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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명구 250] 상대에게 말을 다하게 한다는 것

도솔산인 2014. 11. 20. 20:49

 

[고전명구 250] 상대에게 말을 다하게 한다는 것

 

 

상대에게 자신의 말을 다하게 하는 것, 이 한 가지 일만 해도 덕을 높일 수 있다.

 

令人盡其言 只此一事 可以進德

 

유인석(柳麟錫, 1842~1915) 「잡록(雜錄)」 『의암집(毅菴集)』 권27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점의 근저에는 소통의 부재가 자리할 때가 많다. 상호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애당초 서로 만나 대화를 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상호 소통이라고 할 것이 없거니와 대화를 했더라도 상호 소통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의암(毅菴)이 말한 “상대에게 자신의 말을 다하게 한다.”는 이점에서 시사 하는 바가 있다.

 

 우리는 상대와 소통을 시도할 때 먼저 자신의 처지나 생각 등을 잘 설명하려고 힘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해(利害)나 가치 등을 상대에게 되도록 평이하게 전달함으로써 상대의 공감을 유도한다. 이런 노력이 소통을 시도하는 노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상호 소통을 이루기에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소통은 나를 상대에게 이해시키고 나 또한 상대를 이해하는 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가 빠졌을 때 나를 이해시키는 노력은 그 과정이 자세하고 성실하게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친절함으로 포장된 압박이나 강요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상대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것으로 간과하기 쉬운 것 중에 하나가 지위의 차이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다하기가 어렵다. 맹자는 관직이 높은 사람을 설득할 때는 그를 경시하고 그의 높은 위세를 보지 말라고 충고한다.[“說大人則藐之, 勿視其巍巍然。” 『맹자』「진심 하(盡心下)] 그러나 지위가 낮은 사람이 맹자의 충고대로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위의 차이를 사회의 여러 관계로 확대해 찾자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그 차이가 존재한다. 엄마가, 말썽 피운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을 때 아이에게서 사실을 다 듣기는 어렵다. 엄마가 마땅함만을 이야기하거나 혹 체벌을 한 적이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상대가 말을 다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나 생각을 공감하려는 노력이 상대에게 전달되었을 때 가능하다. 이 공감은 내가 바뀔 수 있음을 전제해야 그 문이 열린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이나 가치관을 내려놓아야 하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모험을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노력은 결과적으로 내 삶의 실현 가능성을 높인다. 의암이 상대가 말을 다할 수 있게 하는 것과 자신의 덕을 높이는 일을 연결한 고리는 아마도 여기에 있을 듯하다.

 

 

글쓴이 : 오재환(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