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마애석각

천왕봉의 일월대(日月臺)와 천주(天柱) 석각 외

도솔산인 2021. 12. 13. 03:43

천왕봉의 일월대(日月臺)와 천주(天柱) 석각 외

 

 

1. 천왕봉의 일월대(日月臺) 석각

 

 

일월대(日月臺) 정태현서(鄭泰鉉書)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100번지(천왕봉)/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

행적자 : 정태현(鄭泰鉉, 1858~1919)  연대 : 조선 후기  석각 시기 : 1886년 (병술)

[개요]

선인들의 유람록에 일월대(日月臺)라는 명칭은 1643년 박장원의 유두류산기에 처음 등장한다. 1719년 유두류일록, 1724년 조구명의 유두류산기, 1724년 정식의 두류록에도 보이는데,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지리산 천왕봉 정상을 가리킨다. 일월대 석각은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에 '봉우리 남쪽은 일월대인데 오르면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까닭으로 이름을 지은 것이며 새로 새긴 대의 이름자는 크기가 팔뚝 만한데 정죽헌이 쓴 글씨이다.(峯之南日月臺上可望日月之出入故錫名而新刻臺名字書如腕大乃鄭竹軒所書也)'라고 기록하고 있다. 죽헌(竹軒)은 정태현(鄭泰鉉, 1858~1919)의 호이다.

 

정태현(鄭泰鉉)의 호는 죽헌(竹軒) 일두 정여창의 후손이다. 대한제국기 충북관찰사, 가선대부 등을 역임한 관료이다. 1905년 함양으로 낙향하여 도숭산(道崇山, 함양군 지곡면 덕암리) 남쪽에 숭산정사(崇山精舍)를 세우고 후진을 양성하였다. 마천면 가흥리에 1906년(光武 丙午)에 자연 암석에 새긴 승지정태현영세불망비(承㫖鄭泰鉉永世不忘碑)가 있다.

 

 

 

2. 승지정태현영세불망비(承㫖鄭泰鉉永世不忘碑)

 

승지정태현영세불망비(承㫖鄭泰鉉永世不忘碑)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1215번지

행적자 : 승지 정태현(鄭泰鉉, 1858~1919)  연대 : 한말과 일제강점기    석각시기 : 光武 丙午(광무 병오) 1906년

[개요] 

승지정태현영세불망비(承㫖鄭泰鉉永世不忘碑) 승지(비서원승) 정태현을 긴 세대 동안 잊지 않는 비. 光武 丙午(광무 병오, 1906년)에 새김. 밭 가운데 바위에 마애석각 비가 세 개 있는데 가운데 있는 비다. 좌우로 정근상시혜비(鄭近相施惠碑)와 정원상시혜비(鄭遠相施惠碑)가 있다. 새로 도로를 내면서 밭보다 높게 건설하였는데 산사태가 나서 밭이 매몰되어 비문이 땅속에 반쯤 파묻혔다. 정근상(鄭近相)과 정상(鄭○相)은 정태현(鄭泰鉉)의 후손로 추정되는데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由來功德 : 공덕을 쌓은 내력으로 말미암아

家頌戶吟 : 가가호호마다 칭송을 하는도다.

此山幷屹 : 이 두류산처럼 나란히 우뚝 솟아

觀海同深 : 바다를 보듯 깊어지는 것 같도다.

非徒介石 : 다만 지조가 바위같을 뿐만 아니니

宜以鏤金 : 마땅히 금석문을 아로새기노라.

猶難盡紀 : 오히려 다 기록하기 어려워서

印口銘心 : 입에 새기고 마음에 새기노라.

 

注 개석(介石) : 절개가 돌같이 단단하다는 뜻. 곧 굳게 절의를 지킴을 이르는 말. 을사보호조약(1905년)이 체결되자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함.

 

☞ 정태현 鄭泰鉉[1858년(철종 9)~1919년]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여칠(汝七).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현감(縣監) 정재범(鄭在範)이며, 어머니는 나주임씨(羅州林氏) 임병조(林炳祖)의 딸이다. 백부인 감역(監役) 정재행(鄭在行)에게 입양되었다. 1883년(고종 20) 천거로 동몽교관(童夢敎官)이 되고, 1886년 한성부주부(漢城府主簿)가 되었다. 1894년 동학난이 일어나자 두동(杜洞)으로 들어가 살면서 어려운 친척들에게 토지를 떼어주고 동리의 어려운 자들을 모두 도와주니 목비(木碑)와 석비(石碑)가 많이 세워졌다.

관찰사(觀察使)와 어사(御史)가 포계(褒啓)하였고, 이듬해 홍능(洪陵)의 역사에 감독으로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으며, 이듬해 진전감동관(眞殿監董官)에 임명되었으나 또 나가지 않았다. 1897년 이후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 비서원비서승(秘書院秘書承)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고, 1901년 충북관찰사(忠北觀察使)에 임명되었는데, 민영환(閔泳煥)은 국가가 좋은 사람을 등용했다고 정태현의 등용을 기뻐했다.

취임 후 선정(善政)을 베풀어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으며,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모방하고 이이(李珥)의 규례(規例)를 참작하여 도향약(道鄕約)을 만들었는데 얼마 안되어 면소(面所)에까지 시행되었다. 백성들은 생사당(生祠堂)을 세우려 하였고, 임금은 그의 공평정대하고 용왕매진(勇往邁進)하는 것을 크게 칭찬했다.

 

1905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뒤에 벼슬에서 물러나 도숭산(道崇山) 남쪽에 숭산정사(崇山精舍)를 세우고 책을 구입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정태현이 죽은 후 유림들에 의해 향교장(鄕校葬)을 거행했으며 숭양정(崇陽亭)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죽헌집(竹軒集)』 3책이 있다. [출처] 다음백과

 

 

3. 천왕봉의 천주(天柱) 석각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100번지(천왕봉)/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

행적자 : 미상   연대 : 미상    석각시기 : 미상

[개요]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처럼 우뚝하게 솟아 있다는 의미이다. 와황석(媧皇石)이라고도 한다. 와황(媧皇)은 상고 시대 제왕(帝王)인 여와씨(女媧氏)를 가리키는데, 일찍이 공공씨(共工氏)가 축융(祝融)과 싸우다 부러뜨린 천주(天柱)를 “여와씨가 오색의 돌을 구워 보수하고 자라의 발을 잘라 사방을 지탱할 기둥으로 세웠다.〔女媧氏 鍊五色石以補蒼天 斷鰲足以立四極〕”라고 한다. 《淮南子 卷6 覽冥訓》 중국의 오악(五岳)인 형산(衡山)에 천주봉이 있다. 한유(韓愈)의 謁衡嶽廟宿樓(형악묘에 배알하고 드디어 형산의 절에서 묵으며 문루에 제하다.) 시에 "자개봉은 길게 뻗어 천주봉에 닿았고, 석름봉은 솟아올라 축륭봉을 쌓았다네.(紫蓋連延接天柱 石廩騰擲堆祝融)"라는 시구에 천주(天柱)가 있다. 김종직은 1472년 8월 14일 천왕봉에서 한가위 달맞이를 천주(천왕봉)의 즐거운 놀이(勝遊天柱)로 표현하고 있다.

 

 

中秋天王峯不見月[중추절에 천왕봉에서 달을 보지 못하다.]

 

                               金宗直(김종직)

 

抽身簿領陟崔嵬 : 공무에서 잠시 벗어나 높은 산에 올랐는데

剛被良辰造物猜 : 좋은 날 조물주 강한 새암을 받는구나.

霧漲寰區八紘海 : 운무는 천지에 넘쳐서 팔방(팔굉)이 바다이고

風掀巖石萬搥雷 : 바람이 바위에 몰아쳐 뇌성벽력을 치네.

勝遊天柱知難繼 : 천왕봉 달맞이 놀이(승유) 계속되기 어려워

淸夢瓊臺未擬回 : 경대의 맑은 꿈 다시 함을 헤아리지 못하겠네.

時有頑雲暫成罅 : 때때로 무지막지한 구름 잠시 틈을 만들지만

誰能取月滿懷來 : 누가 보름달을 취해 가슴에 품고 올 수 있으리.

 

 

注 簿領 장부부, 기록할령. 장부에 기록함, 공무. 寰 : 기내환, 천하환, 하늘아래, 인간세상 천하 세계 寰區 : 천하 천지 八紘 : 팔굉 넑은굉 팔방 천지, 掀 :치켜들흔 높은모양, 흔 掀轟 : 바람이 몰아치는 굉음, 搥 : 칠추, 던질퇴 萬 : 클만. 瓊臺 천태산(天台山)의 서북쪽에 위치한 산봉우리의 이름. 擬 : 헤아릴의 비길의, 본뜰의, 향할의. 의심할의. 頑雲 : 흉악한 구름. 무지막지한구름 罅 : 틈하

 

 

4. 鄭近相施惠不忘碑(정근상시혜불망비)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1215번지

행적자 : 정근상(鄭近相, 1893∼1934)   연대 : 미상  석각시기 : 미상

[개요] 

鄭近相 施惠碑(정근상 시혜비) : 정근상이 은혜를 베푼 비. 비석이 반쯤 묻혀있음. 마천파출소에서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500m 정도 동쪽 길로 가면 길 왼쪽 밭에 있는 바위에 있다. 밭 가운데 바위에 세 비가 있는데 오른쪽에 있는 비다. 정근상(鄭近相, 1893∼1934)은 문헌공의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16대 종손이다. 초명 욱상(旭相), 자 원교(元僑), 호 묵헌(默軒), 기미(己未, 1919) 배경효전(拜景孝殿) 참봉(參奉)을 지냈다. 정여창 선생의 묘소에 있는 신도비가 풍화로 마모가 되자 1926년(丙寅) 7월 문헌공일두정선생신도비를 세움.  

 

☞ 景孝殿 : 명성 황후(明成皇后) 신위(神位) 모시던 혼전(魂殿). 1895년 덕수궁 안에 설치되어 있음.

 

 

 

5. 鄭遠相施惠碑(정원상시혜비)

 

 

 

 

소재지 :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1215번지

행적자 : 정○상(鄭○相)  연대 :  미상   석각시기 : 미상

[개요] 

鄭○相 施惠碑(정원상 시혜비) : 정원상이 은혜를 베푼 비.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1215번지에 마애비가 있다. 마천파출소에서 60번 지방도로를 따라 500m 정도 동쪽 길로 가면 길 왼쪽 밭에 있는 바위에 있다. 밭 가운데 바위에 세 비가 있는데 왼쪽에 있는 碑다. 새로 도로를 밭보다 높게 해서 비가 땅에 좀 파묻혔다. 성명 가운데 글자가 마모되어 판독이 어렵다. 후손들이 죽헌 정태현의 장손자로 정은상(鄭殷相, 1896~1957)으로 추정함.(하동정씨 종회장 정천상님)

 

☞ 정은상(鄭殷相, 1896~1957) : 字 윤약(允若), 신유(辛酉, 1921) 배경효전(拜景孝殿) 참봉(參奉)

 

 

 

6. 觀察鄭泰鉉永世不忘碑(관찰정태현영세불망비)

 

1844년 → 1904년

 

소재지 :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상림공원

행적자 : 정태현(鄭泰鉉, 1858~1919)  연대 :  대한제국   석각시기 : 1904년 4월

[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