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六友堂記/산행기록

산천재는 지리산이다(141206~07)

도솔산인 2014. 12. 8. 09:12

 

산천재는 지리산이다(141206~07)

 

 

▣ 일   시 : 2014년 12월 06일 ~ 07일

▣ 코   스 : 새재 - 치밭 - 하봉헬기장 - 영랑재 - 청이당 - 새재

▣ 인   원 : 2명(윤기현)

▣ 날   씨 : 새벽 -12.8도, 낮 -8도 바람 조금

 

 

  '智異山 !' 하면 떠오르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았으니 일반 사람들에게 참 생소한 이름이다. 덕산 산천재 남명매 앞에서 사숙(私淑)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랐다. 세상을 내 의도대로 살 수 없지만 세상의 의도대로 살 수도 없는 법. 대부분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현실과 타협하고 그 경계를 넘나들며, 원만이라는 여구로 포장하고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윗사람에게 '네'라고 하지 않고 '아니오'라고 하면서 지나온 세월... 타고난 기질에 외골수의 인생이 어찌 평탄하랴! '산행' 또한 그 사람의 기질과 성격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사숙(私淑) : 어떤 사람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의 행적이나 사상 따위를 마음속으로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닦음을 이르는 말.

 

 

산천재&남명매(1206 11:38)

 

  천왕봉을 바라보니 하필(何必)이면 가운데 은행나무가 시야에 가로거치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은행나무를 이곳에 왜 심어... 산천재를 보수하면서 어찌 남명의 시는 흉물(凶物)로 만들었는지. 질책을 받고 誤字를 칼로 파낸 후 수 년이 지나도 고치지 않고 있으니.... 생각이 있는지 남명의 이름을 팔아 배만 채우지. 

 

 

 

산천재에 들르면 이 소나무를 보라! 수우당 최영경 선생의 기개가 아닌가?

 

 

산천재에 성성자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산천재는 지리산이다.'라고 獨白하고 새재로 향했다.

 

(1206 16:13)
(1206 16:55)

 

  치밭목에서 떡갈나무와 신갈나무에 묶을 여인를 만났다. 한솥밥 한젤트에서 잠을 잤으니 산을 섞은 것이 아닌가. 민대장님이 나가서 자빠져 자라는 성화도 무시하고, 내친 김에 퍼질러 앉아 저녁을 먹고 술도 한 잔 마셨다. 추상같은 바람소리에 산천의 초목이 벌벌 떠는 밤. 세속을 벗어났으나 이곳 역시 또한 속되지 아니한가. 泗川에서 오신 노산객 두 분의 삼치膾가 술을 돕고, 신갈木女의 甲午가을 조개골 전투로 안주를 삼았다.

 

 

 

바람소리에 묻힌 노산객의 노래가 허공에 울려퍼졌다.

 

산아들 윤기현군

 

  2006년 장터목에서 만난 인연으로 설악과 지리 덕유를 함께했다. 동계에 마야계곡 통신골을 했고 24년 차이 띠동갑 나의 산친이다. 현재 기업은행에 다니는데 입사 시 면접에서 면접관이 "산 댕겨?"라는 질문에 "네!" 한마디 답변으로 합격한 일화가 있다.

 

 

(1207 09:53)

 

  아침에 조금 늦게 일어났는데 이를 어찌할꼬? 이를 어찌할꼬? 밤새 온갖나무들이 상복을 입고 통곡을 하더니 눈물이 온산을 덮었네.

 

 

(1207 10:21)
(1207 11:00)

 

  넘어지고 엎어지고 산행 또한 내 인생을 닮아서 순탄치 않네. 기현이는 앞에서 벌써 번번이 길을 놓친 후에야 이해하는듯... '기현아! 자신이 산짐승이 되어야 비로서 산길을 읽을 수 있단다.'

 

 

(1207 12:54)

 

  떡갈&신갈녀가 이름한 도솔샘泉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후의 오름 길은 지리동부에 들어 최악의 상황이라. 눈의 무게에 나무가 부러지고 휘어져 앞길을 막았다.

 

 

(1207 14:21)
(1207 15:15)
(1207 15:27)
(1207 15:56)

 

  영랑재를 다들 영랑대라고 부른다지. 영랑대도 맞지만. 그러나 마암과 1618봉 안부를 영랑재라고 함은 오류지. 16:00시 출발 이미 지리동부 통금 시간이 지난 후 청이당에 내려오니 시나브로 어둠이 내렸다(17:30) 기현이에게 '죽기 전에 양치한다.'라고 하니 무슨 말인지 못알아 들었다. 나는 더구나 길치가 아니거든. 차라리 이럴 땐 길치가 더 좋은지 몰라. 어둠속에서 잠시 길을 놓쳤다. 랜턴은 산죽밭에서는 부싯돌과 같아서 사람의 눈을 멀게 하거든. 침착한 녀석인데 당황하며 계곡 쪽으로 내려서는 것을 제지한다. 산죽 밭을 트레버스하여 작은 두 번째 능선에 닿았다. 휴! 왼쪽은 철모 삼거리에서 능선으로 직접 오르는 산길이다. 확신을 가지고 내려서니 드디어 급경사 산죽길이 나왔다. 욕속부달 욕속부달 呪文을 외우지만 이미 온몸에 힘이 다 빠져서 넘어지고 엎어지고 바위에 다리가 끼어 배낭을 벗고야 일어났다. 철모삼거리에서 모든 긴장이 풀리니 뜨거운 물이 마시고 싶었다.

 

 

(1207 18:55)

 

  임도를 내려가는데 달빛 아래 조개골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새재산장에 도착해서 갈증으로 뜨거운 물을 얼마나 마셨는지. 이 치열熾烈한 사투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지. 손과 발과 얼굴이 붓고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으나 마음의 병은 치유治癒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