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대둔산에 들다(090724~25)
▣ 일 시 : 2009년 07월 04일(토) ~ 07월 05일(일)
▣ 대상산 : 대둔산
▣ 인 원 : 홀로...
▣ 코 스 : 상수락 - 승전탑 - 선녀폭포 - 화랑폭포 - 330계단 - 마천대 - 낙조산장 - 허둔장군절터 - 상수락
초등학교 모임이 있어 대둔산을 향하는데 <미산>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어데고?' '날씨 관계로 남부능선을 포기하시고 내일 공교수님과 지리동부로 향한다'고 하시니 내 마음도 지리를 향한다.
허나 친구들이 모임을 금요일로 바꾼 것도 나를 위한 배려인데 산이 좋다한들 죽마고우들에게 등을 돌릴 수 있으랴!
望六之年이지만 서로 허물없는 사이이니 대화의 내용(?)은 거의 초등생 수준이요.
술을 마시고 밤샘 화투와 카드를 하기 위한 날이다.
나는 잡기에는 도통 소질이 없으니 안주나 굽고 술심부름(?) 하다가
12시가 넘어 평상 위에 쳐 놓은 텐트로 들어갔다.
손두부 들기름 부침
월성봉
아침에 일어나 먼저 식사를 하고 점심 때 내려온다는 말을 하고 길을 나서는데 월성봉에는 구름이 가득하다.
승전탑
승전탑에 올라가니 이곳을 관리하는 신재호씨가 인부들과 잡초를 뽑고 있었다.
대둔산 승전탑은 6·25전쟁 당시 대둔산 일대 공비토벌작전 중 공비 3412명을 사살하고
경찰관 및 애국청년단원 등 1376명이 전사한 것을 추모하기 위해
충남지방경찰청에서 86년 6월 약 3000평 규모, 승전탑 높이 20m, 청동군상, 충혼비, 휘호 석조물 108계단 등을 건립하였다...
월성봉
승전탑에서 월성봉을 한 번 더 올려다 보고 내려와 선녀폭포 전망대를 만드는 작업 현장에 접근하니
작업하는 분들이 '위험하다'며 제지하여 선녀폭포를 카메라에 담고 올라왔다.
화랑폭포에 다다르니 군지계곡은 '출입금지 영구통제' 팻말과 함께 쇠창살로 막혀있다.
멀리는 삼국시대 신라군의 선발대가 백제의 척후병들에게 사살당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는 왜병들이, 6.25 전쟁시 빨지산이 6년간이나 은신하였다가 사살되었던 계곡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군인들이 골짜기에서 많이 죽었다 하여 군지옥골이라 하였고 군지옥골을 군지계곡으로 부르고 있다.
군지계곡(070701)
선녀폭포 화랑폭포
330계단으로 능선에 오르니 전란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바닥에 와편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군지계곡을 오르는 길목을 막는 요새나 사찰의 흔적인 듯하다.
석천암능선
낙조대에 들러 유회장님과 인사를 하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허둔장군절터 계곡으로 내려선다.
사찰의 석축일 수도 있고 성의 흔적일 수도 있다.
삼국시대에는 라제의 격전지요.
통일신라시대에는 부흥운동 본거지,
임진왜란에는 호남의 최후 방어선이요.
동학농민전쟁 때에는 최후 23인이 항거하였고,
6.25동란에는 남부군 충남도당사령부가 있던 곳이니
역사적으로 학문적인 접근과 세심만 연구가 필요한 듯하다.
전란의 흔적들...
이 계곡을 막고 있는 가장 큰 바위이다.
승전탑에 내려오니 마침 승전탑을 관리하는 신재호씨가
풀을 뽑는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출발하려하여 염치 불구하고 화물칸에 올라탔다.
할머니는 이 마을 출신으로 6.25사변때 12살였다며
당시 빨지산들의 생활상을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다.
상수락에 내려오니 친구들이 '비를 맞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아래는 한 줄기 소나기가 지나간 듯 도로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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