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한시모음

山居雜興(산거잡흥) - 아암혜장(兒庵惠藏)

도솔산인 2012. 6. 6. 19:03

 

碧樹丹霞滿目姸(벽수단하만목연) : 푸른 나무숲, 붉은 노을은 눈에 가득 곱구나.

 

山居雜興(산거잡흥) - 아암혜장(兒庵惠藏)

 

一簾山色靜中鮮(일렴산색정중선) : 주렴에 어린 산빛은 정적에 싸여 아름답고

碧樹丹霞滿目姸(벽수단하만목연) : 푸른 나무숲, 붉은 노을은 눈에 가득 곱구나.

叮囑沙彌須煮茗(정촉사미수자명) : 어린 사미를 불러 차 끓여라 이르고 보니

枕頭原有地漿泉(침두원유지장천) : 베갯머리에 원래 시원한 우물(地漿泉)이 있는 것을.

 

 

簾(렴) : 발,주렴. 霞(하) : 노을. 姸(연) : 곱다.

叮(정) : 단단히 부탁하다. 囑(촉)=부탁하다. 叮囑(정촉) : 부탁하다, 명하다.

煮茗(자명) : 차를 끓이다. 枕頭(침두) : 베갯머리, 가까운 곳.

漿泉(장천) : 물이 나는 샘(우물). 약수.

 

 

 

아암 혜장(兒庵惠藏․1772~1811) 스님의 속명은 김홍조(金弘祚), 법명은 혜장(惠藏), 호는 연파(蓮坡) 또는 아암(兒庵). 字는 팔득(八得), 무진(無盡). 전남 해남군 화산면 출생. 다산 정약용과 초의(草衣)의 순스님의 차 스승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대둔사(大芚寺)에서 삭발을 하고 춘계천묵(春溪天) 스님에게서 수업하였다. 그는 몸집이 작은 데다 소박하고 어리석은 듯이 보여, 여느 스님과는 기품이 달랐다.

 

 

스님은 茶山에게 차의 맛을 처음으로 깊이 알게 했던 분이다. 신유년(1801) 겨울 다산 정약용(1762~1836)이 백련사 주지인 아암혜장 스님을 만난다(당시 혜장은 34세, 다산은 44세). 두 사람은 금방 다우(茶友)가 되었으며, 그 후 자주 만났다. 혜장은 다산이 강진 동문 밖 시끄러운 노파의 밥집에서 조용한 고성암 요사(寮舍)로 옮겨 독서도 하고 차도 마실 수 있게 도와준다.

 

 

그래서 다산은 고성암(高聲庵) 요사를「보은산방(寶恩山房)」이라고 불렀다. 혜장 스님은 백련사 부근에서 자라는 어린 찻잎으로 차를 만들어 보은산방에 있는 다산에게 보내주곤 했는데, 차가 오지 않으면 다산은 혜장 스님에게 차를 간절하게 요청하는 「걸명(乞茗)의 시」를 보내기도 했다. 혜장 스님은 술병이 나 죽기 전 자신의 회한을 읊조린 시 한 편을 다산에게 보내기도 했다.

 

 

스님은 특히, 주역 ․ 논어와 『능엄경』․『기신론』을 좋아했는데, 1796년(정조 20) 즉원(卽圓) 선사의 법을 이어서, 대둔사의 강석(講席,12대 강사)을 맡아 이름을 떨쳤다.

 

 

산에서 느끼는 흥취를 그린 20수의 시 가운데 두 번째 시다. 스님의 한가롭고 고고한 무심세계를 느낄 수 있다. 파격적인 삶을 살았던 스님에게는 제자가 넷 있었는데, 이미 35살 때 의발을 전수하고선, 詩와 술(酒)을 즐기며 자유자재의 생활을 즐겼다. 신미년(1811,순조11년) 가을에 병을 얻어 음력 9월 14일 북암(北菴)에서 입적했다. 문집『아암집(兒庵集)』이 있다.

 

 

출처 : 漢詩 속으로
http://cafe.daum.net/heart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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