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명구 194] 효도와 공경
堯舜大聖也 而其道不出於孝悌二字
요순은 대성인이지만 그 도는 효도[孝]와 공경[悌]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 유의건 (柳宜健, 1687~1760)
<제둔옹전후(題遁翁傳後)>《화계집(花溪集)》卷10
처사(處士)가 젊었을 때 인근 마을의 노인에게 안부 인사를 드리러 갔다. 날이 저물려 하자 노인이 자고 가라고 붙들었다. 처사가 처음에는 난색을 표하더니 노인이 애써 권하자 그러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갑자기 문을 나서서 어디론가 가더니 한참 후에야 돌아왔는데 이때는 밤이 이미 깊어 있었다. 노인이 이상히 여겨 이유를 물었더니 처사가 대답하기를, “저에게 노모가 계시는데 동구 밖에까지 나와 저를 기다리실까 봐 걱정되어 집에 가서 말씀을 드린 뒤 돌아왔습니다.” 하였다. 노인이 놀라며 묻기를, “그렇다면 왜 진작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집에까지 갔으면 왜 다시 돌아온단 말인가?” 하니 처사가 대답하기를, “어르신께서 그토록 간곡히 자고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감히 따르지 않을 수가 없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어찌 풀숲 사이로 오고 가는 것을 꺼려서 어르신의 후의를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윗글의 저자는 조선 숙종~영조 연간의 문인 유의건(柳宜健)입니다. 글에 소개된 주인공은 둔옹(遁翁)이라는 호를 쓰는 처사로 저자와 같은 마을에 살았는데, 행적이 뛰어난 처사의 전기를 몇몇 유명 문인들이 쓰긴 하였지만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가 빠져 있기에 덧붙인다면서 위의 이야기를 자신의 문집에 수록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이야기 끝에 덧붙여, 여기에서 ‘어버이를 모시는 효도’와 ‘어른을 섬기는 공경’에 마음을 다한 모습을 볼 수 있다면서, 성인이라 일컫는 요순(堯舜)의 도(道)도 이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마음을 쓰는 것이 이 정도라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어찌 보면 위의 이야기는 좀 지나친 사례(事例)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도 매우 특별한 일이었기에 저자가 문집에 기록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일이 특별한가 여부가 아니라, 이 상황을 대하는 처사의 마음 씀씀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을 기다리고 계실 어머니께 조금의 걱정도 끼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마을 어르신의 환대와 후의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고민과 배려가 밤사이 먼 길을 다녀오는 행동으로 나타났으니, 마음으로 봉양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일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민족의 명절 추석입니다. 전화 한 통 드리기도 쉽지 않은 시대, 오랜만에 만나는 부모님과 집안 어르신들을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대해 왔는지,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대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글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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