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지리산국립공원 역사문화조사단 불일폭포 화첩산행(180601~03)

도솔산인 2018. 6. 4. 01:07

 

 

지리산국립공원 역사문화조사단 불일폭포 화첩산행(180601~03)

 

 

▣ 일   시 : 2018년 06월 01일 ~ 03일

▣ 코   스 1, 2 일차 : 남사마을(박) - 쌍계사 - 불출암 - 불일협곡 - 청학연 - 불일암 - 완폭대 - 불일폭포 - 불일평전(박)

              3일차 : 불일평전 - 불일암 - 청학봉(고령대) - 대은암터 - 소은암 - 불일암 - 백학봉 - 사관원(옥소암터) - 도성암(영대암터) - 국사암

▣ 인   원 : 6명(이호신 화백님, 조봉근님, 유길환님, 사니조아님, , 송연목님), 박지합류 3명(臭田님, 청송녹죽님,앵초님), 일요일 합류(조중제님)

▣ 날   씨 : 맑음, 한여름 날씨

 

 

 

1. 古梅 香氣가 맺어준 因緣

 

 2017년 2월 23일 南冥梅의 梅信을 초조히 기다리다 南泗五梅라도 볼 생각으로 무작정 나선 길, 남사예담촌에 들어서자 마침 귀한 손님을 안내하시는 분이 그동안 책으로 만났던 검은돌(玄石) 이호신 화백님이었다. 초면임에도 염치불구하고 대뜸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저도 이화백님의 문화 해설을 듣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라고 양해를 구하고, 불청객으로 남사오매에 대한 이호신 화백님의 해설을 들었다. 당시 안내를 받던 분은 지리산국립공원 관리공단 신용석 소장님과 원주의 국립공원관리공단 본부에서 오신 분들이었는데, 남사오매를 함께 완상한 후 신소장님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이후 두 분께 메일과 캇톡으로 선인들의 유람록 복원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게 되었고, 이화백님께서는 내게 점필재 길을 화폭에 담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그런 인연으로 지난 3월 25일 지리산국립공원관리공단 역사문화조사단과 첫 산행을 하였고, 첫 답사 결과물로 4월 15일 지리산역사문화조사단에서 翫瀑䑓 석각을 발견하였다. 역사적인 발견을 계기로 지리산 역사문화조사단과 玄石(검은돌) 이호신 화백님을 모시고 불일폭포 일원을 답사하는 화첩 산행을 하게 되었고, 1차, 2차, 3차 답사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2. 靑鶴洞 설화의 근원 불일폭포와 靑鶴淵

 

 나는 지난 3월 25일 역사문화조사단과의 첫 답사에서 '불일폭포는 청학의 형상으로 청학동 설화의 근원이 폭포의 형상에서 시작된 것이다.' '산도 보고 물도 보고 사람도 보고 세상도 본다.'라는 남명 선생의 말씀을 인용하여, 불일폭포를 완상할 때 '산도 보고 물도 보면 날개가 여섯 달린 청학이 보이고, 청학이 보이면 고운 최치원 선생이 보이고, 최치원 선생이 보이면 청학동이 보인다.'라고 설명하였다. '폭포 아래의 석문은 청학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며 오직 신선만이 청학을 타고 출입할 수 있다.' '그 아래에는 학담과 학연이 있다. '라는 남명선생의 유두류록을 인용하였다.

 

불일폭포를 세 번이나 답사한 남명(南冥) 조식 선생은 1558년 유두류록에 이곳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학연) 안에 신선의 무리와 巨靈, 큰 蛟龍, 작은 거북 등이 그집에 몸을 웅크려 숨어서는 영원히 이곳을 지키며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不知其中隱有仙儔巨靈. 長蛟短龜. 屈藏其宅. 萬古呵護. 而使人不得近也.]" 여기에서  巨靈은 물의 신으로 大華山과 首陽山을 큰 도끼로 찍어 두 산을 쪼개어 龍門을 열어 놓아 황하수를 흐르게 했다는 전설의 신인데, 남명 조식선생이 유산기에 중국의 고사 巨靈을 언급한 것이다.

  

李白(701~762)의 시 "西嶽雲臺歌送丹丘子(743)" 에도 "황하의 수신 巨靈이 포효하며 두 산을 쪼개어 / 큰 물결 화살 같이 뿜어 東海로 쏘아 올리네。[巨靈咆哮擘兩山 /  洪波噴箭射東海] "라는 시구에 巨靈이 나오는데, 南冥은 '불일협곡 또한 황하의 수신인 巨靈이 큰 도끼로 향로봉과 비로봉을 둘로 쪼개어 불일폭포를 만들고, 학담과 학연을 통해 불일협곡으로 폭포수를 거칠게 흐르게 하였다.'라고 생각하였다. 아마 물이 많았다면 남명에게는 물소리가 마치 巨靈이 포효하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불일폭포 아래 石門에 내려가 올려다 본 불일폭포는 거대한 바위 항아리 우주선 속으로 마치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듯 가히 장관이었다.

 

 

* 巨靈 : 하신(河神, 물의 신·황하의 신). 큰 도끼로 大華山

과 首陽山을 찍어 龍門열어 놓아 황하수를 통하게 했다고 함

 

 

. 1558년 남명 조식 선생의 유두류록

 

[가정(嘉靖) 무오년(1558) 6월(?)19일] 下有鶴淵. 黝暗無底. 左右上下.絶壁環匝. 層層又層. 倏回倏合. 翳薈蒙欝. 魚鳥亦不得往來. 不啻弱水千里也. 風雷交闘. 地闔天開. 不晝不夜. 便不分水石. 不知其中隱有仙儔巨靈. 長蛟短龜. 屈藏其宅. 萬古呵護. 而使人不得近也. 或有好事者. 斷木爲橋. 僅入初面. 刮摸苔石. 則有三仙洞三字. 亦不知何年代也. [남명집(p362~p366)]

 

 

 

(불일암) 아래에는 학연(鶴淵)이 있는데 컴컴하고 어두워서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좌우 상하에는 절벽이 고리처럼 둘러서서 겹겹으로 쌓인 위에 한층이 더 있고 문득 도는가 하면 문득 합치기도 하였다. 그 위에는 초목이 무성하니 우거져 다보록하니 물고기나 새도 오르내릴 수 없었다. 천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약수보다도 더 아득해 보였다. 바람과 우레 같은 폭포소리가 뒤얽혀 아우성치니, 마치 천지가 개벽하려는 듯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상태가 되어 문득 물과 바위를 구별할 수 없었다. 그 안에 신선의 무리거령, 큰 교룡, 작은 거북 등이 그집에 몸을 웅크려 숨어서는 영원히 이곳을 지키며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호사가가 나무를 베어 다리를 만들어, 겨우 학연(鶴淵) 입구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이끼를 걷어내고 벽면을 살펴보니 三仙洞이라는 세 글자가 있는데, 어느 시대에 새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 남명 조식 선생의 청학동 기행시   

 

靑鶴洞[청학동] - 曺植[조식]

 

獨鶴穿雲歸上界[독학천운귀상계] : 학은 홀로 구름을 뚫고 천상계로 올라갔고

一溪流玉走人間[일계류옥주인간] : 골짜기 온 가득 옥류수는 인간계로 흐르네

從知無累飜爲累[종지무루번위누] : 가 없는 것이.. 도리어 누가 됨을 알기에

心地山河語不看[심지산하어불간] : 산하를 마음에 담고 보지 못했다 말하리라

 

靑鶴[청학] : 사람의 몸에 새의 부리를 하고 있으며 신선이 타고다님. 태평시절과 태평한 땅에서만 나타난다고 함.


 

詠靑鶴洞瀑布[영청학동폭포] - 曺植[조식]

 

勅敵層崖當[칙적층애당] : 견고하게 맞선 층진 낭떨어지를 맞이하니

舂撞鬪未休[용당투미휴] : 절구질하고 부딪히며 싸우길 멈추지 않네

却嫌堯抵璧[각혐요저벽] : 도리어 요임금이 구슬 던진 것을 싫어하니

茹吐不曾休[여토부증휴] : 마시고 토하기를 거듭하여 멈추지 못하네.

 

: 조서 칙, 견고함. : 원수 적, 맞서다. : 절구질할용, 움직일 준. : 칠 당, 부딪히다. : 막을 저, 던져버리다. : 먹을여, 마실려. 요 임금이 구슬을 버린 것 尺壁非寶[척벽비보]寸陰是競[촌음시경]이라. 한 자 되는 구슬이 귀하게 여길 보배가 아니라, 한 치의 짧은 촌음을 다투어 아껴야 한다. 요 임금의 치수사업을 곤과 그의 아들 우임금에게 맡긴 일화에서 인용함.

 


. 21瀑의 불일폭포와 9청학연

 

학연과 학담, 용추에 대한 고 문헌의 기록은 사람마다 다르고 일정하지 않다. 완폭대에서 폭포 아래 석문까지 내려와서 기록한 것인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다. 학담과 학연에 대한 기록 중 그래도 가장 현장에 접근한 것은 남명 선생의 기록이다. 그 당시 완폭대에서 불일폭포 아래 石門까지 내려온다는 것은 담력이 있는 사람도 짚신을 신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유람이 대부분 우기에 집중한 것은 수량이 많은 계절에 폭포를 감상하기 위해서이고, 학연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선답한 유람기를 읽었던지, 아니면 안내하는 승려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여러 번 답사해본 결과 불일폭포는 2段 1瀑 9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용추폭포 바로 위의 沼는 확인하지 못하였고, 동계에 빙장비를 가지고 확인할 예정이다. 아무튼 학연과 학담, 용추가 두 개의 沼로 이루어져 있다는 옛 문헌과 유산기의 모든 기록이 사실에 맞지 않는 다는 것이 이번 지리산 역사문화조사단의 조사 결과 밝혀졌다. 

 


 

 

 

3. 청학봉과 백학봉의 명칭에 대하여
불일암에서 바라보면 왼쪽(동쪽)이 향로봉이고, 오른쪽(서쪽)이 비로봉이라고 기록한 것은 대체적으로 일치하나 청학봉과 백학봉의 명칭은 기록한 사람과 시대에 따라 그 명칭이 들쭉날쭉 기록마다 다르다.  불일협곡 서쪽 절벽 바위 굴에 청학의 둥지가 있다는 스토리가 지명 혼란의 주범이다. 비로봉 바위 절벽에 실제로 약간 움푹 들어간 부분이 있는데, 선답자들이 청학의 둥지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청학이 실제 살았고 존재했다는 것에 대해서 믿지 않는다. 불일폭포가 청학의 형상으로 고운 최치원 선생의 이야기와 매치되면서 청학의 둥지가 있는 비로봉을 청학봉이라고 하였고, 후대로 내려와서 1744년 황도익 선생의 유산기부터 동과 서, 色의 방위 개념이 지명에 반영되면서 비로소 향로봉을 청학봉이라고 하고, 비로봉을 백학봉이라고 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무튼 불일폭포가 청학의 형상이고 청학과 백학이 불일협곡으로 머리를 마주한 형국으로 청학동 설화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근원으로 이해하면 된다. 여기에서 한 가지 추가할 것은 향로봉의 또 다른 명칭이 등장한다. 1616년 부사 성여신과 1736년 서계(西溪) 박태무는 고령대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당시 유학자들이 도가사상에 심취해 있음을 알 수 있다.(관련자료 참조)
가. 관련자료 : 선인들의 유산기와 기행시에 나오는 三仙洞과 古靈臺  http://blog.daum.net/lyg4533/16487828


나. 선인들의 유산기에 나타난 청학봉과 백학봉의 위치(작성자 이재구 선생) 

이름

년도

기록

비고

1

김일손

1489

동서쪽에 향로봉이 좌우로 서로 마주하고 있다.

 

2

조 식

1558

- 향로봉 , - 비로봉

 

3

유몽인

1611

- 향로봉 , - 혜일봉 , - 청학봉

 

4

성여신

1616

문맥상 동 - 향로봉 , - 청학봉

 

5

조위한

1618

- 향로봉 , - 청학봉

 

6

양경우

1618

- 향로봉 , - 청학봉

 

7

허 목

1640

- 향로봉 , 서남쪽 - 청학봉

 

8

오두인

1651

- 향로봉 , - 청학봉

 

9

김지백

1655

- 향로봉 , - 청학봉

 

10

송광연

1680

청학봉 , 향로봉 , 연일봉 , 세 봉우리가 세 방면에 대치함.

 

11

정시한

1700년경

- 향로봉 , - 청학봉

 

12

김창흡

1708

- 향로봉 , - 청학봉

 

13

신명구

1720

- 향로봉 , - 비로봉

 

14

정   식

1724

- 향로봉 , - 비로봉 ,혹은 백학봉 , 청학봉

 

15

김도수

1727

- 향로봉

 

16

황도익

1744

- 청학봉 , - 백학봉

 

17

이주대

1748

- 향로봉 , - 비로봉

 

18

석응윤

1800년경

- 청학봉 , - 백학봉, 곧 조식선생이 말한 향로봉, 비로봉

 

19

남주헌

1807

- 향로봉

 

20

하익범

1807

- 향로봉 ,청학봉 서 - 비로봉 ,백학봉

 

21

유문룡

1808

- 청학봉 우 - 백학봉

 

22

정석구

1810

문맥상 동-청학봉 서 - 백학봉

 

23

성해응

1810

- 향로봉 , - 삼석봉 ,- 청학봉

 

24

김성렬

1884

- 백학봉 , - 청학봉

 

25

하겸진

1899

- 향로봉 , - 비로봉

 



 

4. 기타 관련 자료

 

이번 화첩 산행에서 보조암(상불암)지와 지장암지는 답사하지 않아서 관련 자료만 첨부하였고, 내원골 폐3암자와 완폭대 석각 관련 자료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 내원골 심불성원 폐 3암자 :  http://blog.daum.net/lyg4533/16487925나. 청학암, 지장암, 보조암과 상불암 불지령 관련 : http://blog.daum.net/lyg4533/16487952다. 불일폭포 翫瀑䑓 石刻 발견의 비하인드 스토리 : http://blog.daum.net/lyg4533/16487953 

 

 

 

이번에 불일협곡 화첩 산행의 주빈이며 주연을 하신 이호신 화백님과 부산에서 오신 조선 최고의 여산객 사니조아님, 국외 출장을 다음으로 미루고 조사단의 안전과 cook을 책임진 수원의 송연목님, 국립공원 지리산역사문화조사단 조주무관님과 유주무관님, 멀리 서울에서 불원천리하시고 맛난 산중요리를 지원해 주신 청송녹죽님과 앵초님, 밤 늦게 아이스크림과 캔 맥주를 가지고 올라오신 지리산 역사문화조사단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든든한 후원자 臭田 선생님, 부산에서 새벽에 직접 생선 초밥을 공수하신 조중제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검은돌 이화백님 사모님의 茶室 '지금은 꽃자리(時芳齋)

 

 

 

 

廣居亭

 

 

 

불출암 터 석축

 

 

 

 

 

 

내원수행처 慈峰 스님

 

 

 

 

 

 

 

 

불일협곡 만물상폭포

 

 

 

 

玉泉臺

 

 

玉泉臺의 石刻

 

 

 

 

천남성

 

 

옥천대

 

 

청학연과 용추

 

 

불일폭포

 

 

청학동 石門

 

 

 

 

학연I

 

 

학연II

 

 

학연III

 

 

학연III

 

 

학연Ⅳ,학연

 

 

 

 

 

 

 

 

불일폭포는 2段 1瀑 九淵으로 이루어져 있다.

 

 

翫瀑䑓 拓本

 

 

 

 

 

 

 

 

 

 

 

 

 

일요일 새벽 부산에서 오신 조중제님

 

 

 

 

 

 

 

 

 

 

청학봉 고령대에서

 

 

 

 

 

 

大隱菴 터

 

 

 

 

끈끈이대나물

 

 

 

 

小隱菴 감나무

 

 

불일암 주지 一龍 스님

 

 

백학봉 소나무

 

 

백학봉에서

 

 

도성암(영대암터 추정)

 

 

 

 

사관원(옥소암 터)

 

 

 

 

♣ 1618년 조위한의 遊頭流山錄 옥소암 관련 기록

414(불일암에서) 시 몇 편을 짓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가다가 한 가닥 좁은 길을 찾아내서 풀을 헤치고 덩굴을 제치며 곧장 몇 리를 내려가 옥소암(玉簫庵)에 닿았다. 암자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는데 절벽을 뚫고 허공에다가 기둥을 세우고 난간을 설치해서 아득하게 허공에 떠서 새가 나래를 펴고 있는 것 같아, 마치 그림 속에 있는 듯해서 일반적인 승방이나 절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원문] 賦詩數篇. 還向歸路. 而別尋一線鳥道. 穿蘿觸藤. 直下數里. 到玉簫庵. 庵在斷巘絶壁上. 鑿崖凌虛而架棟設檻. 縹渺浮空. 翬飛鳥翼. 有若畫圖之中. 殆非尋常僧房佛屋之比也.

 

 

時芳齋(지금은 꽃자리)

 

 

 

學則不固

 

군자는 배우긴 배우되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 지식이 협소한 사람은 자칫 자신의 좁은 생각에 사로잡혀 완고한 사람이 되기 쉬우니, 학문을 갈고 닦아 유연한 머리로 진리를 배우라는 말씀이다.논어학이편에 있는 말로 즉 '배움이 깊을수록 자신만 옳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 가지 재주에만 고루하게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식견을 받아들이는 인간형이 바로 진정한 군자인 것이다.

 

지혜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게 되어 있다.

 

[출처] 옳은 인간형|작성자 자음 모음의 짝짓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