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語別 <林悌>
十五越溪女 羞人無語別
歸來掩重門 泣向梨花月
말없이 헤어지며
열다섯 아리따운 아가씨/남부끄러워 말 못하고 헤어졌네.
돌아와 중문을 닫고서는/배꽃 사이 달을 보며 눈물 흘리네.
* 注
無語別(무어별) : 말없이 이별하다.
越溪女(월계녀) : 중국 월(越)나라에 미인이 많다는 고사를 이용하여 보통 '아름다운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임. 掩(엄) : 가리다, 닫다. 泣(읍) : 울다. 羞(수) : 부끄럽다.
* 이해&감상
임제는 송순, 정철과 더불어 풍류남아로 이름을 떨쳤던 사람이다. 그는 '수성지(愁城誌)'라는 소설도 남겼고, 독특한 풍격의 시조와 한시를 남겼다. 이 시에서는 어린 여성의 섬세한 감각으로 사랑하는 임과 헤어지고서도 부끄러워 이별의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을 남성의 입장에서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시에서 배꽃처럼 흰 달[梨花月(이화월)]은 작품의 배경이 되기도 하지만 작중 화자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기능을 지닌 소재이다. 달이란 소재는 회한을 담기에 좋아 시에서 이별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열다섯 월계녀는 새색씨로 2구에 나오는 겹문[重門(중문)]으로 보아 대가댁 규수이다. 여기에 나오는 인(人)은 시가댁과 주변 사람들일 것이다. 굴레와 격식에 갇힌 권위주의시대를 살고 있는 소녀는 이별의 한을 배꽃에 걸린 달을 바라보면서 눈물로 자아낸다. 예나 지금이나 별리의 한은 시에서 주요 소재가 되는가 보다.
* 임제(林悌, 1549-1587) : 호는 백호(白湖)·겸재(謙齋). 예조정랑(禮曹正郞) 겸 지제교(知製敎)를 지내다가 동서 양당(東西兩黨)의 싸움을 개탄하고 명산(名山)을 찾아다니며 여생을 마쳤다. 평양 감사로 제수되어 부임 도중 황진이의 무덤에서 하룻밤을 지새다 파직되는 등 호탕한 면모가 많은 인물로 전해진다. 저서에 <화사(花史)>, <수성지(愁城誌)>, <임백호집(林白湖集)>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