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지리동부 아란야(阿蘭若) 영랑대(170210~12)

도솔산인 2017. 2. 13. 00:03

 

지리동부 아란야(阿蘭若) 영랑대(170210~12)

 

 

일 시 : 20170210~ 12

코 스 : 광점동-어름-청이당-영랑대-두류능선-영감절터-어름-광점동

인 원 : 4(미산님, 김자준님, 이승호님)

날 씨 : 첫날 눈 구름 둘째날 맑음 영하 15

 

 

  입춘이 지나고 매신(梅信)이 들려오건만 도리어 강추위가 몰려오니 마음은 변함없이 한 곳을 향한다. 언제나 변화무쌍한 지리의 모습이 아니던가. 추우면 추울수록 내 혈관을 요동치게 만드는 지리동부의 강한 끌림과 보고픔이다. 동고동락하던 산친들이 예전 같지 아니하고 가는 길은 날로 성글어지니, 해와 달은 자리를 바꿔가며 부지런을 떨건만 이내 산행의 즐거움이 차츰 줄어들기만 한다. 그래도 이 산하 이 산천 이내 한 몸 마음 편히 쉴 곳은 역시나, 영원한 나의 아란야(阿蘭若), 영랑대가 아니던가. 그래서 다시 그곳을 향하여 금요일 밤, 검은 도로를 달려 오도재로 향한다.

 

 * 阿蘭若(아란야) : 한적한 수행처라는 뜻으로, , 암자를 이르는 말. 산스크리트 어 ‘āranya’의 음역어. 약어는 蘭若(난야)

 

  오도재에는 아주 오래 전 마음의 빚을 청산하기 위한 과제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2008년의 가을, 적조암을 출발하여 지리99에서 발표한 <영신사지>를 찾아가던 날, 그곳에서 우연히 술 한 병을 얻었는데 병 겉면에 달필의 글씨로 술병을 남기고간 연유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세석에서 일행들과 그 술을 마시고 야간산행을 하여 백무동으로 내려왔으니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일이었다. 그런 연유로 <한시로 찾아가는 영신사지>이라는 글을 올렸고 그 후 산길에서 몇 번 마주친 일이 있으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때마침 그 술병의 주인이 지리에 든다는 소식이 들려와 한산 소곡주 한 병을 들고 술빚 청산의 기회로 삼았다. 오도재 정자에 광거정(廣居亭)을 세우고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여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르고, 오도재의 밤은 10년의 시간들이 역으로 흘러가는 듯, 지리산에서 따로 또 같이 보낸 각자의 시간들이 삶의 한 편에 굳어진 채 함께 해 왔음을 알겠더라.

 

  자는 둥 마는 둥 밤을 보내고 일어나 그분들은 벽송사로 나는 어름터로 산행 길에 나섰다. 차가운 바람에 고도를 높여갈수록 힘은 부치는데 겨울산은 진풍경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는, 왜 이토록 미친놈들처럼 험난한 놀이에 자신들을 내맡겼는가? ' 오직 자신을 버린 자만이 가고 머무는데 거리낌이 없어라.' '오직 자신을 버린 자만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우리들의 이 거친 놀이는 그 소박한 소망, 거침없는 자유로움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일 뿐 더 큰 바람도 어떤 목적도 있지 않다.

 

 

無住庵 - 無己(*)

 

此境本無住 : 이곳은 본래 머물 곳이 아닌데

何人起此堂 : 누가 광거정을 세웠는가?

唯如無己者 : 오직 자기를 버린 사람만이

去住兩無妨 : 가고 머무는데 거리낌이 없어라

 

< 출처 : 김경렬선생 지리산I>

 

(*)崔滋 補閑集에 나오는 大昏子 無己禪詩

 

 

  정월 대보름 아란야로 가는 길에는 나무 사이로 눈발이 흩날렸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흰 눈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그곳을 향해 나아간다. 인생의 목적과 끝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는 이 나이까지도 잘 모르겠으나, 지금 이 순간의 내 목적지와 방향은 분명하고 정확하여 오로지 한 생각뿐이다. 수 없이 발길이 닳도록 찾아온 곳이지만 언제나 이곳으로 가는 길목에 서면 묘한 설렘이 되살아난다. 새하얀 겨울 산속, 이 거친 놀이에 같은 추억을 간직한 이들과 함께 걷는 이 시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다. 그리하여 영랑대에 다시 서노니, 저 아늑한 반야의 뜨락! 저 우뚝 솟은 하봉과 중봉, 천왕의 하얀 능선! 시린 가슴에 박히도록 파고드는 이 바람아!

 

  되돌아볼 일이 많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라는데, 영랑대에 서서 지난 세월을 되새겨보는 시간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니 나도 어쩔 수 없나보다. 그러나 아직도 이렇게 이곳에서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미산>선생님과 산친들의 즐거운 웃음을 볼 수 있으니, 비록 오는 길이 험난할지라도 이곳에 머물고 있을 영랑의 넋은 내 힘이 다할 때까지 언제까지라도 기다려주지 않으련가.

 

  안식처에서 단잠을 자고 깨어나 새벽에 밖으로 나가보니 반야의 머리 위로 말간 대보름달이 구름의 바다 위에 그 밝고 맑은 빛을 골고루 쏟아 내리고 있다. 영하 15도의 살을 에이는 듯한 칼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세상의 빛은 온통 흰빛과 푸른빛뿐인 듯, 서기(瑞氣)가 어리기 시작하는 영랑대는 새 아침을 준비하느라 고요함 속에 구름과 삭풍만이 분주하다. 하얀 눈을 뒤집어쓴 영랑대를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닌데 오늘 아침의 풍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고도 투명하다. 밤새 저 커다란 정월대보름달이 온 천지의 탁기(濁氣)를 모조리 씻어내려 준 덕분일까. 동쪽 하늘에 번지기 시작하는 붉은 여명과 스믈스믈 피어오르는 운무의 움직임들도 예사롭지가 않다.

 

  모두가 숨죽이며 어둠의 소멸을 기다리는 시간, 천지가 개벽하듯 여명을 떨치고 뜨거운 태양을 토(吐)하기 시작하자, 운무가 빛을 통과하며 그 열기와 밝음의 퍼짐에 희열을 가누지 못하는 절정의 여인처럼 온몸을 넘실거리며 열락(悅樂)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생명을 잉태하는 순간을 바라보듯 붉은 기운이 태양을 휘감아 감싸며 마치 샛노란 알의 부화를 기다리는 듯했다. 가만히 그 빛의 변화를 바라보노라니 감수재 박여량이 가을날의 유람길에서 천왕 일출을 만났을 때, 그가 표현한 한 대목이 생각난다. 오늘의 이 장엄한 일출의 풍광도 마치 그렇지 아니한가.

 

  온 하늘 아래는 찬란한 빛이 밝게 퍼져, 마치 임금이 임어할 때 등불이 찬란하고 궁궐이 삼엄하며, 오색구름이 영롱하고 온갖 관리들이 옹립해 오위하며, 아랫사람들이 제자리에 서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감히 거만하지 않고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것과 같았다.[輝暎光明 如人君出御 燈燭煌煌 宮闕森嚴 五雲玲瓏 千官擁衛 百隷執物 令人起敬而不敢慢也]

 

  사방 천지는 떠오르는 빛살에 물들어 황금빛으로 하고 이 아침의 서광(瑞光)은 절정에 달했다. 산친들은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걸어 올라와 누리는 이 특혜에 즐거워하면서, 영랑의 넋이 베푸는 이 최고의 선물에 감사해하면서 영랑재의 아침을 원껏 누렸다. 모든 일에 권태로움과 매너리즘이 있듯 나에게도 작년은 여러 가지 일들로 몸이 힘들기도 했고, 함께 하던 산친들도 흩어져 마음도 허허로웠던 시간들이 많았었다. 게다가 가끔 찾은 영랑대도 어쩐 일인지 흐린 날들이 많아 힘겨웠던 발걸음과 마음에 무거움과 허탈함을 더하기도 했었다. 해가 바뀌고 공기가 달라져도 습관처럼 굳어져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영랑대에서 오늘은 마치 오랜 옛 친구인 영랑이 큰 선물이라도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환상적인 풍광으로 나를 맞이해주었으니, 이곳이 도솔에게는 구중심처 아란야가 아니고 무엇이랴.

 

  복잡한 세상사 고단한 인생사를 잠시 잊고 이곳에서 분에 넘치는 풍광을 즐기노라니, 간서치(看書癡) 이덕무(李德懋)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틀의 호사를 누리고 두류능선으로 내려서는 길, 지리산 곳곳에 마음을 두고 지내는 지리 마니아들도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산에 들 것이라. 모든 님들 건강하게 지리산을 오래도록 누리시기를...

 

 

<중략>

 

世間是與非(세간시여비) : 옳으니 그르니 하는 세상일들은

難辨雌雄烏(난변자웅오) : 까마귀 암수처럼 구별하기 어려워라

洗滌塵土腸(세척진토장) : 먼지 낀 속을 깨끗이 씻어내고

猶喜俯平湖(유희부평호) : 흔연히 호수를 내려다본다

所愛風與月(소애풍여월) : 바람과 달은 내가 좋아하는 것

豈可用錢沽(기가용전고) : 무슨 돈이 들겠는가

江山好風景(강산호풍경) : 강산은 너무 풍경도 좋아

森森如畫圖(삼삼여화도) : 눈앞에 삼삼하여 그림 같구나

但覺吾愛景(단각오애경) : 내가 경치를 좋아한다고 여겼더니만

復知景爲吾(복지경위오) : 이제 알았네, 경치가 나를 위해 마련된 것을

如此復如此(여차복여차) : 이와 같고 또 봐도 이와 같으니

吾以此樂夫(오이차락부) : 나는 이것을 즐길 것인저.

 

 

  올라간 길 되돌아 영감절터로 내려오니 어름터에 쏟아지는 말간 햇살이 따사롭기만 하다. 아침의 그 풍광이 꿈속의 환영인 듯 아득하기만 하여라. 이제는 깨어나는 봄길 사이로 달려오는 남명매의 매신(梅信)이나 기웃거려보아야겠다.

 

 

 

 

 

 

 

 

 

十二覺詩 - 靑梅禪師 

 

 

覺非覺非覺 : 깨달음은 깨닫는 것도 깨닫지 않는 것도 아니니

覺無覺覺覺 : 깨달음 자체가 깨달음이 없어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네 

覺覺非覺覺 : 깨달음을 깨닫는다는 것은 깨달음을 깨닫는 것이 아니니 

豈獨名眞覺 : 어찌 홀로 참 깨달음이라 이름하리요 

  

 * 청매선사는 박여량선생의 「두류산일록」에 나오는 도솔암의 인오스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