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崇祖惇宗/독립운동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 2차 방문(180727)

도솔산인 2018. 7. 31. 05:12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 2차 방문(180727)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에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히여 白下舊廬(백하구려)에 들러 白下 金大洛 선생의 현손 김시중(83세) 어른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 약속한 시간에 기념관을 찾았다. 종실 스님을 모시고 가는 관계로 독립기념관 측에서 특별한 점심 床을 준비하셨으니 感泣할 따름이다. 오후에 관장님의 일정이 있어 권대웅 교수님의 대략적인 설명과 이미 내용을 파악한 관장님이 신속하게 교통 정리를 하였고, 학예연구부로 내려와서 부장님의 따뜻한 접대를 받았으니 지난 120년의 피눈물과 노고가 풀리는 듯하다.


 止山 李起璨 선생이 독립유공자 추서(930815)와 국립묘지에 안장(120408)하는 과정에서 국사편찬위원회와 독립 운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종실스님에게 문집 국역 비용을 요구하였고, ○○○에게 400만원이나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개탄스운 일이다. 止山遺稿(지산유고)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이 관료나 학자들의 농간에 발굴과 매장의 기로에 선다는 이 나라가 더욱 슬프기만 하여라. 우여골절을 겪은 뒤에 1993년 8월 15일 종실 스님의 노력으로 지산 선생이 독립유공자 애국장에 추서가 된 이후, 스님께서는 止山遺稿(지산유고)를 국역하기 위해 百方으로 뛰어다니시다가, 1994년 2월 10일 우리 집에 찾아오셨고, 그 당시 내가 아무런 도움을 드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그로부터 24년 뒤, 내가 블로그에 올린 지산유고 창의일기를 본 예천의 박갑로 선생이 내게 자료를 요청했고, 자료를 복사해서 보내드린 것이 경북독립기념관과 연결이 되었다. 木函(목함) 속에서 陶山通文(1895.11.19) 등 자료를 찾아 木函(목함)을 들고 6월 30일 독립기념관을 찾았으니 도산통문이 작성된지 123년만의 일이다. 나는 독립운동기념관 측에 '내용을 아는 단서'를 붙여서 자료의 기증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국회도서관에 지산유고 영인본이 있음에도 권대웅 교수님께서 자료를 구하지 못했다고 하니, 복사본을 만들어서 보내드릴 생각이다. 다시 생각해 보니 우리는 독립운동 연구하는 학자들끼리 관련 자료를 공유하지 않는 형편 없는 나라에 살고 있더라. 돌아오는 길에 二江 柳萬植 선생의 수암종택(修巖宗宅)과 止山 선생이 은거했던 상주시 화서면 天卓山 아래 錦川에 들렀다가 대전으로 돌아왔다. 오늘 종실 스님에게 대만에 계신 삼종숙 秀晩씨가 9월 이후에 지산유고를 가지고 귀국한다는 소식을 들었다.(180801)












木函(180630)







기념관에서 내주신 책




♣ 1897년 여름 남쪽으로 낙동강上을 유람하다.


光武元年丁酉先生四十五歲夏南遊洛東江上數月柳二江同伴從游諸公甚衆  因入河回拜石湖柳先生霞隱柳公臣榮及弟號東濬志同義合相與甚歡數朔見留多有述作而幷逸之。[출처:지산선생연보]

 

광무 원년 정유(1897) 선생 45세 여름에 남쪽 낙동강 가를 몇 달 동안 유람하였다. (수암종택의) 柳二江 선생과 동반하였는데 좇아서 유람하는 諸公들이 매우 많았다. 이로 인하여 하회마을에 들어가 류석호 선생께 인사를 드리고, 하은 류신영(柳臣榮)공과 아우(東濬)을 방문하였는데, 뜻이 같고 의기가 투합하여 서로 더불어 매우 환영하였다. 몇 달 동안 머물면서 술작한 것이 많았고 편안하게 지냈다.


柳萬植(1860~1926) : 수암 류진의 10대 종손이요 溪堂 유주목(柳疇睦)장손이며 아버지는 海史 류도석(柳道奭, 1828-1908)이다. 자는 建一이고 호는 二江이다. 우천 수암종택에는 <二江精舍>라는 현판이 있다. <二江>洛坡 柳厚祚曾孫柳萬植公號이. 柳二江은 우천 수암 종가의 宗孫이기도 하다.1860(철종 11)에 태어나 일정 때인 1926년 향년 67세로 졸했다. 道士林의 천거로 齊陵참봉으로 임명되었다. 박식과 담론으로 大家의 풍도가 있었다.


하은(霞隱) 류신영(柳臣榮)

류신영(柳臣榮 1853.6.27~1919.2.2.) (항일자정순국)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경부(敬夫). 호는 하은(霞隱). 출신지는 풍남면(豊南面) 하회동(河回洞현 풍천면 하회리). 류신영은 경술국치(庚戌國恥) 순절한 류도발(柳道發)의 큰아들이다. 그는 19192월 고종황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장례에 아들 종묵(宗黙)을 참례시킨 뒤, 33(2.2)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91 건국훈장 애국장. ▣ 『기려수필, 한국독립사하권 독립운동사7


류동준(柳東濬, 1859∼1939) : 호는 시산(時山),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후손이며, 생부는 류도발(柳道發)이고 양부는 류도성(柳道誠)이다. 저서로는 『시산집』이 있다.






 

수암종택(修巖宗宅) :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셋째 아들인 수암(修巖) 류진(柳袗)37세에 가사리(佳士里)에 초가를 지어, 터를 잡은 데서 비롯되며 그의 아들 류후조(柳厚祚, 1798~1876)가 헐고 다시 지은, 풍산류씨(豊山柳氏) 우천파(愚川派) 종택으로, 이강정사(二江精舍), 우천세가(愚川世家) 또는 대감댁이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상주 화서 천탁산 아래 錦川(서당터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