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한시모음

香積庵無僧已二載(점필재)

도솔산인 2012. 3. 1. 17:30

 

[고전국역원]향적암에는 중이 없은 지 이미 이년[香積庵無僧已二載]

 

서로 손 잡고 운관을 찾아드니 / 携手扣雲關

속인의 발자국이 혜란을 더럽히네 / 塵蹤汚蕙蘭

계곡의 샘엔 아직도 홈통이 있고 / 澗泉猶在筧

향불의 재는 아직 향반에 쌓였구려 / 香燼尙堆盤

지팡이 기대니 가을빛은 썰렁하고 / 倚杖秋光冷

바위 오르니 온 세상 넓기만 하네 / 捫巖海宇寬

은근히 원숭이와 학에게 알리노니 / 殷勤報猿鶴

내가 다시 오르기를 용납해다오 / 容我再登攀

 

 

 

 

 

香積庵無僧已二載(중이 떠난 지 이미 2년이 넘은 향적암에서)

 

                          佔畢齋

 

携手扣雲關(휴수구운관) : 손을 잡고 운무로 뒤덮인 문을 두드리니

塵蹤汚蕙蘭(진종오혜란) : 속인의 발자국이 혜란초를 더럽히네.

澗泉猶在筧(간천유재견) : 아직 실개천 샘터에는 홈통이 남아있고

香燼尙堆盤(향신상퇴반) : 타다 남은 향불도 (아직) 쟁반에 쌓여있어라.

倚杖秋光冷(의장추광랭) : 지팡이를 기대니 가을빛은 차가운데

捫巖海宇寬(문암해우관) : 바위를 붙잡고 (금강대에)오르니 온 세상이 넓구나.

殷勤報猿鶴(은근보원학) : 은근히 원숭이(산사람)와 학(은둔 선비)에게 알리노니

容我再登攀(용아재등반) : 내가 다시 오르는 것을 용납해다오.

 

 

已 : 이미. 載 : 年(해년), 秋(해추). 塵蹤 : 속인의 발자취. 澗 : 산골물간, 猶(아직유) = 尙(상). 燼 : 깜부기불신 타다가 남은 것, 탄 나머지 捫: 어루만질문, 붙잡을문, 海宇 : 해내의 땅, 국내. 寬 : 넓을관

 

 

성모사에서 1박을 하고 일기로 인해 추석 달맞이를 못하고 안개 속을 내려온 선생은 을씨년스러운 향적대에서 1박을 하게 되는데 당시의 정황과 풍경이 시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사람의 발길이 없어 출입하는 길에 혜란초는 웃자라 있고, 샘터와 홈통, 타다 남은 향이 쌓여있는 쟁반 또한 사실감을 더해 준다.

 

 여기까지 오면서 나는 '원숭이와 학'의 시어를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선열암에서 '멀리 학이 놀라다.’는 오류이고 ‘원숭이와 학이 놀라다.’인데, 원숭이는 산에 사는 사람이라면 학은 은둔 선비를 가리키는 것일까? 과연 원숭이와 학은 무엇이고 영신암에서 산도는 무엇일까?

산도는 원숭이 우두머리이니 산사람의 대장이고 학은 신선(고운)이 탔다는 상상의 청학인가? 余는 도통 모르겠으니 강호의 고수님들이 가르침을 주소서.

 

한한대사전에 다행히 있습니다. 등산은 장비가 중요하듯 국역은 자전이네요. 한한대사전 16권짜리 가격만 1,600,000원 김종직 선생 덕에 제대로 쓰고 있네요. 예전에 선대의 문집을 국역하기 위해 마련한 것인데 이제야 책이 빛을 발합니다.

 

'猿鶴원숭이와 학' : 猿鶴沙蟲(원학사충)의 준말로 은거하는 선비를 이르는 말. 주목왕周穆王의 군대가 몰살되어 군자는 죽어서 원숭이나 학이되고 소인은 죽어 모래나 벌레가 된다는 고사[한한대사전(단국대동양학연구소)10권257頁]

 

 율시에서 3구와 4구 5구와 6구는 반드시 대구로 이루어져 있으니 한시의 절묘함이 여기에 들어있다. '주인 없는 산중 암자에 가을빛조차 차가운데 금강대(?)에 올라 바라본 세상은 넓고도 넓어라.' ‘가을빛은 차갑고 세상은 넓다.’ 는 표현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훈구파의 견제는 대수롭지 않다. 왜냐하면 세상은 넓기 때문에 개의치 않겠다는 다짐인가?

 

아무튼 천왕봉에 다시 오르겠다는 암시와 다짐이 4연에 나타나 있으니 다음 편이 기대가 됩니다.

 

오류를 지적해 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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