들고, 형제가 많으면 밖에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것이 없어서 술 마시고 노름에 싸움질이나 하여 집안도 뒤따라 망하고 만다. 귀하면서 권세가 막강하면 10년이 못 되어 하늘의 재앙과 사람들의 해침이 함께 닥치고, 명망이 있으면서 벼슬이 높으면 처음에는 의심이 이르고 중간에는 비방이 모이고 끝내는 온갖 모욕이 모여서 명망이 마침내 다 없어지고 만다. 복이 많으면서 장수하면 처자식이 먼저 죽고 심지어는 손자까지 장사 지내게 되어 복이 변해 재앙이 되고 마니, 이는 모두 불변의 이치이다.

 

 다소 극단적인 예만 든 것 같아 선뜻 수긍이 가지 않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나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아주 터무니없는 주장만은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새해 첫 인사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건네는 덕담이 설마 저주가 되기야 하겠습니까? 성대중 선생의 말씀은 복을 부정하고, 축원을 비난하자는 뜻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복을 혼자만 다 가지려 하는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축원이냐 저주냐의 경계는,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바로 ‘욕심’에서 갈라지는 것이 아닐까요?

 

글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