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봉능선에서 브로켄의 요괴를 만나다(090731~02)
▣ 일 시 : 2009년 07월 31일(금) ~ 08월 03일(월)
▣ 대상산 : 지리 동부
▣ 인 원 : 8명(미산님, 공교수님, 소혼, 행인, 현태, 희근, 승균, 余)
▣ 코 스 : 새재교 - 조개골 - 하봉 - 영랑대 - 말봉 - 하봉옛길 - 마암 - 청이당 - 진주독바위 - 새봉 - 새재 - 새재마을
* 1일차(31일)
지리동부공정(智異東部恐征)이란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鐵(철)이 든지 7개월만에 지리산행을 나서니 함께하는 분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시간 여유가 있어서 단성 나들목으로 나가 입덕문을 지나 남명기념관에서 문화해설사<조종명>님에게 남명학맥도를 구하고(2,000원) 선생의 연보도 한 권 얻고 산천재도 한바퀴 둘러보았다. 노무현 대통령 종증조부 의병장 신암 노응규선생의 학맥이 남명 조식선생에게 어떻게 닿아있는지 알고 싶었다. 남명의 <偶吟>이 요즘 세인들에게 회자(膾炙)되고 있으니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다.
偶吟(우음)
南冥 曺植
人之愛正士 好虎皮相似
生則欲殺之 死後方稱美
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좋아하는 것은
호랑이 가죽을 좋아하는 것과 비슷하네.
살아있을 때에는 죽이려고 하다가
죽은 뒤에야 바야흐로 아름답다고 칭찬한다네.
신성모상 성모상
산천재를 나와 덕천서원에서 차를 잠시 멈추었다가 바로 성모상을 둘러보기 위해 중산리로 향했다. 처음 찾은 곳은 최근에 제작된 성모상인데 제단에 음식을 쌓아 놓고 기도하는 기도객이 있었다. 천왕사는 중산리 주차장 근처에 있었다. 천왕봉 성모사의 석상이 여기에 모셔진 연유는 정확하지 않다. 민간의 역사이기에 비록 석상이지만 천년이 넘는 세월 민초들의 삶을 지켜본 성모상을 친견하니 그 감회가 새롭다. 비가 떨어지는 비탈길을 내려와 조개골로 향했다. 밤 11시가 다 되어 미산님 일헹이 도착하시고 신예특급 <현태>가 가지고 온 소꼬리로 찜을 하여 술을 도우니 밝은 달빛 아래 밤이 깊어가는 줄 몰랐다...
꼬리곰탕
2일차(0801)
2년 만에 조개골 본류로 스며들었다. 어느해 겨울에는 곰발자국을 보았고 이상 기온으로 계곡이 얼지 않아 물에 빠진 일도 있으며, 동행한 <우보>아우가 스패츠가 없어 혼자 9시간 가까이 러셀을 한 기억도 있다.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 들으며 걸어도 간만의 산행이라 숨고르기가 쉽지 않고 땀이 멈추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철모삼거리 청이당 계곡의 합수부에서 조개골 본류로 내려가 欲川을 하였다.
浴 川
南冥 曺植
全身四十年前累 千斛淸淵洗盡休
塵土倘能生五內 直今刳腹付歸流
온몸에 40년 된 찌든 때를
천섬 맑은 물로 씻어버리네
혹시 오장에 티끌이 생긴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리...
* 위 시(詩)는 남명이 49세 때인 1549년 거창 감악산 아래 포연에서 삼가, 함양 등지 의 선비들과 목욕하면서 읊은 시이다.
조개골 본류를 건너 고도를 차츰 높여가지만 오늘의 일정이 짧기 때문에 시간을 느긋하게 운행하였다. 하봉 샘터에서 취수를 하고 능선에 올라가니 개스가 가득하고 시계가 희미했다. 하봉에 올라 영랑재를 바라보니 안개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사위를 구분할 수 없었다. 멀리 천둥이 울리고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다.
문득 인기척이 있어 바라보니 안면이 있는 <미소>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홀로 칠선계곡 대륙폭포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이야기하는 사이에 빗방울이 간간히 떨어진다. 서둘러 영랑대에 오르니 갑자기 운무가 몰려와 지척을 구분할 수 없다. 하봉샘터에서 취수를 하고 늦게 도착한 행인이 시간이 다소 지체되고 그래도 전화 연락이 되어 마음을 놓는다. 저녁을 먹고 몸이 몹시 피곤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宿古涅庵
점필재(佔畢齋)
病骨欲支撑 暫借蒲團宿
松濤沸明月 誤擬遊句曲
浮雲復何意 夜半閉巖谷
唯將正直心 倘得山靈錄
고열암(古涅庵)에서 묵다.
지친몸 지탱하려고,
포단 빌려 잠시 잠을 자는데.
소나무 물결 밝은 달빛 아래 들끓으니
구곡선경에서 노니는듯 착각하였네.
뜬구름(부귀영달)은 또한 무슨 뜻인가?
한밤중에 바위 골짜기 닫혀 있구나.
오직 올곧은 마음만 가진다면
혹시 산신령의 살핌을 얻으려나...
浮雲(부운) : 간신. 인생의 덧없음. 不義로 富貴榮達을 누림.
句曲(구곡) : 강소성(江蘇省)에 있는 산 양(梁) 나라 때 은사 도홍경(陶弘景)이 일찍이 벼슬을 버리고 이 산에 은거하였음. 己山 또는茅山(모산)이라고 함.
巖谷(암곡) ; 고열암
將 : 持也(가질장), 錄 : 省(살핌)也
* 현재 고열암에 있는 원문은 拂은 沸로, 閑는 閉로, 尙은 倘(혹시당)으로 정정해야합니다.
<미소>님
초암능선
* 3일차(0802)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와 같이 일기가 좋지 않았다. 일출에 대한 기대는 없지만 혹시하는 마음에 두 번이나 영랑대에 올라갔다가 붉게 떠오른 모습을 보았으나 그것도 잠시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하봉 옛길 삼거리 전망대에서 브로켄의 요괴를 보는 행운을 누렸다. '앗! 브로켄이다!'라는 외침에 모두가 시선은 초암능선을 향했다. 주능선은 아직도 운무로 가득하고 반야가 희미하게 모습을 얼핏 드러냈다가 제 모습을 감추었다.
마암
진주독바위
새재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미산>님 <공교수>님 <승균>이는 밤머리재로 출발하고 나머지는 차량회수를 위해 새재마을로 내려왔다. 먼저 하산한 팀은 새재교에서 땀을 씻고 밤머리재에서 <미산>님을 을 기다렸다가 하산주와 비빔국수를 먹고 8월초 일본북알프스로 떠나는 소혼과 행인에게 안전산행을 당부하고 9월에 만날 것을 기약했다.
* 4일차(0803)
아침 일찍 승균이의 출근을 위해 요기를 하고 대전을 향했다.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지역이 다르고 직업도 나이도 다른 이들이 만나 오랜시간 泊산행을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언제까지 동행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동안 함께한 시간과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서로에게 감사한 추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웅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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