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实踐人文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묘정암은 어디인가?

도솔산인 2020. 11. 30. 22:29

1472년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나오는 묘정암(묘정사)은 어디인가?

 

묘정암에 대한 기록은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2회 등장한다. 지난 일요일 조박사님에게 카톡으로 사진 몇 장 날아왔다. 의중 마을과 금계동에 살았던 '탄수 이종식(李鐘植, 1871~1945) 선생의 비결문 명문 논집'에 상내봉(향로봉)에 관한 이런 기록이 있다. '晨明早日霜老峯 : 동이 트면 해가 일찍 뜨는 상로봉은 陽色眺會避難處 : 양기가 빠르게 모여드는 피난처네' 이재구 선생은 향로봉(상내봉)에 대하여 행로봉이 셋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지만, 어느 정도 결론이 난 듯하다. 얼마전 조박사님과 향로봉 동쪽의 등고선과 항공 사진을 보고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점필재의 아홉 모랭이 길과 감수재의 초령길, 어우당의 유몽인길, 일제강점기의 강계형과 권도용 길까지 함께 찾아낸 분이다. 카톡의 내용은 '묘정암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선열암으로 길이 있다.'라는 것이다. 묘정암 추정터에서 베틀재까지 길도 연결된다고 한다. 섬세하게 유두류록 묘정암 해당 부분 내용까지 캡춰되어 날아왔다. 함께 보내온 독녀암 사진은 나를 놀라게 하였다. 영락(零落)없는 여인의 형상이다. 묘정암 승려 법종이 본 독녀암을 458년 만에 다시 확인한 것이다.

 

'晨明早日霜老峯 : 동이 트면 해가 일찍 뜨는 상로봉은 陽色眺會避難處 : 양기가 빠르게 모여드는 피난처네'(탄수공 비결명문)

 

 

묘정암 지도(산영님)
묘정암 추정터(오른쪽 자위 위에 와편도 보이고 왼쪽 바위 아래 샘이 있다고 한다.)
상대날등에서 바라 본 독녀암
독녀암은 여인의 형상에서 유래했다. 함양독바위라고 아무리 우겨도 독녀암이다.

 

※ 유두류록에 나오는 묘정암과 독녀암

 

1. 묘정암에 대한 기록

 

그 곁에 돌이 많은 비탈길이 있어, 등덩굴藤蔓한 가닥을 나무에 매어 놓고 그것을 부여잡고 오르내려서 묘정암(妙貞菴)과 지장사(地藏寺)를 왕래하였다.

 

해공은 군자사로 가고, 법종은 묘정사(妙貞寺)로 가고, 조태허, 유극기, 한백원은 용유담(龍游潭)으로 유람하러 가고, 나는 등구재(登龜岾)를 넘어 바로 군재(郡齋)로 돌아왔다.

 

 

2. 독녀암에 대한 기록

 

암자의 동북쪽에는 독녀(獨女)라는 바위 다섯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높이가 모두 천여 자나 되었다. 법종이 말하기를, “들으니, 한 부인(婦人)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아 놓고 홀로 그 안에 거처하면서 도(道)를 연마하여 하늘로 날아올라갔으므로 독녀라 호칭한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는데, 그 쌓아놓은 돌이 아직도 남아 있다. 바위 중턱에 잣나무가 서 있는데, 그 바위를 올라가려면 나무를 건너가서 그 잣나무를 끌어 잡고 바위틈을 돌아 등과 배가 바위에 부딪힌 다음에야 그 꼭대기에 오를 수 있다. 그러니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었는데, 종리(從吏) 옥곤(玉崑)과 용산(聳山)은 능숙하게 올라가 발로 뛰면서 손을 휘저었다. 내가 일찍이 산음(山陰)을 왕래하면서 이 바위를 바라보니, 여러 봉우리들과 다투어 나와서 마치 하늘을 괴고 있는 듯했다. 지금 내 몸이 직접 이 땅을 밟아보니, 모골이 송연하여 정신이 멍하고 내가 아닌가 의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