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동부 영랑대 송구영신 심설산행
▣ 일 시 : 2022년 12월 30일(금)~2023년 1월 1일(일)
▣ 코 스 : 광점동-어름터-일곱모랭이 능선-방장문-청이당-마암-영랑대(원점회귀)
▣ 인 원 : 4명
▣ 날 씨 : 맑음(-10도)
영랑대를 처음 접한 것은 2006년 6월이다. 새재마을에서 1박을 하고 이른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조개골로 들어갔다. 그때는 산사태가 나기 전이라 조개골은 이름 그대로 아침을 여는 골짜기 방태산 조경동(朝耕洞)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2007년 12월 29일 미산 선생님과 중봉에서 1박을 하고, 심설에 동부능선→청이당→새재로 내려와 폭설로 내려가지 못하고, 다음날 새재에 차를 두고 대전에 올라온 일이 있다. 그로부터 해마다 폭설과 혹한에 영랑대를 찾았다. 블로그에서 영랑대를 검색하니 무려 176회나 된다. 구 치밭목 산장이 없어지기 전에는 치밭목에서 하봉 헬기장으로 올라가 주로 영랑대와 세석에서 박을 하고 내려왔다. 지금 산행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치밭목이나 영랑대에서 만난 분들이다.
박산행의 묘미는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 산에 들어 숙식(宿食)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생존에 필요한 장비와 식량만 준비한다. 여벌 옷은 윈드 재킷과 상의 패딩 하나뿐이다. 핫팩도 아이젠도 스패츠도 쓰지 않는다. 그 흔한 우모 재킷도 우모 바지, 텐트 슈즈도 없다. 롤매트 한 장에 960g짜리 침낭이 전부이다. 내가 젤트 담당이니 되도록 개인장비는 생략한다. 장비와 산행 욕심을 내려놓고 배낭에 날개를 달면 가벼워진다. 이것이 박산행의 비결이다. 1박 2일 배낭 중량이 15kg대이다. 1박 추가에 1kg씩 늘어난다. 몇 년 전만 해도 영랑대에서 세석까지 진행했는데, 이제는 그럴 자신이 없다. 갈 수도 있지만 무리하지 않는다. 누구나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박산행은 춥고 배고프고 부족하고 불편함을 즐기는 것이다.
지리동부를 다니다가 어느 날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을 만났다. 영랑대에 오르면 김종직의 유두류 기행시 '숙고열암'의 "소나무 물결 달빛 아래 들끓는다. [松濤沸明月]"라는 시구가 생각난다. 영랑대는 바람소리가 파도소리로 들린다. 소나무 물결 달빛 아래 들끓는 영랑대를 상상해 보라. 영랑대에 100번 쯤 왔을 때 청이당터의 석축과 점필재가 쉬어간 계석이 보였다. 행랑굴의 의미도 그제야 이해했다. '백 번을 누여야 실은 하얗게 되고, 천 번을 갈아야 거울은 비로소 밝아진다. [百練絲能白 千磨鏡始明]'라는 퇴계 선생의 말씀이 떠오르더라. 2020년 2월 귀인을 만나 상류암에서 박여량의 초령 길과 김종직의 아홉 모랭이 길을 연결하였다. 선인들의 유람록 복원은 어느 한 사람이 올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랑대는 선인들의 유람록 복원 전진 캠프였다. 내가 영랑대에 오른 것만도 횟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1472년 김종직, 1588년 변사정, 1610년 박여량, 1611년 유몽인, 1867년 김영조, 1871년 배찬, 1877년 허유와 박치복, 1922년 권도용, 1924년 강계형 등이 영랑대를 경유했다. 유람록에 나오는 지명 하나하나를 고증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였다. 특히 선답하신 분들의 자료는 훌륭한 교재가 되었다. 함께 답사한 사람도 의견이 서로 다르다. 유람록 복원은 누구나 답사를 하고 수정과 보완의 의견을 낼 수가 있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세상에 나만 못한 사람은 없으니,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의견도 소중하다. 완성도 있는 유람록 복원을 위해서는 의사소통(疏通)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동안 함께했던 산우들과 2022년 12월 31일 영랑대에 올라 지나온 과정을 돌아보고, 계묘년 새해를 맞이하였다. 모든 산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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