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实踐人文

방장산 자미원의 지형상을 찾아서(서강 양상화)

도솔산인 2020. 12. 9. 11:44

방장산 자미원의 지형상을 찾아서(서강 양상화)

 

 

얼마전 탄수공의 손자 李相○ 님이 학교로 찾아와 죽포 이규현(李圭玹, 1848~1935)공의 회갑연에 지은 갑운(甲韻 : 회갑연에 읊은 축시, 1908년 10월 29일) 成冊 1권과 몇가지 서류를 주고 갔다. 죽포 이규현 공은 한말 병조참의를 지낸 분으로 면암 최익현 선생의 동맹록에도 그 이름이 실려 있다. 내가 확인하고 싶은 것은 정미 의병장 석상용장군 가문과의 혼맥과 탄수공 비결명문 논집의 원본이다. 내가 필요한 자료는 없고 풍수 연구가 서강 양상화 선생의 '방장산 답사기'가 있어 블로그에 옮겼다. 갑운을 읽어보니 탄수공과 삼송공은 내외종간으로 삼송공의 외삼촌이 죽포공이다.

 

 

백두대간의 끝자락 방장산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동서로 갈라놓은 산맥으로 천왕봉의 동북쪽만 역수국(逆水局)으로 경남 함양군 마천면이며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하는 국세(局勢)이다. 순수국(順水局)보다는 역수국(逆水局)의 대혈(大穴)이 있는 곳이다. 방장산의 자미원이 이곳에 있는 것으로 보고 답사하고자 하였다, 하늘에는 사원상이 있어 첫째가 자마원이요. 둘째는 천시원, 셋째가 태미원 그리고 소미원으로 네 개의 별 군단이 있어 그 형상이 지형으로 땅에도 이룩되었다. 풍수지리학에서 땅에서 형성되는 혈만을 말하고 있으나, 천수상(天垂象) 지재상(地載象)이라고 하늘에 있는 형상이 땅에 그대로 있기에 옛날부터 천문을 모르고 지리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풍수에서 쓰고 있는 용어부터가 하늘의 별자리인 것이다.

 

백두대간의 끝자락 방장산에 자미원의 형상이 형성되어 있다. 함양읍과 마천면의 경계지점에 솟아있는 산이 삼봉산(1196,7m)으로 이곳에 술건신태(戌乾辛兌)에서 간인 감묘로 백환하여 다시 건해 임감으로 전환하여 내려오다가 솟아오른 산이 백운산(902.7m)으로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루고 삼정산으로 이어진다. 백운산에서 건해 임감으로 솟은 산이 금태산(852m)이다. 이산의 좌측에 안국사가 있고 바로 밑으로 금태암(金台庵)이 자리하고 있으나 금대암(金坮庵) 표기되어 있다. 돈대대(坮)자가 아니라 별태(台) 자가 옳은 것이다. 그것은 흰구름 아래 금별이라는 말이다. 하늘에 자미원 군단의 제일 중요한 별이 천황성(天皇星)으로 해방(亥方)에 있다. 자방(子方)에 북진(北辰)이고 건방(乾方)에 대제성이 있으며 이와 같은 삼태성을 보좌하는 두 별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땅에는 천지인(天地人) 삼성(三星)으로 지형상 형성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손방(巽方)에 태양이 있고 사방에 삼공과 재상성이 있으며 그 앞에는 칠성이 나열되어 자미군단을 이루고 많은 별들이 전후좌우를 옹위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곳 금태산(金台山) 아래 천황성 대제성 그리고 북극성의 지형상이 천지인 혈로 정확하게 형성되어 있다.

 

필자 외 6인이 금태산에 올랐다. 방장산 재상봉이 분명하며 손방에 루대봉(?) 정상에 태양이 분명하며 칠선계곡에 나열된 칠성의 아름다움은 환성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지형상을 바라보면서 북극성 천황성을 확인하고 대제성 자리에 도착하였더니 정확하게 제혈되지는 못했으나 이미 경주 이 씨가 점유하고 있었다. 주인은 이종식이고 그 아들은 이윤우와 그 배위였다. 확인하여 보니 이종식은 국권이 상실되었던 시기에 이곳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가 왜인들에게 고통을 받아 견디지 못하여 금대암에 승적을 두고 많은 공부를 하였다. 돌아가시기 전에이 곳에 치표를 하여두었으나 후손들이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집안에 지리를 공부하신 분의 지시에 따라서 이종식의 배위분이 제일 먼저 돌아가셨기에 제일 위쪽에, 이종식은 그 앞쪽에 모시고 각기 묘비를 세워놓았다. 아들 이윤우 씨가 마천을 떠나서 전라북도로 이거 하였는데 아버지의 유언이 임천 강변으로 큰 길이 나면 서쪽으로 떠나라고 하였기에 마천면 금계를 떠나 전주 근교로 이거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손자들이 훌륭하게 되어 미국에서 변호사, 또는 대기업 사장들이 많다고 들었으나 확인하지는 못하였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이종식 씨의 지시대로 점혈 되었다면 그 손자들 중에 이미 재상이 나왔어야 된다고 보아진다. 오호라! 현대 과학이 극치에 달한 현실 속에서 '유골이 무슨 능력이 있다고 하느냐?'라고 할 것이다. 연(然)이나 만유인력의 법칙 아래 동질 감응하는 법칙을 부정할 과학적 근거가 어디에 있으며 자연의 신비를 단언할 수 있는 근거는 더욱 확인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과학인 천지인의 신비를 어찌 논할 수 있겠는가? 이를 해결할 수 없기에 종교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는 혼돈 속에 빠져있는 것이다. 여하간 마천의 대제성 신비를 알아보고 싶으나 개인의 사생활의 침해가 될까 염려되어 더 이상 논하지 못하고 선현들께서 말씀하셨던 자미원의 지형상 도를 첨부하면서 필을 접는다,

 

서강 양상화 씀

 

자미원 지형상도

자미원 지형상도

注 양상화(楊相化, 1931~2019) 본관은 남원 호는 서강(瑞崗) 인계면 도룡리 정산마을에서 출생. 순창농림고(현재 순창중ㆍ제일고) . 1950년 풍산초등학교 교사를 시작해 이듬해는 구림국민학교에 재직하다 뜻한 바 있어 교직을 그만둠. 40년 가까이 동양철학(풍수지리, 역학, 오운육기학, 중국소림사기공비법)에 심취. 우주 변화 원리학의 대가인 한동석 박사와 오운육기학을 연구한 백남철 박사로부터 학습하고, 중국 이남석 박사로부터 중국 소림사기공비법을 사사받음.

 

1990, 옥천향토문화연구소 상임이사를 맡아 순창의 지리와 전설 등을 수집하기 시작함. 1996년 여름, “잊혀져가는 향토사를 정리하자고 제안하며 정년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과 지역에서 젊은 날을 보냈던 사람들이 뜻을 모아 향지사를 설립함.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접전지였던 까닭에 순창 문화유산 대부분은 훼손됐고 복원되지도, 제대로 정리되지도 못한 실정에서 첫 사업으로 지역의 옛 지명들을 모으고 지명에 얽힌 옛이야기들을 정리 작업을 시작함. 1998830, 1020여쪽 방대한 분량인 순창향지(지명고)로를 편찬함.

 

2000년에는 <전북도민일보>순창의병사를 중심으로 8회에 걸쳐 연재했고, 2004<전주일보>재미있는 풍수이야기60여회 연재하며 전주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로 초빙돼 풍수지리 강의함. 2016년부터 2년 동안 <전북매일>호남정맥의 영지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순창지역 마을을 중심으로 80여회 연재함. 이외에도 저서 한국의 지기를 찾아서원시반본과 후천의 성지 형상으로 보는 풍수등을 발간해 순창인의 자긍심을 내세움.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함.

 

☞ 북두칠성 삼태성 자미원 (천황성 문창성) 견우.직녀성 : blog.daum.net/069114/117755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