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강계형의 사립재에서 통천문 길을 잇다(200530~31)
▣ 일 시 : 2020년 05월 30일(토)~ 31일(일)
▣ 코 스 : 새재-상류암터-옹암-통천문에서 사립재 길-두리의 폐사-집터-통천문-옹암
옹암-통천문-강계형 길-다섯 모롱이 능선-집터-통천문-옹암-상류암터-새재
▣ 인 원 : 2명(산영 조박사님), 새벽 01:00 박지 합류(狂狂子 銷魂님, 백곰님)
▣ 날 씨 : 첫날 맑음, 둘째 날 흐림
지난 5월 16일 지리산 역사문화 조사단에서 방장문 석각의 발견으로, 또 다른 의문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유몽인의 석문과, 권도용의 금강문과 강계형의 통천문은 새로 발견한 방장문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1611년 유몽인의 석문은 옹암을 언급했기 때문에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래서 이번 산행은 1924년 8월 18일 강계형이 사립재에서 통천문으로 올라온 길부터 확인하기로 하였다. 상류암 터에서 독바위로 올라가 인근 비트에 배낭을 데포시키고 답사에 나섰다.
위아래 석문(통천문)을 지나 비탈을 조금 내려서자, 사면 길이 눈에 들어왔다.(길은 돌이 깔려있고 고도 차이가 없으며, 반드시 이정표 나무와 바위가 있음) 조금 진행하면 상류암 터에서 올라와 집터로 내려가는 사거리를 만난다. 같은 고도에서 사립재 방향으로 희미하게 길이 열려있다. 사면 길은 숯가마터에서 숯가마터로 계속 이어진다. 길을 진행하며 곰샘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사면 길을 다 지나서 새봉에서 내려온 지능선을 따라 계곡에 내려서면 계류가 흐른다. 계속 진행하면 사립재에서 시작하는 첫 모랭이 길을 만난다. 생각보다 손쉽게 통천문에서 사립재골로 내려서서, 강계형(心淵 姜桂馨 1875-1936) 선생의 벗 치조의 집터(?)까지 연결한 것이다.
다시 동부(洞府)에서 구롱 길로 네 모랭이 양달 쪽 능선을 따라 두리의 폐사를 향했다. 1922년 권도용의 방장산부에 나오는 두리의 폐사에서 구롱 길의 집터로 길을 연결하였다. 권도용은 1922년 4월 17일 벽송사를 출발하여 어름터를 지나 사립재골로 진입, 두리의 폐사와 이 집터를 경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유몽인은 1611년 4월 4일 두류암을 출발하여 집터에서 옹암 방향 석문으로 올라갔다. 이곳 구롱 길의 집터는 조개골과 마천을 넘어 다니는 4거리에 있다. 집터 뒤 흙길을 따라 석문과 통천문으로 바로 올라가는 갈림길인 셈이다. 산길이 직접 석문과 통천문으로 나있는 것으로 미루어 두 석문은 지리산을 유람하는 이들에게 명소였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날이 흐리더니, 종일 해가 구름 속에서 오락가락하였다. 통천문에서 사립재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다섯 모롱이 능선으로 내려서서 거대한 바위 두 곳을 살펴보고 집터로 내려왔다. 집터에서 왼쪽 뒤로 옛길의 흔적을 좇아 오르는데, 계속 곰 비린내가 진동한다. 여기에서도 길은 숯가마터에서 숯가마터로 이어진다. 너덜을 밟지 않고 부드러운 길을 좇아 마지막 숯가마터를 넘어서면 석문 아래 샘터(?)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석문은 바로 지척에 있다. 나는 유몽인이 이길로 집터에서 석문으로 올라가 옹암을 지나간 것으로 추정한다. 석문으로 바로 올라가 유몽인처럼 옹암을 하이 패스(輕輕擦過 : 가볍게 스쳐 지나감)하고, 상류암터에서 새재로 내려왔다. 끝.
☞ 사족 :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정리한 내용으로 여과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오류가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 참고자료 : 선인들의 유람록에 나오는 석문과 금강문과 통천문
1. 1611년 유몽인의 기행시와 두류산록
明朝我向石門去 : 내일 아침 나는 석문으로 떠날 것이고/師在頭流雲水間 : 선사는 두류산 구름과 계곡 사이에 머물겠지요.
○ 癸酉. 侵晨而行掠甕巖. 入淸夷堂 : 4월 4일 계유일. 새벽에 길을 떠나 옹암(甕巖)을 지나 청이당(淸夷堂)에 들어갔다.
☞ 掠은 중국 漢漢字典에 '輕輕擦過'로 되어 있는데, '가볍게 스쳐 지나가다'라는 뜻. 석문으로 올라와서 옹암을 가까이에서 보고 지나간 것으로 이해함.
2. 1922년 권도용의 방장산부(이재구 선생 譯)
두리(杜里)의 폐사(廢寺)를 지나니 양쪽의 바위가 서로 붙어 있는 곳이 있어 무엇이라 부르는지 물었더니 금강문(金剛門)이라고 하였다. 이 또한 승려들이 보이는 대로 갖다 붙인 말이다. 過杜里之廢寺 有兩巖之交粘問奚名則曰金剛門亦禪師之權辭以拈眡
[1922.4.16 함양 출발-지안재‧오도재-벽송사(1박)-두리(폐사지)-마암(부근 1박)-천왕봉 일출-백무동(1박)-고정(1박)]
☞ 권도용의 동선을 벽송사-어름터-두리의 폐사-집터-여섯 모롱이-일곱 모롱이-여덟 모롱이-방장문-아홉 모롱이(쑥밭재)-천례탕(청이당)으로 보면, 방장문이 금강문일 가능성이 있으나 확정하기는 어렵다.
3. 1924년 강계형의 두류록(이재구 선생 譯)
드디어 차례로 서서 나아가 겨우 장구목[缶項부항]에 도착하니 갈증이 나고 침이 말랐다. 곧이어 사립재[扉峴비현]에 당도하여 벗 치조를 방문했더니 아이가 말하기를 조금 있으면 돌아올 거라 했지만 일행에게 뒤쳐질까 봐 힘써 길을 올랐다. 아래위의 석문을 지났다. 문의 양쪽은 모두 바위이고 가운데로 한 줄기 좁은 길이 통하였다. 바위의 모양은 위가 붙어있고 가운데가 비어 십 여인을 수용할 수 있으며 흰 글씨로 통천문(通天門) 세 글자가 석면에 쓰여 있었다. 遂序立前進纔到缶項而喉渴無涎矣迤到扉峴訪友致祚則兒言少選當返而恐其失伴努力登途過上下石門門之兩傍皆石而中通一逕巖形上合而中虛可容十餘人以白書通天門三字於石面
〔1924.8.16 오후 문정동 출발-세동(1박)-마적동-송대(1박)-마당바위-장구목-사립재-통천문-쑥밭재-천례탕-마암당-하봉-중봉-천왕봉(1박)〕
☞ 강계형은 송대를 출발하여 장구목에서 미타봉 능선을 따르다가 사립재 골-사립재(벗 치조의 집)-통천문으로 올라감. 이번에 사립재에서 통천문으로 직접 올라가는 길을 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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