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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 350] 소탐대실

도솔산인 2014. 11. 25. 11:27

 

[고전산문 350] 소탐대실

 

 

[번역문]

전선(戰船)을 건조할 때 비용을 지급하는 일에 대해서는 전에 이미 삼가 말씀드렸습니다. 증거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유안(劉晏)*의 설입니다. 행차 중이시라 참고하실 만한 서책이 없을 듯하여, 유씨의 설을 베껴 올립니다.

 

유안(劉晏)이 건조장을 마련하여 선박을 건조하면서, 엽전 천 꿰미를 지급하였는데, 혹자가 실제 비용은 그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면서, 삭감하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유안은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대계(大計)를 논하는 자는 작은 비용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매사에 반드시 영구히 가게끔 고려를 해야 한다. 이제 처음으로 선박을 건조하는 장소를 마련하였으니, 일을 맡을 이가 많을 것이다. 마땅히 먼저 그들의 개인적인 씀씀이가 군색하지 않게 하여야 하니, 그러면 관물(官物)이 견고하고 완전해질 것이다.

만약 대뜸 그들과 잗달게 따진다면, 어떻게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겠느냐? 훗날 반드시 그것을 삭감하려고 하는 자가 있을 것이니, 반이 안 되게 삭감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지만, 그 이상을 삭감한다면 운용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후 50년이 지나자, 유사(有司)가 과연 그 반을 삭감하였다. 함통(咸通 당나라 의종(懿宗)의 연호) 연간에 이르러 유사가 실비를 계산하여 지급하고 더 이상 여분을 두지 않자, 선박이 더욱 부실해져서 조운(漕運)이 마침내 폐지되었다

 

전선에 지급하는 비용은, 처음에는 제법 넉넉하였으나, 여러 차례 삭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수가 아주 적어져서, 거의 실비를 계산해서 지급한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박 기술자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마을에서 빌어먹을 정도입니다. 이는 전에 제 눈으로 직접 본 상황입니다.

관청의 일을 수행하면서 마을에서 빌어먹으니, 일의 체모가 진실로 한심하거니와, 선박이 얼마나 취약해질지도 그를 통해서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국가의 변방을 방비하는 도구에 대해 이처럼 소홀하니, 어찌 크게 우려할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일은 변통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설사 완전히 처음 수준을 회복할 수는 없더라도, 유안이 말한 “반으로 줄이는 것까지는 그래도 괜찮다.”는 정도까지라도 물릴 수 있다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초장에 넉넉하게 지급한 수준, 중간에 삭감한 수준, 오늘날 지급하는 수준은 공문을 보내서 물어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유안(劉晏, 715~778) : 당(唐)나라 때의 명재상으로, 재무 회계에 특히 밝아 부국(富國)에 큰 공을 세웠다.

 

[원문]

戰船營造給費事。前已奉聞之矣。所可證者。劉晏說也。行中想未有書冊可考。故劉說錄呈。

劉晏置塲造船艘。給千緡。或言用不及半。請損之。晏曰。不然。論大計者。不可惜小費。凡事必爲永久之慮。今始置船塲。執事者多。當先使之私用無窘。則官物堅完矣。若遽與之屑屑較計。安能久行乎。異日必有减之者。减半以下猶可也。過此以下。不能運矣。後五十年。有司果减其半。及咸通中。有司計費而給之。無復羡餘。船益脆薄。漕軍遂廢。

戰船給費。始頗優厚。屢度裁减。今則其數至少。殆不足以爲計費之給。船工不堪飢困。乞食於村間。此則所甞目見者也。役於官事而乞食村間。事體固爲寒心。而船之脆薄。因可推知也。國家備邊之具。踈虞如此。豈非大可憂者哉。此事不可不變通。縱不能盡復其初。退依劉晏减半猶可之說。其亦可乎。初頭優厚。中間裁减。今日所給之數。行關問之則可知矣。

- 한원진(韓元震, 1682∼1751),「여한심리사 익모(與韓審理使翼謩)」,『남당집(南塘集)』

 

조선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한원진(韓元震)이 심리사(審理使)로 파견된 한익모(韓翼謩)에게 보낸 편지이다.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당(唐)나라 유안(劉晏)의 고사를 적절하게 인용하여, 전함(戰艦)을 만드는 비용을 상향 지급해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요점은 국가의 방위와 관련된 중요한 사안은 단순히 비용 절감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매독환주(買櫝還珠)라는 성어가 있다. 어떤 사람이 옥구슬을 팔러 갔는데, 사는 사람이 구슬을 담았던 상자만 사고 정작 구슬은 도로 돌려주었다는 내용으로, 근본적인 것은 버리고 지엽적인 것을 택하는 행위를 비꼬는 말이다.

 

어느 조직이고 경영 개선을 시도할 때 가장 먼저 관심을 두는 것은 비용 절감이다. 특히 예산을 관리하고 집행하는 담당자일수록 각박하리만치 철저한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작은 성과를 얻으려다가 큰 것을 놓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나중에 문제가 드러나 원상으로 회복시키려고 할 때는 필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한다.

 

이런 문제는 담당자들이 발상의 전환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체로 변화에 소극적이다. 본인의 의도나 심술의 선악과는 별개로, 기존의 관행에 익숙해서 생기는 현상이다.

 

월(越)나라 임금 구천(勾踐)을 도와 큰 공을 세웠던 범려(范蠡)가 은퇴하여 도주공(陶朱公)이라는 이름으로 숨어서 살아갈 때였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살인죄로 이웃 초(楚)나라 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했다. 막대한 부를 이루었던 그는 아들을 구해내기 위해 막내아들에게 천금을 주어 초나라로 보내려고 하였는데, 장남이 기어코 자신이 가겠다고 우겼다.

 

도주공은 할 수 없이 큰 아들을 보내면서 초나라 임금에게 신임을 받던 장공(莊公)에게 그 돈을 뇌물로 주고 석방을 부탁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돈이 아까웠던 장남이 장공에게 실례를 하는 바람에 도리어 둘째 아들이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장남이 돌아오자, 도주공은 미리 예견했다는 듯 태연히 말했다. “막내는 내가 부자가 된 뒤에 태어나 큰돈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지만, 장남은 나와 고생을 함께 겪었기 때문에 큰돈을 쉽게 뿌리지 못한다. 그래서 막내를 보내려고 했던 것이다.”

 

기존의 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때로는 더 올바른 판단을 하여 좋은 성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속담처럼, 새로운 일을 추진할 때 기존의 고참 직원이 아닌, 새로운 인물, 외부 인사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환경의 변화가 없을 때는 경험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환경의 변화가 심할 때에는 오히려 짐이 될 뿐이라는 프랑스의 근대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말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권경열 글쓴이 : 권경열(權敬烈)
  •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 주요역서
      - 『국역 오음유고』, 민족문화추진회, 2007
      - 『국역 국조상례보편』공역,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 『국역 매천집 3』, 한국고전번역원, 2010
      - 『국역 가례향의』, 국립중앙도서관, 2011
      - 『임장세고』, 한국국학진흥원, 2013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