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59차 33산우회 9월 대둔산 정기산행

도솔산인 2009. 9. 6. 22:11

59차 33산우회 9월 대둔산 정기산행

  

▣ 일     시 : 2009년 09월 06일(일)

▣ 대 상 산 : 대둔산

▣ 인     원 : 8명(단지, 푸른솔, 청량초인, 오작가, 오량산인, 카라, 몽골녀, 余) 

▣ 코     스 : 상수락 - 수락재 - 깔딱고개 - 829봉 - 마천대 - 낙조대 - 허둔장군절터 - 화랑폭포 - 상수락

 

남을 가르치는 일로 업을 삼은지 20여년...

한유의 사설을 외우며 걷는 산길... 작금의 학교 일로 마음이 몹시 무겁다.

 

 師 說

 

                                                                                                                                                                                                                   -韓 愈-

  

古之學者는 必有師니 師者는 所以傳道授業解惑也라. 人非生而知之者인댄 孰能無惑이리오? 惑而不從師면 其爲惑也는 終不解矣라. 生乎吾前하여 其聞道也가 固先乎吾면 吾從而師之하고 生乎吾後라도 其聞道也가 亦先乎吾면 吾從而師之라. 吾師道也니 夫庸知其年之先後生於吾乎리오? 是故로 無貴無賤하며 無長無少요 道之所存은 師之所存也라.

 

嗟乎라! 師道之不傳也久矣니 欲人之無惑也難矣라. 古之聖人은 其出人也遠矣로되 猶且從師而問焉이어늘 今之衆人은 其下聖人也亦遠矣로되 而恥學於師라. 是故로 聖益聖하고 愚益愚라. 聖人之所以爲聖과 愚人之所以爲遇가 其皆出於此乎인저!

 

愛其子하여는 擇師而敎之하되 於其身也엔 則恥師焉하니 惑矣라. 彼童子之師는 授之書而習其句讀者也니 非吾所謂傳其道解其惑者也라 句讀之不知와 惑之不解에 或師焉하며 或不焉하니 小學而大遺라 吾未見其明也로라.

 

巫醫樂師百工之人은 不恥相師어늘 士大夫之族은 曰師曰弟子云者면 則群聚而笑之라. 問之則曰;彼與彼로 年相若也요 道相似也라. 位卑則足羞요 官盛則近諛라 하니라 嗚呼라! 師道之不復을 可知矣로다. 巫醫樂師百工之人을 君子不齒러니 今其智乃反不能及하니 可怪也歟인저!

  

聖人無常師라 孔子師郯子.萇弘.師襄.老聃이시나 聃子之徒는 其賢이 不及孔子라. 孔子曰;三人行에 則必有我師라. 是故로 弟子不必不如師라. 師不必賢於弟子라. 聞道有先後요 術業有專攻이니 如是而已니라.

 

李氏子蟠이 年十七이라 好古文하여 六藝經傳을 皆通習之러니 不拘於時하고 請學於余라. 余嘉其能行古道하여 作師說以貽之하노라.

 

소장병풍<사설>

 

 글 : 지원 박양준 선생

  

옛날의 배우는 자는 반드시 스승이 있었으니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업을 주고 의혹을 풀어주는 것이니라.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닌데, 누가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의혹이 있으나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의혹됨이 끝내 풀리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앞에 태어나고 그가 도를 들음도 나보다 먼저면 나는 그를 따라 스승으로 삼고 나보다 뒤에 태어났더라도 그 도를 들음이 진실로 나보다 먼저면 나는 그를 따라 스승으로 삼는다. 나는 도를 스승으로 삼는 것이니, 어찌 그 나이가 나보다 앞서 태어나거나 늦게 태어남을 따지겠는가? 이런 까닭으로 귀하다거나 천하다거나 나이가 많다거나 적거나 할 것이 없이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

 

아아! 스승의 도가 전해지지 않은지 오래되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의혹이 없게 하려해도 어려운 일이구나! 옛 성인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오히려스승을 따라 물었거늘 오늘날의 많은 이들은 성인보다 훨씬 뒤떨어지지만 스승에게 배우기를 부끄러워 한다. 이런 까닭으로 성인은 더욱 성명해지고 어리석은 이는 더욱 어리석게 된다. 성인이 성명해지고 우인이 어리석게 되는 까닭이 모두 이에서 나온 것인가?

 

자식을 사랑하여 스승을 골라서 가르쳐 주면서도 그 자신에게는 스승삼기를 부끄워하니 미혹된 일이다. 저 어린아이의 스승은 책을 가르치고 읽는 법을 가르치는 자이지 내가 말하는 도를 전하고 미혹됨을 풀어주는 자는 아니다. 책 읽는 법을 모르거나 미혹이 풀리지 않는데 대하여, 혹은 스승을 삼기도 하고 혹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작은 것은 배우고 큰 것은 버리고 있으니 나는 그를 현명하다고 할 수 없다.

 

무당이나 의사. 약사와 같은 각종 직공들은 서로 스승삼기를 부끄러워 하지를 않는다. 그런데 사대부의 무리들은 스승이니 제자니 하는 자가 있으면 무리지어 모여서 그들을 비웃는다. 그 까닭을 물으면 “저이와 저이는 나이가 서로 같고 도도 비슷하다”고 한다. 스승의 지위가 낮으면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고 스승이 벼슬이 높으면 아첨에 가깝다고 한다. 아! 스승의 도가 회복되지 않았음을 알만 하구나. 무당이나 의사와 각종 직공들은 군자들이 업신여기지만 지금 그들의 슬기는 도리어 미칠 수 없으니 정말 이상하구나.

 

성인인 공자께서는 일정한 스승이 없었다. 공자는 담자, 장흥, 사양, 노담에게 배웠으나, 담자의 무리는 현명함이 공자에 미치지 못하였다. 공자는 “세사람이 길을 갈때에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제자가 반드시 스승만 못하지도 않고 스승이 반드시 제자 보다 낫지도 않다. 도를 들음에 있어 선후가 있고 학술과 직업에 전공이 있어서 이와 같이 되었을 따름이다.

 

이씨의 아들 반은 나이 열일곱으로 고문을 좋아하여 육경의 경전을 모두 익혀 통달을 하였다. 시속에 구애되지 않고 내게 배우기를 청하니 나는 옛 도를 행할 수 있음을 갸륵히 여겨 <사설>을 지어 그에게 주는 바이다.

 

 

 

 

 

 

 

 

 

 

 

 

 

 

 

 

 

 

미혹함을 풀어줘야 하는 자가 본분을 망각하고 오히려 미혹함에 빠져있으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산행 후 집에 돌아와 선대의 창의 격문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