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남두육성이 조림한 삼정산을 찾아서(210614~15)

도솔산인 2021. 6. 16. 15:40

남두육성이 조림한 삼정산을 찾아서(210614~15)

 

 

▣ 일 시 : 2021년 06월 14일(월)~13(화)

▣ 코 스 : 영원사-빗기재-상무주암-삼정산-문수암-삼불사-도마마을

▣ 인 원 : 3명[무아정(無我亭) 삼봉(三峯) 선생, 문회장님]

▣ 날 씨 : 흐리고 비

 

 

함양군 마천면 의탄리 금계동(金鷄洞)에서 내려다 보이는 새별들의 덤바우에 은계(隱溪) 이진우(李璡雨, 1897~1954) 선생의 '덕암(德巖, 덤바우)' 각자(刻字) 명문이 있다. 이 덕암(德巖) 위에 15개~20개 정도의 성혈이 있는데, 마천면에는 칠성동, 추성동, 새별들, 금계동, 천진(天津)폭포, 성교대(星橋臺), 금마대(金馬坮) 등 별과 관련된 지명들이 많다. 삼송(三松) 공의 와유강산에 '碧松寺를 지낸後에 七星洞을 살펴보니 北斗楸城 照臨이라.'라는 내용이 나온다. 현재 추성동의 추성(楸城)은 시계 바늘의 중심인 추성(樞星)에서 온 지명인 듯하다. 새별들의 유래는 '샛별이 조림하는 들'이라는 의미로 이해가 된다. 금계동(金鷄洞) 또한 탄수(灘叟) 이종식(李鐘植, 1871~1945) 선생이 금마대(金馬坮) 아래 계명성(鷄鳴星)이 조림하는 곳에서 이름을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성혈의 별자리는 북두칠성, 남두육성, 하고성(河鼓星)으로 밝혀졌고, 두 개의 별자리는 아직 확인하지 못하였다. 성혈의 별자리에 대한 자료는 순천산님께 받았다. 

 

 

德巖 李璡雨/李輔雨
성혈

 

풍수지리학의 대가 故 서강(瑞崗) 양상화(楊相化) 선생은 「천왕봉의 동북쪽만 역수국(逆水局)으로, 경남 함양군 마천면은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하는 국세(局勢)이다. 역수국(逆水局)의 대혈(大穴)이 있는 곳이다. 방장산의 자미원이 이곳에 있는 것으로 본다. 풍수지리학에서 땅에서 형성되는 혈만을 말하고 있으나, 禮記 云 '지재만물(地載萬物) 천수상(天垂象)이라.'고 하였으니 하늘에 있는 형상이 땅에 그대로 실려있기에 천문을 모르고 지리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금계동에서 추성동으로 들어가는 의탄의 지리산 제1교에서 삼정산 능선을 바라보면 6봉이 나란한 일자문성(一字文星)의 형국을 이룬다. 나는 '하늘의 남두육성이 삼정산 능선에 그대로 실려있다.'고 생각하고 삼정산과 상무주암 답사에 나섰다.

 

 

 

上無住庵 - 임응택(林應澤, 1879~1951)

 

無住高庵住碧空 : 머무를 곳 없는 높은 암자가 벽공에 머물러
鐘聲只在白雲中 : 쇠북 소리가 다만 흰 구름 가운데에 있구나.
是非不入烟霞界 : 옳고 그름이 연하 선계에 들지 아니하니
掃却塵情立晩風 : 속된 마음 쓸어내고 저녁 바람에 서 있구나.

 

 

임응택(林應澤, 1879~1951) 선생은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삼송(三松) 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마천 의중마을에 살았던 인물이다. 삼송(三松) 공은 종구품(從九品) 선릉 참봉(宣陵參奉) 벼슬을 지냈다. 좌승지겸 경연청 참찬관과 오위도총관 부사간을 지낸 임종달(林鍾達, 1843~1886)의 셋째 아들로 와유강산(臥遊江山)을 남겼다. 와유강산은 지리산 10勝地와 9奇, 18景을 읊은 3(4).4조의 4음보 가사체 형식이다. '上無住庵'은 와유강산에 실려있는 칠언절구이다. 마천 읍내 당흥 부락 김수태(1929생) 어르신(금년 93세)이 17세(해방 전후)에 펜으로 필사한 와유강산(臥遊江山) 성책 1권이 전한다. 1990년대 초반 함양 서복연구회 문호성 회장님이 발굴하여 마천 향토지(1994년 8월 27일 발간)에 소개하였다.

 

 

 

영원사

 

영원사(靈源寺)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신라의 고승 영원조사(靈源祖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이 절에 있었던 대표적인 고승으로는 영관(靈觀)을 비롯하여 서산대사(西山大師)가 12년을 수도하였고, 청매(靑梅)·사명(四溟)·지안(志安)·상언(常彦)·포광(包光) 등 당대의 고승 109명이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는 기록이 『조실안록(祖室安錄)』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순반란사건 때 완전히 소실된 뒤 1971년에 중건되어 현재에는 인법당만이 있다. 문화재로는 영암당탑(靈巖堂塔)·설파당탑(雪坡堂塔)·중봉당탑(中峰堂塔)·청계당탑(淸溪堂塔)·벽허당탑(碧虛堂塔)·청매탑(靑梅塔) 등 부도 6기가 있다.(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매선사 승탑

☞ 인오(印悟) : 자는 묵계(默契), 호는 청매(靑梅). 자세한 생애는 전하지 않으나 지리산 연곡사(鷰谷寺)에 있으면서, 임진왜란 때 구국과 불교중흥에 심혈을 기울였던 고승으로서, 뛰어난 문장가이며, 휴정(休靜) 문하에 두각을 드러냈던 선사이다. 어릴 때 출가하여 유정(惟政)과 함께 휴정의 문하에서 선지(禪旨)를 전해 받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31세에 묘향산에서 휴정과 함께 수도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휴정의 뜻에 따라 의승장(義僧將)이 되어 승병을 거느리고 3년 동안 왜적과 싸워 크게 공을 세웠다.

 

그 뒤 전국을 행각수도(行脚修道)하였으며, 말년에 부안의 변산 아차봉(丫嵯峯) 기슭에 월명암(月明庵)을 짓고 수도하다가 지리산연곡사로 들어갔다. 1617년(광해군 9)에는 왕명을 받아 정심(正心)·지엄(智嚴)·영관(靈觀)·휴정·선수(善修) 등 5대 종사의 영정을 그려 조사당에 모시고 제문을 지어 봉사하였다. 76세로 입적하자 제자들이 천왕봉(天王峯) 밑에 영당(影堂)을 짓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그는 청매파(靑梅派)를 개설하여 조선 중기 이후의 선종(禪宗)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법을 이은 제자로는 쌍운(雙運)이 있다. 저서로는 『청매집』 2권이 있다.<출처 : 다음 백과>

 

 

삼봉(三峯) 백도사님
회암당 승탑 I
회암당 승탑 II
고려 말의 고승 각운(覺雲)의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 I

상무주암(上無住庵)은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약간의 수행승들과 함께 창건함. 지눌 스님이 800여 년 전 길 없는 산길을 걷고 또 걸어 토굴을 만들어 수도 정진 한 곳이 이곳 상무주다. '더 이상 머무를 곳이 없다.'라는 상무주암... 지눌 스님의 제자 혜심(慧諶)이 ‘선문염송(禪門拈頌)’을 쓰고 혜심의 제자 각운이 스승이 쓴 책에 주석을 붙여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라는 책을 썼는데, 다 집필하고 나니 기이하게도 붓통 속에서 사리가 떨어져 봉안한 탑이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이라는 것이다.

 

☞ 각운(覺雲) : 생몰년 미상 임제종 보우의 법통을 이어 남원 만행산 승련사에 있으면서, 〈전등록 傳燈錄〉(과거 7불로부터 5家 52世에 이르기까지 전등한 법계의 차례를 기록한 책)을 깊이 연구했다. 본관은 남원. 속성은 유(柳)씨이며, 호는 구곡(龜谷)이다. 아버지는 의관이다. 학덕이 높고 필법이 뛰어나 공민왕이 그의 도행을 존경하여 〈달마절로도강도 達磨折蘆渡江圖〉·〈보현육아백상도 普賢六牙白象圖〉 등 직접 그린 그림과 '구곡각운'이라는 친필을 주었으며,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숭신진승 근수지도 도대선사(大曹溪宗師 禪敎都摠攝 崇信眞乘 勤修至道 都大禪師)라는 법호를 내렸다.<출처 : 다음 백과>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 II
필단사리탑(筆端舍利塔) III
無住庵築坮施主 佛紀 二九五一年 甲子(1924년) 三月 日
문수암
삼불사

위 내용은 저의 주관적인 생각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