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명구 249] 독서의 방법
『논어』를 읽을 때면
매양 제자들의 질문을 자신이 질문한 것처럼 여기고
공자의 말씀을 지금 귀로 듣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라
讀論語。每以諸弟子所問作己問。而以夫子之言作今日耳聞。
- 윤기(尹愭, 1741∼1826)『무명자집(無名子集)』
『논어』는 오늘날에도 교양인의 필독서로 손꼽히고, 명사들의 추천 도서 1순위에 들지만, 옛날 조선의 사대부들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로 지금의 우리에게보다 몇 배 몇 십 배 더 중요한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저자는 『논어』를 읽을 때마다,
“아! 내가 태어난 것이 후대이고 우리나라가 한구석에 치우쳐 있구나! 옛날과 오늘이 단절되고 중국과 조선이 멀어, 옷자락을 여미고 곁에서 모시면서 제자들이 뜻을 말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고 한갓 서책 속에서만 성현을 대하니 또한 슬프지 아니한가.” 하며 탄식을 하였답니다. 제자들과의 멋진 문답 장면과 깊은 깨우침을 주는 말씀을 대할 때마다, 성현을 직접 대하여 가르침을 듣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인데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저자는 어느 순간 생각이 이렇게 바뀌었다는군요.
“성현이 제자들과 문답하신 것도 본디 동시에 하신 말씀이 아니니, 그렇다면 안연과 민자건이 전수받은 가르침을 자로와 자공이 함께 듣지는 못했을 것이고 자유와 자하가 여쭌 것을 염유와 자장이 모두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20편의 『논어』 속에 하나하나 상세하게 기록하고 빠짐없이 적어 놓았으니, 이것은 후생의 큰 다행이 아니겠는가?”
어찌 보면 자신은 공자와 직접 문답을 주고받은 제자들보다도 더 많이, 상세히 그리고 빠짐없이 성현의 말씀을 접할 수 있으니 오히려 더 다행이 아니겠는가 하는 깨달음입니다. 모든 문답 자리마다 자신이 직접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읽는다면 참으로 그렇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모름지기 독서란 이렇게, 직접 자기가 그 자리에 참여하여 보고 듣는 것처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나저나 『논어』가 예나 지금이나 늘 필독서로 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아무래도 직접 『논어』를 읽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송나라 유학자 정이(程頤)라는 분이 그러셨다는군요. “『논어』를 읽지 않았을 때도 이런 사람이고 읽고 난 뒤에도 그냥 이런 사람이라면, 이는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글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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