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고전향기

복사꽃과 금강철

도솔산인 2012. 6. 28. 13:10

 

복사꽃과 금강철

 

 

雪山深處一枝花 : 눈 덮인 깊은 산 속 한 송이 꽃이/설산 깊은 곳 한 줄기 매화꽃

爭似緋桃護絳紗 : 어찌 붉은 비단에 싸인 복사꽃만 하리/어찌 진홍색 깁에 싸인 붉은 복사꽃만 하겠는가?  

此心已作金剛鐵 : 내 마음 이미 금강철이 되었으니/이 마음 이미 단련된 금강철이 되었으니  

縱有風爐奈汝何 : 풍로가 있다 한들 너를 어이할까/비록 풍로가 있을지라도 그대를 어이하리

 

緋 붉은빛비, 붉은명주비, 絳 진홍색강, 紗 깁사, 縱 : 비록 ~일지라도(雖)

 

- 정약용 (丁若鏞 1762~1836)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제5권

 

이 시의 원래 제목을 먼저 소개한다.

 

11월 6일 다산의 東庵동암 淸齋청재에서 혼자 자고 있었다. 꿈에 한 예쁜 여인이 찾아와 장난을 걸었는데 나 역시 마음이 동하였다. 잠시 뒤에 그녀를 거절해 보내면서 절구 한 수를 지어 주었다. 꿈을 깨고 나서도 기억이 역력하였다. [十一月六日, 於茶山東庵淸齋獨宿. 夢遇一姝來而嬉之, 余亦情動. 少頃辭而遣之, 贈以絶句. 覺猶了了.]

 

서문(序文) 격으로 쓴 시제(詩題)를 보면 이 시는 꿈속에서 지은 것이며, 그 꿈이 깨고 나서도 선명할 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중간에 인간적인 감정의 동요가 일어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이 시를 산문으로 풀어보면 대강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온통 눈으로 뒤덮인 산속 깊은 곳에서 매화꽃 한 가지를 만났다면 그 아름다움이 어떠할까? 아주 경이로울 것이다. 그러나 이는 관념 세계의 꽃이다. 그 아름다운 꽃도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복사꽃, 그것도 붉은 비단에 살포시 감싸인 꽃의 자태에는 견주기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그와 진배없이 다홍치마를 곱게 차려 입은 고혹적인 여인이 지금 내 눈 앞에 와서 속삭이며 웃고 있다. 아, 어지럽고 내 마음도 흔들릴 것만 같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미 오래 단련한 금강철, 설령 그대가 무쇠를 녹이는 좋은 풍로와도 같이 갖은 애교로 나를 유혹한다고 해도, 내 마음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러니 미안하다. 그대는 잘 가시라. 내가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건, 이 시 한 수 뿐.

 

이 시는 논자들에 따라 시를 해석하는 방향이 다소 차이가 난다. 어떤 분들은 설산에 핀 꽃이 복사꽃처럼 아름답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금강철 같은 마음을 그 여인의 마음으로 보기도 한다.

 

이 시에는 시에서 주로 보이는 ‘쟁사(爭似)’라는 어법이 눈에 띈다. 이 말은 앞에 비교 대상을 제시한 다음 ‘쟁사’를 놓고 다시 자신이 정말 부각하고 싶은 사물을 제시하여 앞에 나오는 그것이 어찌 뒤에 제시한 이것만 하겠는가, 이런 구문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널리 알려진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시이다.

 

請看千石鍾 : 청컨대 천석 무게의 큰 종을 보라

非大扣無聲 : 큰 공이가 아니면 쳐도 소리가 없다

爭似頭流山 : 어찌하면 두류산과 같이

天鳴猶不鳴 :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으리...

 

먼저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나오는 이정당종(以莛撞鐘)의 고사*를 원용하여 큰 공이로 치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 천석종을 제시한 다음, 쟁사라는 말을 놓았다. 그 결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두류산이, 천길 봉우리에서 다시 천길 봉우리를 바라보는 듯, 독자들의 마음에 쿵 하는 울림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남명이 쓴 명문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보면 남명이 존경하는 한유한(韓惟漢), 정여창(鄭汝昌), 조지서(趙之瑞) 세 군자를 ‘십층이나 되는 높은 봉우리에 옥 하나를 더 올려놓고, 천 이랑이나 되는 수면에 달빛이 비치는 격[十層峯頭冠一玉也, 千頃水面生一月.]’이라는 표현으로 비유한 대목이 나오는데, 바로 이 쟁사의 용법이 그러한 면이 있다. 절정에서 한 걸음 더 밀고 나가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감동을 안겨준다. 남명의 시가 거대 세계를 극한의 점층적 이미지로 구사하여 독자에게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면, 다산의 시는 관념적이고 이성적인 꽃을 구체적이고 육감적인 꽃과 대비하여 그 거부할 수 없는 유혹과 그것을 이겨낸 정신을 생기 있게 표현했다고나 할까.

 

이 쟁사의 용법을 비교적 이른 시기에 구사한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작품을 본다. 총 9수로 된 <양류지(楊柳枝)>의 4번째 시이다.

 

金谷園中鶯亂飛 : 금곡원 안에는 꾀꼬리 어지럽게 날아다니고

銅駝陌上好風吹 : 동타가에는 훈훈한 봄바람 불어온다

城中桃李須臾盡 : 성안의 도리화 잠깐 새에 떨어지니

爭似垂楊無限時 : 어찌 오래가는 수양버들만 할까

 

첫 두 구에선 동진 시대 석숭(石崇)의 금곡원에서 노는 꾀꼬리와 당나라 때 낙양에 있던 번화가인 동타가(銅駝街)의 봄바람을 들어 질탕한 봄 풍경을 제시하였다. 이어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복사꽃과 자두꽃은 쉬이 져 버리니 자신은 오래 두고두고 감상할 수 있는 수양버들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반의 상식을 뒤집는 말을 하려니 쟁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一團茅草亂蓬蓬 : 한 무더기 띠 풀이 뒤엉켜 있더니

驀地燒天驀地空 : 갑자기 불길 치솟았다 이내 사그라든다

爭似滿爐煨榾柮 : 이것이 어찌 화로 가득 숯을 피워

漫騰騰地煖烘烘 : 오래도록 왕성하게 따뜻한 것만 할까

 

蓬 흐트러질봉, 쑥봉 떠돌아다닐봉, 驀 말탈맥, 갑자기맥, 금새맥 쏜살같이맥

煨 불씨외 굽을외 재에 묻어 구을외, 榾 : 등걸골 마들가리골, 그루터기골, 땔나무로하는 나무토막골 柮 : 마들가리돌, 목재를 자르고 남은 토막골, 가지없는 나무골

漫 질펀할만, 넘쳐흐를만, 흩어질만, 넘처흐를만,

 

《천가시(千家詩)》에 나오는 무명씨의 작품이다. 중국 숭산(崇山)의 법당 벽에 누군가가 써 놓았다고 알려져 있다. ‘쟁사(爭似)’를 전후하여 시상이 극명하게 갈린다. 앞 두 구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부귀를 추구하여 갑자기 흥했다가 갑자기 망하는 사람을 비유한 것이고, 뒤 두 구는 안분(安分) 속에 착실하게 사는 삶을 형상화하였다. 세 번째 구절에 나오는 골돌(榾柮)은 나무 밑동의 옹이 같은 것으로 숯 대신에 썼다고 하는데 이것이 인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도 착실한 삶의 가치를 물거품 같은 부귀와 대비하여 드러내자니 쟁사라는 말이 필요했던 것이다.

 

앞의 다산의 시에서 ‘내여하(奈汝何)’라는 말도 눈길을 끈다. 항우가 해하에서 사면초가를 당하여 지은 <해하가(垓下歌)>에 ‘우여, 우여, 너를 어이한단 말인가[虞兮虞兮奈若何]’에 쓰인 ‘내약하(奈若何)’가 ‘내여하’와 같기 때문이다. 이 구절에는 우미인(虞美人)에 대한 비탄과 연민 등이 담겨 있다. 다산의 시도 이와 맥락상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자신의 강철 같은 정신을 지키기 위해 여인을 매몰차게 내쫓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은 자신의 것대로 지키고 상대도 머쓱하지 않게 돌려보내는 원숙한 도덕적 풍도가 혹 읽혀지지 않는가.

 

한시를 감상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시대나 인물의 비교, 혹은 풍격이나 형식, 철학과 문예미, 박물학 등등, 다양한 측면에서 시를 감상해 볼 수 있다. 그 중에 시에 쓰이는 동일한 어법을 비교해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일 듯하여 몇 편의 시를 소개해 보았다.

 

사실 한시는 현대시에 비해 그 의미가 오히려 정확한 편이다. 현대시는 사용되는 언어 구사가 매우 개인적인데다 비유 외에도 은유나 상징을 습관적으로 구사한다. 그래서 그 의미가 모호성을 띠고 있지만 한시는 이에 비해 작가가 관심과 역량을 기울인 부분이 다르고 산출된 문화 환경이 다르지만, 일단 고사를 알고 뜻을 파악하고 나면 시의 의미는 현대시에 비해 오히려 분명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이정당종(以莛撞鐘)의 고사 : 춘추 시대에 조양자(趙襄子)가, 공자가 열국(列國)의 제후들에게 등용되지 못한 것을 비웃자, 자로(子路)가 “천하의 큰 종을 걸어놓고 작은 막대기로 치면 어찌 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建天下之鳴鍾,而撞之以挺,豈能發其聲乎哉!]”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식견이 천박한 제후들을 작은 막대기에, 큰 종을 공자에 비유하여 말한 것이다.

 

 

 

 

글쓴이 : 김종태(한국고전번역원)

zidang@itk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