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盈科後進/한시모음

乍晴乍雨

도솔산인 2006. 9. 8. 23:04

 

乍晴乍雨

                                                                 金時習

 

 

乍晴乍雨雨還晴     잠깐 개었다 비 내리고 다시 개였다 비 내리니,

天道猶然況世情     하늘의 이치도 그러한데 하물며 세상인심이야

譽我便是還毁我     나를 높이는 듯 하더니 곧 도리어 나를 헐뜯고,

逃名却自爲求名     명예는 마다더니 도리어 공명을 구하는구나.

花開花謝春何管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 만,

雲去雲來山不爭     구름이 오고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질 않는다.

寄語世人須記認     세상 사람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두소!

取歡無處得平生     기쁨을 얻는다 하여도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김시습(1435~1493):생육신의 한 사람.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법호가 설잠(雪岑)이다. 서울 출생(성균관 근처)으로 3세에 이미 시를 지었고, 5세에 세종께 불리어 나갔을 정도로 신동으로 이름 높았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15세) 외가에 몸을 의탁하는 등 가정형편은 여의치를 못했다. 20세시(1454년)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 중 세조가 단종을 내몰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읽던 책을 불 태워버리고 출가하여 법명을 설잠(雪岑)이라 하고 그때부터 전국을 방랑하기 시작했다.

 

 세조9년(1453년) 효녕대군(孝寧大君:세종의 중형)의 권유로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佛經諺解)작업을 도와 내불당(內佛堂)에서 교정 일을 보았으나 세조11년(1456년) 다시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金鰲山室)을 짓고 입산 하였다. 금오산실에서 6~7년을 기거한 후 다시 상경하여 성동(城東)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내다. 성종12년(1481년)에 환속 안씨(安氏)를 아내로 맞이하였으나 2년 후 다시 서울을 떠나 전국을 방랑하며 지내다 10년 후 충남 부여 무량사(無量寺)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유,불(儒,佛)사상을 섭렵한 시대의 기린아로 탁월한 문장과 기벽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풍운아였다. 작품으로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金鰲神話)를 지었고, 시문집 산거백영(山居百詠)외 다수의 여행기가 있다. 과연 매월당 김시습 정도 되어야만 읊조릴 수 있는 시라 아니 할 수 없다. 달관의 경지에 들어선 매월당이 세상 갑남을녀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일체개고(一切皆苦)의 불가의 기초교리인 삼법인(三法印)을 이 계절 오락가락하는 장맛비에 맞추어 칠언 율시로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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